Hundertwasser, 1985, -® 2013 Hundertwasser Archive, Vienna, photo by Gerhard Kro¦êmer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를 잃고 유대인 어머니와 함께 유대인 거주지역으로 강제로 이주당하여 자란 훈데르트바서는 독일의 유대인 탄압을 직접 경험하였으며 할머니를 비롯한 그의 외가 친척 60여 명은 나치에게 몰살당하였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겪은 후 본명을 버리고 ‘평화로운 땅(Friedensreich)에 흐르는 백 개의 강(Hundertwasser)’ 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였다.

<660 Shadow of the Stars>(1967)
<Yellow Houses>(1966)
<899 Barnbacher Andacht>(1987)

그는 그림을 그릴 때 이젤을 사용하는 대신 캔버스나 종이를 펼쳐놓고 작업했다. 하나의 작품에 수채 물감, 유화 물감, 유성 펜, 아크릴, 템페라, 오일, 금속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했으며, 종이와 캔버스는 물론 프린트지, 포장지, 나무판, 천 조각, 버려진 종이 등 다양한 곳에 그림을 그렸다. 물감도 대부분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

<Good morning city>(1969)

 

훈데르트바서 건축물

훈데르트바서가 건축을 시작한 이유는 현대 건축물이 사람을 병들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만든 건축물은 기능주의와 실용주의를 배격하고 건축에 생명을 불어넣으려 노력하였기 때문에 그는 ‘건축치료사’라는 별명까지 얻는다. 이후 정류장, 병원, 교회, 온천장, 소각장 등 다양한 건축디자인을 선보이면서 활발히 활동한다. 건물 벽 군데군데 식물이 자라도록 디자인한 것도 훈데르트바서 건축 특징 중 하나이다. 그는 또한 평평한 바닥과 일직선을 사용하지 않으려 애썼다. 자연에는 일직선이 없으므로 건축물도 자연의 일부처럼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980년대 초, 주택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대규모 임대주택을 짓던 오스트리아 빈 시 당국은 공동주택의 질이 떨어지자 훈데르트바서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녹지 혜택이 적은 서민용 공동주택이었지만, 자연과 조화를 이루기 위한 그의 노력 덕분에 창가, 테라스, 옥상, 집 주변 곳곳에 꽃과 나무가 자라게 되었다.

Hundertwasser Haus in Wien
훈데르트바서가 만든 온천 휴양 마을 블루마우, <반지의 제왕> 호빗 마을의 모티브가 된 곳 © Hundertwasser Architekturprojekt
St Barbara 교회

훈데르트바서는 자연 보호, 산림 보호 운동, 반핵운동 등 예술 밖에서도 활발히 활동한 환경 운동가이기도 했다. 일생을 환경보호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헌신한 그는 2000년 태평양을 항해하던 엘리자베스 2호 갑판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의 나이 71세였다. 훈데르트바서는 유언에 따라 뉴질랜드에 있는 그의 땅 ‘행복한 죽음의 정원’ 안에 있는 튤립나무 아래 자연과 어우러져 영원히 잠들었다.

환경운동가이기도 한 그가 신고 다닌 신발 via ‘the historialist’ 

 

참고문헌- <두산백과>: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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