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는 지난 한 해를 대표하는 음악을 꼽는 각종 결산 차트와 시상식 덕분에 우리의 플레이리스트가 유난히 풍성해지는 시기다. 인디포스트도 돌아봤다. 2019년에 앨범을 발표한 유독 신선하고 반가웠던 인디신의 얼굴들을. 이들은 모두 신인은 아니었지만, 솔로나 팀으로서 첫 정규앨범을 내놓거나, 새로운 정체성을 내세워 좋은 음악을 선보였다. 그 이름과 음악들을 돌아보자.

* 앨범 발매 최신순

 

57 <Oh, Two Animals>(2019.10.22)

밴드 57(오칠)은 2014년에 전주에서 결성한 혼성 듀오다. 혼성 2인조라는 점과 기타와 드럼이라는 구성 덕분에 필연적으로 White Stripes를 떠오르게 하는 이들의 음악은 기대 이상의 강력하고 풍성한 사운드, 신선한 악곡을 들려주기도 한다. 결성 첫해에 데뷔 EP 앨범을 발매한 오칠은 '2015 올해의 헬로루키'에서 수상했고 이후 여러 지원을 통해 유럽 및 미국 투어를 마쳤다. 2019년 발매한 첫 정규앨범 <Oh, two animals>는 긴 여정에서 얻은 성장과 경험을 더한 5년 만의 앨범이다.

앨범명 'Oh, Two Animals'는 당연히 두 멤버 'SNOW'(드럼, 보컬)와 'JUN'(보컬, 기타)을 일컫는다. 두 사람의 벌거벗은 뒷모습과 동물의 털을 병치한 앨범 커버를 고스란히 반영하듯, 이 앨범은 실제 야생동물처럼 이리저리 날뛰는 오칠의 폭발적인 에너지와 숨 가쁜 템포, 거친 매력을 두루 들을 수 있는 트랙들로 가득 차 있다. 인디신에도 영향을 미친 근래 시티팝이나 일렉트로닉 사운드 유행에 아랑곳하지 않고, 인디록 역사와 가장 밀접한 개러지록 사운드를 쏟아내는 이들의 의 정공법에 귀가 번쩍 뜨일 이가 많을 것이다.

 

Lim Kim <GENERASIAN>(2019.10.15)

미스틱스토리를 떠난 후 2년 넘도록 별다른 소식 없이 활동 공백기를 보내던 가수 김예림. 그는 2019년 5월에 별안간 'Lim Kim(림 킴)'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컴백했고, 투개월이나 김예림 시절의 음악과 전혀 다른 힙합 곡 '살기(SAL-KI)'를 공개하며 전과 달라진 것이 단지 이름만이 아님을 강하게 내비쳤다. 이후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발매한 EP <GENERASIAN>은 아니나 다를까 '살기'보다 더욱 과감해진 콘셉트와 폭넓어진 음악을 담아내며 2019년 가장 강렬한 '반전'을 보여줬다.

무당의 굿판을 연상시키는 크로스오버 곡 '민족요(ENTRANCE)'를 시작으로, 신경을 긁는 차가운 전자음의 일렉트로닉 트랙과 림 킴의 날이 선 랩이 공존하는 트랙들은 그야말로 요즘 K팝이나 뻔한 대중음악과 궤를 달리한다. 아시안에 대한 외부의 비하적 시선을 은유하는 더블 타이틀의 제목 '옐로(YELLOW)'와 '몽(MONG)'을 비롯해 앨범 속 노래들은 아시안 여성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현실의 불합리에 대한 분노를 담고 있다. 비록 앨범의 만듦새는 다소 투박하고 콘셉트 역시 아직은 대중에게 낯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앨범의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분노의 정서는 파격적인 콘셉트 및 음악과 잘 어우러져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까데호 <FREESUMMER>(2019.07.11)

각기 쟁쟁한 그룹의 멤버들이 헤쳐모이는 이른바 이합집산이 무수히 반복되는 인디신에서 슈퍼밴드의 탄생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세컨세션, 헬리비전, 윈디시티, JHG 등 인디계 실력파 밴드를 두루 거친 멤버들로 구성된 까데호 역시 그와 같은 나름 슈퍼밴드 중 하나다. (인디포스트 기사 링크) 그러나 밴드의 독특한 이름이나 소탈한 앨범 커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이들의 음악은 슈퍼밴드로서 자칫 빠지기 쉬운 과도한 자의식의 함정이나 대중을 의식한 영합을 모두 피해가며, 예술성과 대중성 사이 절묘한 균형을 잡는다.

까데호의 음악에는 R&B와 재즈를 아우르는 블랙뮤직의 농염한 그루브와 아프로쿠반, 라틴 뮤직의 여유로운 무드가 한데 어우러진다. 앨범 속 11곡 중 단 4곡에만 존재하는 가사 곡들의 경우 치밀하고 실험적인 R&B 사운드가 유려한 팝 발라드의 분위기로 소화되고 있다. 나머지 7곡에서 가사를 대신하는 이태훈의 명료한 기타 톤은 서정적인 멜로디와 맞물리며 마치 저마다의 추억 속에 선명하게 존재하는 꿈 같은 인상을 남긴다. 마치 한여름 밤의 꿈 같은.

 

CHS <정글사우나>(2019.07.11)

흥미롭게도 까데호와 같은 날 첫 번째 정규앨범을 발표한 CHS 역시 아폴로18의 최현석과 노선택과 소울소스의 노선택,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김나언 등이 뭉친 슈퍼 그룹이다. (인디포스트 기사 링크) 음악 또한 <FREESUMMER>처럼 여름의 여유로운 계절감을 노래하고 있다. 프론트맨 최현석이 아폴로18에서 주도했던 것과 정반대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느리고 편안한 음악. CHS가 스스로 정의한 '트로피컬 사이키델릭 그루브'라는 장르명처럼, 앨범 커버 속 화려한 원색의 축제처럼 남국의 신비롭고 나른한 인상이 시종일관 지속된다.

훌륭한 멤버들이 모인 만큼 탄탄한 연주의 합이 제일 돋보인다. 색소폰, 플루트, 기타 등 번갈아 가며 곡을 리드하며 화려하고 흥겨운 솔로를 선보이는 악기들과 그 배경이 되는 건반과 리듬 섹션의 백업이 절묘하고도 몽환적인 조화를 이룬다. 까데호의 음악이 도시의 여름밤을 연상하게 한다면, CHS의 음악은 그들의 주장처럼 화창한 여름날 대낮의 여름을 만끽하게 한다.

 

천미지 <Mother And Lover>(2019.06.26)

유월에는 공교롭게도 천씨 성을 가진 두 명의 싱어송라이터가 같은 유통사를 통해 각기 솔로 정규앨범을 내놓았다. 2017년, 레인보우99와 함께 한 프로젝트 <Alphaville>로 자신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처음 알린 천미지가 그중 한 사람. (인디포스트 기사 링크) 2014년에 공연 활동을 처음 시작한 그는 중학교 시절 친구인 김사월의 프로듀싱에 힘입어 정규 1집 <Mother And Lover> 제작에 착수했고, 2019년에 드디어 텀블벅 프로젝트를 통해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깊이 아로새긴 솔로 앨범을 내놓았다.

<Mother And Lover>는 그 제목처럼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이자 화자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항상 곁에 있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잡을 수 없었던 대상을 향한 양가적인 감정과 그로 인해 품게 된 의지와 낭만이 앨범 속에 서늘하고도 아련하게 깃들어 있다. 단순하지만 진한 인상을 남기는 파워코드 위주의 진행, 1990년대 그런지 전성 시대를 연상시키는 터프한 사운드 및 이와 대비되는 여린 보컬이 짙은 아우라를 뿜어낸다. 이에 달콤한 포크팝과 몽환적인 네오포크를 더하며 다채로운 매력을 발산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과거의 상처로 미래를 낭만화하는 그의 믿음과 관점이 긴 여운을 준다.

 

천용성 <김일성이 죽던 해>(2019.06.26)

다른 천씨는 인디포스트에서 두 차례 소개한 바 있는 천용성이다. (인디포스트 기사 링크1, 링크2) 자신의 유년기 사진을 이용한 프로필 사진과 앨범 커버, 난데없이 '김일성'을 소환한 제목 덕분이라도 절대 잊혀지지 않을 첫인상을 준 그의 앨범 <김일성이 죽던 해>는 단순한 인상을 뛰어넘는 섬세한 감성과 그저 포크로 퉁치기 아쉬운 풍성한 레퍼토리까지 더하며 상반기 인디신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작품 중 하나다.

2007년 대학가요제에 참가하며 작곡을 시작한 그는 2012년에 '경험담'이라는 예명으로 일찌감치 싱글을 내놓은 바 있다. 이번 앨범의 '김일성이 죽던 해' 역시 일찌감치 세상에 나온 곡이었다. 하지만 그는 한 동안 학업에 집중하며 활동을 중단했고, 이후 2019년에 단편선의 프로듀싱과 텀블벅 펀딩을 통해 <김일성이 죽던 해>를 내놓을 수 있었다. 수년의 공백에도 천용성의 음악에서 변하지 않은 것은 지난 예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 가사에 꾹꾹 눌러 담긴 내밀한 사연들과 이를 담백하게 관조하는 그의 시선이다. 앨범에 부활시킨 1990년대, 2000년대 초반의 모던 가요 감성은 그의 경험치를 뛰어넘는 향수를 소환하기도 했다.

 

So!YoON! <So!YoON!>(2019.05.21)

2016년, 결성하자마자 무서운 속도로 입소문을 타 인디 신을 호령하고 평단의 찬사 일색 호평까지 끌어낸 밴드 새소년. 하지만 이들은 멤버 세 명 중 두 사람의 병역으로 인해 정규앨범 하나 없이 EP 하나만 발표한 채 돌연 재정비 상태에 놓여야 했다. 다행히 남은 멤버 황소윤은 재빠르게 팀을 재편성함과 동시에 2019년에 'So!YoON!'(소!윤!)이라는 새 이름으로 솔로 활동을 개시했다. (인디포스트 기사 링크) 2019년 발표한 솔로 <So!YoON!>에서 특유의 허스키하고 매력적인 목소리와 감칠맛 나는 기타 톤은 그대로였으며, 다양한 피쳐링진과 함께 하며 장착한 R&B 사운드, 랩 등 새로운 면모는 덤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작가 패트리샤 피치니니(Patricia Piccinini)의 작품 'The Rookie'를 차용한 앨범 커버는 '인디신 올해의 아트워크'라고 해도 좋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준다. 이 이미지 속에 단일한 표상이 아닌 신생아, 고슴도치, 애벌레 등 다양한 상징이 교차하는 까닭은, <So!YoON!>이 솔로 아티스트로 재탄생한 소!윤!의 새로운 정체성은 물론, 앨범에서 함께 한 이들과의 협업을 통해 새로이 맺은 복합적인 관계성과도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소!윤!의 색이 분명히 묻어나는 이 앨범에는 수민과 나잠수의 R&B 트랙, 공중도덕과 모임별의 국적 불명의 음악 및 샘킴과 재키와이의 재기발랄한 랩이 공존한다. 앨범 발매 일주일 뒤 이례적으로 코멘터리 앨범을 내놓으며 각 아티스트와의 협업 과정을 낱낱이 들려준 게 그 증거다.

 

지윤해 <개의 입장>(2019.05.07)

파라솔은 인디포스트가 여러 차례 언급하고 인터뷰까지 한 인디포스트가 사랑하는 밴드다. (인디포스트 기사 링크) 그러나 친남매처럼 잘 어울렸던 이들은 2017년 발표한 정규 2집 <아무것도 아닌 사람> 이후 새로운 소식을 업데이트하지 못하며 많은 팬들의 기다림과 아쉬움을 불러모은 바 있다. 다행히 2019년에는 밴드에서 보컬과 베이스를 맡았던 지윤해가 첫 솔로 앨범을 발표하며, 파라솔을 좋아했던 이들의 쓸쓸함을 달랬다.

나른한 와중에 은밀하게 스민 댄서블한 감각과 몽환적인 사운드 위로 살포시 얹힌 달콤하고 아름다운 선율, 밍숭맹숭한 이별의 온도와 권태로운 일상의 관찰지를 완성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무심한 가사까지. 파라솔의 다음 챕터를 고스란히 이어가기라도 하는 듯한 이 앨범 <개의 입장>에는 달콤한 팝의 감성과 우울한 록의 광기가 절묘하게 뒤섞여 있다. 마치 무기력하고 비관적인 잔나비를 보는 듯, 연약하고 굼뜬 검정치마를 보는 듯, 좋든 싫든 지금 이 순간이 생애 다시 없을 백일몽이라도 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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