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올해 벌써 몇 차례 그 이름을 보거나 들었을 거다. 바로 뮤지션 천용성. 스스로 ‘가수’라는 호칭이 부끄럽다는 그의 겸손한 고백에도 불구하고, 음악계와 매체는 솔직한 자조와 담백한 서정, 다채로운 포크 발라드 어법이 버무려진 천용성의 데뷔앨범에 호평을 아끼지 않는다.

천용성 첫 정규앨범 <김일성이 죽던 해>(2019)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지난 6월 26일 음원으로, 7월 1일 물리 음반으로 발매한 천용성의 데뷔 앨범 <김일성이 죽던 해>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앨범 제목만큼이나,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지난 인디포스트 기사(링크)에 소개되었듯 그의 지난 기억들이 때로는 오늘의 일기장 같은 생생한 장면으로, 해묵은 감정들이 덕지덕지 눌러 붙은 낡은 사진첩으로 되살아나 있다.

‘울면서 빌었지’ 라이브 영상
‘대설주의보’ 뮤직비디오

“저는 작곡에도 기타에도 노래에도 선수가 될 수 없습니다. 제가 팔 수 있는 것은 저라는 매체에 묻어 있는 얼룩 같은 자의식뿐입니다.”

천용성은 스스로 “자의식을 판다.”고 소개한다. 고르고 고른 자신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유년 시절, 어머니와 함께 한 사진들이다. 우리는 누구나 ‘오늘’을 살아가지만, 우리의 모습과 생각들이 모두 ‘어제’의 기억 위에 쌓아 올려진 것임을 역설하는 것 같다. 음악 속에 지난 기억을 빼곡히 담았던 그가 이번에는 추억에 불을 지피는 영상들을 보내왔다. 천용성의 리스트를 한 번 들여다보자. 동시대를 공유하는 동반자로서 자연스레 그의 기억에 공감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Yongsung says,

자기계발을 설파하는 보수주의자 만큼이나 얼마 후의 내가, 얼마 전의 나보다 낫기를 조금이나마 바란다. 누군가는 미련이라 말하는, 지나간 일들을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때 나는 어때야 했을까.

인격의 도야와 취향의 성숙은 별개의 문제이고, 때로는 반비례하는 것만 같다. 변변찮은 취향은 옛것이 되어가는데 새로운 것엔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 아름다운 것을 들어도 행복하지 않다. 그게 너무 무섭다. 무서움을 피해 나는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 이렇게든 저렇게든, 나는 다시 과거로.

 

1. 싸이보그 스필반

무엇인가를 순수하게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무엇이든, 나는 그게 좋다.' 쉽지만 쉽지 않은 애호의 방식이다. 졸업장이란 결국 이유 붙이기 학원의 수료증이나 다름없으니까. 머리의 피는 순수와 함께 말라간다. 하지만 다행히도, 기술과 기억은 분리되어 있고, 무엇인가를 그렇게 좋아했던 나를 떠올리며 잠시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오지은 씨가 오래전 말했던 것처럼.

어린 시절 보았던 비디오를 이따금 찾아본다. 스필반은,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비디오다. 길게 보지는 않는다. 주제가를 듣고 따라 부르다 칼 휘두르는 시늉을 한다. 일본판 오프닝을 찾아보며 연주에 감탄한다. 가끔 흥이 날 땐 ‘올 파워 쌍검 치기’ 같은 기술명도 외친다. 옆에 친구가 있으면 왠지 더 크게 소리를 내고 싶다. 떼로 나오는 수많은 ‘맨’들은 다시 봐도 별다른 감흥이 없지만, 홀로 싸우는 스필반을 보면 정말 설렌다. 언제나 과장하기 마련인 엄마의 말에 따르면, 천용성(5세)은 한겨울 내복만 입고 산을 넘어 비디오를 빌려오곤 했다고.

 

2.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정원 딸린 집에 잠시 살았다. 개를 키우고 싶었다, ‘말 타면 종 부리고 싶다’는 속담은 틀리지 않았다. 친구 집에서 새끼 진돗개를 얻어왔다. 담아 온 과자 상자를 따라 이름을 붙였다. 황갈색 개의 이름은 ‘크리미’였다.

내놓고 키웠다. 묶여 있는 게 불쌍했다. 개와 같이 출근했다. 같은 일터의 신 씨 아저씨는 크리미를 유독 귀여워했다. 그는 남은 점심을 싸 와 크리미에게 주곤 했다. 개는 점점 그를 따랐다. 사료를 멀리하기 시작했고, 잔반통을 뒤졌다. 나보다 먼저 출근해 아저씨의 차를 맞았다. 나는 밥 주는 사람도 되지 못했다. 개에게 화를 냈다, 아저씨에겐 내지 못했다. 그는 나보다 서른 살은 족히 많았다. 그의 취미는 무선조종이었다.

주로 낮에, 밥을 먹으며 본다. 찾아보는 것은 아니지만, 돌아가던 채널은 대개 여기서 멈춘다. 개보단 사람을 본다. '세상의 나쁜 개는 없다'는 제목은 은근슬쩍 말한다. 세상엔 나쁜 주인만 있을 뿐이라고. 다종다양한 나쁜 주인에 나를 하나씩 겹쳐 본다.

 

3. 플레이걸

음악산업에 종사하는 동료들과 술자리를 했다. 그들은 몇 달 전 있었던, DMZ 페스티벌이 얼마나 좋았는지 이야기했다. 박은옥·정태춘 씨에서 시작한 얘기는 긱스('랄랄라'를 불렀던)를 거쳐 오아시스까지 넘어갔다. 곧이어 그들은 떼 지어 노래를 불렀다. 두 번째 줄부터는 대충 뭉갰지만, 'Don't look back in anger’였다. 그들은 꽤 오랫동안 손을 흔들며, 왠지 촉촉해 보이는 눈시울로 소리를 질렀다.

그로부터 몇 시간 전, 우리는 데뷔 20년이 지난 한 밴드의 공연장에 있었다. 게스트의 노래가 끝났다. 양반다리로 있던 사람들이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의관을 정제한 그들은 주먹을 뻗고 다리를 굴렀다. 검은 티셔츠를 입은 짧은 머리의 사내가 눈에 띄었다. 언젠가 희열을 연기해야 한다면, 그의 표정을 떠올리면 좋지 않을까? 너무 행복해 보여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나 자신이 뭔가 잘못된 것만 같았다.

내게도 그런 노래가 생겼다. 안 지는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왠지 오래전부터 알던 것만 같다. 전주만 들어도 설렌다. 음악을 나눠 들은 어떤 분은 <세일러문> 2기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다. <세일러문>보다는 <천사 소녀 네티>와 <카드캡터 체리>를 좋아했지만. 생각해보니 <웨딩 피치>도 빼놓지 않고 봤다.

 

 

뮤지션 천용성은?

2007년 대학가요제에 참가하며 작곡을 시작했다. 2012년 ‘경험담’이라는 예명으로 첫 싱글 ‘하지만 언젠가’를 발표했고, 2013년 자립음악생산조합 춘계 컴필레이션 앨범에 ‘김일성이 죽던 해’로 참여하며 활동을 이어가다가, 학업으로 잠시 활동을 중단했다. 2019년, 단편선의 프로듀싱과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본명 ‘천용성’을 앞세운 첫 정규앨범 <김일성이 죽던 해>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1990년대 한국 가요의 어법과 2000년대 인디 포크의 감성을 아우른 수작으로 평가받으며 인디음악 신과 평단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천용성 홈페이지

천용성 인스타그램

 

Editor

정병욱 페이스북
정병욱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