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배우 ‘시라 하스’(Shira Haas)는 넷플릭스 미니시리즈 <그리고 베를린에서>(Unorthodox, 2020)에서 종교적인 억압에서 해방을 꿈꾸는 여성 ‘에스티’을 연기해 에미상 후보에 오르며 세계적 찬사를 받은 바 있다. 같은 해 이스라엘 영화 <아시아>(Asia)에 출연하여 트라이베카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명성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넷플릭스 SF 드라마 <바디스>(Bodies, 2023)에 주연 형사로 출연하였고, 마블 영화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2024)에서 이스라엘의 슈퍼히어로 ‘사브라’로 캐스팅 되기도 했다. 종교 억압을 거부하고 저항하는 가냘픈 여성상에서 마블의 슈퍼히어로 배역까지.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넓은 스펙트럼의 연기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그가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는지 알아보았다. 

넷플릭스 8부작 SF 범죄 드라마 <바디스>(2023) 예고편

1995년 생의 ‘시라 하스’는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Tel Aviv)에서, 유대교를 전통으로서 존중하는 세속적 가정에서 태어났다. 이스라엘 국민의 약 20%를 차지하는 종교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다수를 차지하는 평범한 세속주의 유태인 가정에서 자랐다. 그의 조부모는 모두 홀로코스트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유태인이었는데, 특히 할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악명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된 전력이 있었다. 평범하지만 행복했던 가정에서 자란 그의 어린 시절에 암울한 시련이 찾아왔다. 두 살 무렵에 소아암의 일종인 신장암에 걸렸으며, 2년에 걸친 중증 치료 끝에 다섯 살이 되어서야 병마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소아 시절에 신장의 이상 기능 때문에 그의 성장은 지체되었고, 그 결과 평균보다 조금 작은 키를 갖게 되었다. 병력 때문에 징병제인 모국에서 군 복무를 면제받았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이스라엘 방위군(Israel Defense Force)에 자원하였을 정도로 강한 정신력을 보여주었다.

명작 <그리고 베를린에서>에서 음악학교 심사위원들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를 부르는 장면

그의 영화가 깊은 인상을 남긴 데는 사회와 종교의 억압적인 환경에서 살아가는 여성상을 연기한 캐릭터의 역할이 컸다. 예술고 재학 중에 출연했던 <슈티셀가 사람들>(2013~)이 세계적인 히트작이 되면서, 드라마를 보았던 영화 제작진의 권고를 받고 일약 열아홉의 나이에 영화 <프린세스>(2014)의 주연에 캐스팅되었던 것이다. 그는 졸업 후에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시작했지만, 얼마 안가 데뷔작이 된 <프린세스>로 예수살렘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배우의 삶이 시작되었다. 나탈리 포트만의 감독 데뷔작 <A Tale of Love and Darkness>(2016), 제시카 채스테인 주연의 <The Zookeeper’s Wife>(2017) 등 할리우드 영화에 간간히 출연하기는 했지만, 그가 출연한 대부분은 이스라엘 영화나 드라마였다. 그러던 중 그를 국제 영화계에 우뚝 서게 만든 천금의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그리고 베를린에서>(Unorthodox, 2020)였다.

데뷔작 <Princess>(2014) 예고편

독일의 4부작 미니시리즈 <그리고 베를린에서>의 포스터에서 결혼 전에 삭발하는 그의 모습은 깊고 넓은 반향을 일으켰다. 이 작품은 넷플릭스를 통하여 전 세계의 시청자들이 보았고, 에미상 8개 부문 후보에 오르는 성과를 올렸다. 그는 이스라엘 배우 최초로 에미상 후보에 오르는 영광을 안았고,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즈에서는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미니시리즈의 제작진은 당초 이디시어(Yiddish)와 영어를 모두 할 줄 알고 노래와 피아노 연주가 가능한 여성배우를 찾아 미국과 유럽,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을 뒤져야 했고 이 때문에 촬영 스케줄을 연기해야 할지도 몰랐지만, 천신만고 끝에 페이스북에서 그를 발견한 것이다. 그는 단기간 속성으로 이디시어와 피아노를 배우고 실제로 머리를 삭발하여, 시리즈의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뉴욕타임스는 그를 가리켜 ‘현상’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트라이베카 영화제에서 수상한 이스라엘 영화 <Asia>(2020) 예고편

그는 이제 연기의 폭을 점차 넓혀 나갔다. 작년 10월 19일에 소개되어 차트 톱에 진입한 넷플릭스 8부작 <바디스>(Bodies)에서는 미래 시점의 형사 ‘아이리스 메이플우드’ 역을 맡았고, 이스라엘의 10부작 심리 드라마 <Night Therapy>(2024)에서는 컴퓨터 프로그래머 역을 맡았다. 지난해에는 마블의 네 번째 캡틴 아메리카 영화 <Captain America: New World Order>에서 그가 이스라엘 슈퍼 히어로 ‘사브라’(Sabra)로 캐스팅되었다고 공식 발표된 바 있는데, 이 영화는 2024년 5월에 개봉할 예정이다. 자신의 백그라운드인 유태인 또는 유대교 관련 연기로 시작한 그는, 이제 보폭을 넓혀 연기의 폭을 형사물이나 슈퍼히어로 역으로 한층 더 확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