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물론 음악 자체로 가치가 있지만, 영화음악은 그 영화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미친다는 점에서 조금 더 특별하다. 라디오헤드는 이미 21세기 영국의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밴드로 유명하지만, 최근 몇 년간은 멤버 각자의 개인 활동도 큰 화제를 불러모으고 있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8)으로 호평받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새로운 연출작 <서스페리아>(2018)의 영화음악을 라디오헤드의 메인 보컬이자 싱어송라이터인 톰 요크가 맡으면서 호평을 모았다. 한편, 라디오헤드의 기타리스트이자 실험적인 사운드메이커로서 밴드의 또 다른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조니 그린우드 역시 그간 꾸준히 자신만의 색깔이 담긴 영화음악을 만들어왔다. 톰 요크와 조니 그린우드가 영화음악에 참여해 온 이력을 살펴보자.

 

Thom Yorke

The Venus In Furs ‘2HB’ (Roxy Music Cover) (Velvet Goldmine OST)

톰 요크가 메인으로 영화음악을 맡은 건 <서스페리아>가 처음이지만, 사실 그는 데이빗 보위와 1970년대의 글램록 뮤지션들을 모델로 삼은 토드 헤인즈 감독의 1998년작 <벨벳 골드마인>의 영화음악에 이미 한차례 참여했던 경험이 있다. 영화 속 주연을 맡았던 배우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의 목소리의 주인공이 사실은 톰 요크였던 것! <벨벳 골드마인>에서는 1970년대의 글램록 뮤지션들의 음악이 그대로 쓰인 경우도 많고, 실제로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가 노래를 부른 곡들도 있기 때문에 모든 곡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영화에서 주요하게 등장하는 록시 뮤직(Roxy Music)의 커버곡 ‘2HB’와 ‘Ladytron’, ‘Bitter-Sweet’ 3곡의 경우에는 톰 요크가 부른 게 맞다.

The Venus In Furs ‘Bittersweet’ (Roxy Music Cover) (Velvet Goldmine OST)

록시 뮤직의 노래를 커버하여 영화 <벨벳 골드마인> 사운드트랙에 참여하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젝트 팀 ‘비너스 인 퍼스(The Venus in Furs)’는 톰 요크가 보컬을 맡고, 조니 그린우드 역시 함께 참여했다. 그밖에 스웨이드(Suede)의 버나드 버틀러, 록시 뮤직의 앤디 맥케이 등이 참여한 슈퍼 밴드이기도 하다.

Thom Yorke ‘Suspirium’ (Suspiria OST)

이후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톰 요크가 처음으로 메인 영화음악 감독으로 참여한 <서스페리아> 사운드트랙은 심플한 악기 편성 면에서 톰 요크의 솔로 작업들과 비슷하면서도, 호러영화의 클래식으로 불리던 1977년작 <서스페리아>의 명성을 이어갈 만한 섬뜩하고 불안정한 사운드를 담고 있다. 영화는 아직 국내에서 개봉되지 않았지만, 사운드트랙 실물 앨범은 사전 발매되었으며, 톰 요크가 만든 25곡이 담겨있다.

Thom Yorke ‘Unmade’ (Live) (Suspiria OST)

톰 요크는 처음에는 <서스페리아>의 영화음악 작업 제의를 거절했지만, 루카 구다아니노 감독의 계속되는 설득과 작업에 대한 욕심 때문에 결국 1년 반이라는 시간을 들여 사운드트랙을 완성해냈고, 현재는 2019년 오스카 최우수 오리지널 송(Best Original Song) 부문에 후보로 올라간 상태이다.

 

Jonny Greenwood

조니 그린우드가 처음 영화음악에 참여한 건 <벨벳 골드마인>을 통해서였다. 이후 2003년 다큐멘터리 <바디송>의 음악을 작곡하였고, 이 음악을 들은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2007년작 <데어 윌 비 블러드>의 영화음악을 그에게 맡기면서 본격적으로 영화음악 작업을하게 된다.

Jonny Greenwood ‘There Will Be Blood’ (Rehearsal Video)

인간의 탐욕을 다루는 영화의 스토리와 어울리는 음산하고 아방가르드한 사운드로, 영화뿐만 아니라 사운드 트랙도 큰 호평을 얻었다. 덧붙여 이 영화로 시작된 인연 덕분에 이후 조니 그린우드는 <마스터>(2013), <인히어런트 바이스>(2015), 최근작 <팬텀 스레드>(2018)까지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전속 영화음악가로 활약하게 된다.

<Phantom Thread> Official Trailer

특히 <팬텀 스레드>의 사운드트랙은 ‘보이지 않는 실’을 뜻하는 영화 제목처럼 미묘한 남녀의 관계를 그려내는 영화 속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이전보다 클래시컬하고 로맨틱한 피아노 사운드와 오케스트라가 주가 되는 음악 작업을 통해 조니 그린우드의 또 다른 음악적인 색깔을 느낄 수 있게 한다.

<You Were Never Really Here> (Opening Scene)

조니 그린우드는 <케빈에 대하여>(2012)를 연출한 린 램지 감독과도 인연이 깊다. 린 램지의 최근 연출작 <너는 여기에 없었다>(2018)에서 조니 그린우드는 살인청부업자이지만 그 자신도 끔찍한 과거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주인공 ‘조’의 심경을 대변해주는 듯한 불안정한 전자 음악으로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압도하는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The Weird Sisters ‘Do The Hippogriff’ (Harry Potter And The Goblet Of Fire)

한편 조니 그린우드는 2005년 영화 <해리포터와 불의 잔>에 단역으로 출연한 이력이 있다. 영화 속 무도회 장면에서 영국 밴드 펄프의 보컬 자비스 코커, 라디오헤드의 드러머 필 셀웨이 등과 함께 ‘운명의 세 여신’이라는 록 밴드로 등장하였지만, 애석하게도 영화의 맥락상 극장에서 상영될 때 직접적인 공연 장면은 편집되었다. 하지만 DVD 버전에는 공연 장면이 포함되어 뒤늦게나마 조니 그린우드의 흔치 않은 카메오 출연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Hans Zimmer and Radiohead Collaboration: Creating (ocean) bloom – Blue Planet II Prequel

2017년 BBC의 자연 다큐멘터리 <블루 플래닛 2>에서는 영화음악의 거장 한스 짐머가 BBC 콘서트 오케스트라와 라디오헤드의 8집 <Kings of the Limbs>의 수록곡 ‘Bloom’을 ‘(Ocean) Bloom’이라는 타이틀로 재탄생시키기도 하였다. 톰 요크의 보컬 트랙도 새롭게 녹음되었으며, 이 작업에 관하여 한스 짐머, 톰 요크, 조니 그린우드가 함께 인터뷰하는 ‘희귀’ 영상도 나와 있다. 톰 요크와 조니 그린우드 각자의 영화 음악 작업 역시 앞으로도 쭉 주목해야겠지만, 보다 다양한 형식으로 라디오헤드의 음악을 만나볼 수 있길 기대해본다.

Hans Zimmer & Radiohead 'Ocean Bloom'

 

Writer

서울에서 살아가는 생활인이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노래로 지어 부르고, 여기가 아닌 어딘가 다른 낯선 세상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작업자. 다른 사람들의 작업을 보고, 듣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유유'는 한자로 있을 '유'를 두 번 써서 '존재하기에 존재한다'는 뜻으로 멋대로 사용 중. 2018년 9월부터 그동안 병행 해오던 밴드 '유레루나' 활동을 중단하고, 솔로 작업에 더 집중하여 지속적인 결과물들을 쌓아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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