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먼드 카버, 어니스트 헤밍웨이, 스캇 피츠제럴드, 존 치버의 공통점은 뭘까? 지독하게 술을 좋아했던 작가라는 점이다. 위대한 작품과 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을 증명한 소설가들이다. 몽롱하게 취한 상태가 창작에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환상은 이들의 술냄새가 풀풀 나는 소설로 실현되었다. 하지만 과도한 음주는 작가의 삶을 망가뜨리기도 했다. 친구를 잃고, 건강이 악화하고, 결혼 생활이 파탄 나고, 아이를 학대하고, 직장에서 해고되는 등 과음으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는 일이 흔했다. 우리가 아는 꽤 많은 대문호가 술병과 나뒹굴며 순탄치만은 않은 삶을 살아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술 문제가 있던 작가들은 무너진 생계와 버려진 가족들을 위해 더 열심히 글을 쓰기도 했다. 과연 작가들에게 술은 어떤 의미일까? 술이 문학 작품에 미친 영향은 어느 정도였을까? 오늘은 술을 마시는 순간이 작품에 주요한 모티프로 나오는 단편 소설집을 골라봤다.

* 소설의 스포일러가 조금 있습니다.

 

권여선, <안녕 주정뱅이>(2016)

권여선 작가의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는 제목처럼 자연스럽게 소주와 찌개가 떠오르는 책이다. 이야기 속 인물들은 약속이나 한 듯 중간중간 술판을 벌인다. 밤의 밑바닥에 떨어진 회한을 안주 삼아 잔에 술을 채우는 사람들이 눈에 그려질 듯하다. 소설을 읽다 보면 인간이 가장 통념에 휘둘리기 쉬운 순간이 술을 마실 때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만큼 뻔한 얘기와 비틀린 웃음이 난무하는 가운데 이리저리 치우치는 사람들의 가엾은 모습이 배어 나온다. 그런데도 밤만 되면 술 약속을 잡는 건 취중에 기적처럼 진심이 드러나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아이 같은 미소를 띠며 속에 없는 악담을 퍼붓기도 하지만 한 잔 두 잔 비워지는 술잔이 오가다 보면 진실에 가 닿는 시간이 찾아온다. 전부터 의식하고 있었으나 말하기 남사스럽고 쑥스러워서 지나쳤던 감정을 못 이긴 척 꺼내 놓는 곳 또한 술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술에 망각이라는 효능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는 바로 그 망각을 믿고 꺼내 놓는 얘기들이다. 작가 권여선은 작가의 말을 통해서 술자리가 이 소설집을 쓰게 한 원천임을 털어놓았다.

​“술자리가 파장으로 치달을 때면 나는 다시금 오후 다섯 시의 신데렐라적 불안을 고스란히 되풀이해야 했다. 아무도 나와 술을 더 마셔주지 않고 우르르 일어나 집으로 가버릴까 봐 나는 초조하고 두려웠다. (중략) 술자리는 내 뜻대로 시작되지 않고 제멋대로 흘러가다 결국은 결핍을 남기고 끝난다. 술로 인한 희로애락의 도돌이표는 글을 쓸 때의 그것과 닮았다. ‘술’과 ‘설’은 모음의 배열만 바꿔 놓은 꼴이다. 술을 마시기 위해 거짓 ‘설’을 연기하던 나는 어느덧 크게도 아니고 자그마하게 ‘설’을 푸는 小설가가 되었다. 아무리 마셔도 아무리 써도 끝장이 나지 않는 불안의 쳇바퀴 속에서 나는 자꾸 조갈이 난다. 오늘은 또 누구와 술을 마시고 누구에게 설을 풀 것인가. 그 누구는 점점 줄어들고 나는 점점 초조해진다.”

- <안녕 주정뱅이> 중 작가의 말

권여선 작가가 술을 소설집 전면에 내세운 건 왜일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술이 인간을 귀엽게 하기 때문이다. 술 한잔 걸치고 상대를 응시할 때 오가는 눈빛은 의미심장하다. 마시던 술이 다 떨어져서 편의점에 안주를 사러 갈 때 눈 쌓인 거리를 보는 것과 같은 감각이야말로 이 소설집이 추구하는 형태다. 권여선 작가는 삶이라는 건 고통과 통증을 수반하지만 잘 찾아보면 숨 쉴 구멍은 그 흔한 술자리에 있음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코너에 몰린 인간에게도 술을 마실 때만큼은 귀여운 구석이 있으며, 희망 없는 상황에서도 유머를 던지는 사람은 취한 이들뿐이라는 걸 서술한다. 그래서인지 몸과 마음이 무너져도 술을 마시며 잊어버리는 사람들은 주정뱅이라는 말처럼 어여쁘다. 그렇게 책을 다 읽고 나면 권여선이라는 사람의 문학적 형태가 일종의 후회, 회한, 치기, 원망과 같이 취기가 아니면 버티기 힘든 것들로 점철되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안녕 주정뱅이>를 감도는 이야기의 주된 정서는 연민이다. 값싼 동정을 들이미는 위안이 아닌 술에 취한 사람을 지그시 바라보는 시선이 5촉 백열등처럼 은은하다. 외로운 사람에게 술이라도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싶게끔 만든다. 빈 술잔을 채워주고 등을 두드려주며 고된 하루를 이고 왔을 누군가의 등허리에 고운 말을 얹는다.

 

레이먼드 카버, <제발 조용히 좀 해요>(1967)

레이먼드 카버는 작가 생활 초기부터 생활고에 시달렸다. 평생 글을 썼지만 장편 소설은 집필하지 못했다. 이른 결혼과 출산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다 보니 한시바삐 원고를 써서 생활비를 벌기 급급했다. 그에게 글은 밥벌이를 위해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전쟁터와 같았다. 카버는 저녁 무렵 가족들의 소란을 피해 자신의 허름한 승용차 운전석으로 도피했다. 그의 큰 몸을 작은 폭스바겐에 구겨 넣고 한참 동안 글을 썼다. 그래서일까? 카버는 결혼생활 내내 술을 달고 살았다. 집 마당에는 널브러진 술병과 함께 한 발만 잘못 디뎌도 나락으로 빠져들지 모르는 운명이 놓여 있었다. 그는 결국 아내와 이혼한 후에야 생활고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카버는 자신의 에세이 <불>에서 알코올 중독에 관한 복잡한 속내를 내비친 적이 있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폭음에 빠지게 된 게 저 자신과 글쓰기를 위해서,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서 간절히 원하던 인생의 꿈이 가망이 없는 꿈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이후부터였던 것 같아요. 처음부터 파산자가 되거나 알코올 중독자가 되거나 사기꾼, 도둑, 거짓말쟁이가 되려고 작정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 올리비아 랭, <작가와 술> 중에서

카버는 취기가 인간을 어떻게 망치는지 몸소 경험한 사람이라서 소설 곳곳에 술자리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마치 짜고 치는 패배처럼 실패의 비릿한 냄새가 진동하는 이야기다. 내가 오늘 소개하려는 책 <제발 조용히 좀 해요>도 술 없이는 설명하기 어려운 소설집이다. 원제는 ‘Will you please be quiet, please?’인데, 국내 출간 초기에는 ‘부탁이니 제발 조용히 해줘’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이 소설을 집필할 당시 카버는 피폐한 재정 상태에 시달렸는데, 그 여파인지 소설에는 결혼에 실패한 남녀가 군집해있다. 가정이 다 망가져 가도 술병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의 속내를 잠시나마 엿볼 수 있다. 소설을 읽다 보면 심란한 마음을 술로 달래는 고독한 배우자의 모습이 스탠드 불빛 사이로 비친다.

​책의 표제작인 <제발 좀 조용히 좀 해요>는 안정적인 직장과 유복한 가정을 지닌 사람들의 사연이다. 부부는 아이들을 재우고 기분 좋게 와인 한잔을 하며 일과를 마무리하려 한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그들은 꺼내지 말아야 할 과거를 끄집어낸다. 취해서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쏟아낸 것이다. 아마도 애써 피해온 응어리를 풀 기회라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얘기가 길어지면서 2년 전 아내가 술에 취해 다른 녀석이랑 차를 몰고 나간 사건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른다. 그간 잘 감추고 애써 모른 척하며 살아왔는데, 왜 이제야 남자와 여자는 다 지나간 문제로 다투는 걸까? 아니, 짚고 넘어갔어야 할 문제였는데 대화할 용기가 없어서 서로를 속여온 것인지도 모른다. 술이 점점 과해지면서 부는 누구 할 거 없이 서로의 과오를 따지기 시작한다. 아내는 그간 비밀로 했던 일도 모조리 다 공개하고, 남편은 분노를 못 이겨 집을 뛰쳐나간다. 애초에 탄탄해 보였던 결혼생활은 하루아침에 깨진 접시처럼 파편만 남기고 사라진다.

사실 남편은 결혼하기 전부터 관계에 의구심이 들고 있었다. 아내의 일탈은 하나의 징후가 되어 그에게 도망갈 구실을 안겨줬을 뿐이다. 즉, 남편은 원래 이 집에 없었어야 할 사람이고, 기회가 생기자 다시 자신이 돌아갈 곳으로 복귀한 것이다. 남자는 다 늦은 야밤에 이 거리 저 거리를 배회한다. 삶의 돌파구를 찾아 정처 없이 찝쩍거린다. 그래 봤자 그에게 주어진 건 주머니 속 구겨진 지폐 몇 장과 밤새도록 그를 반기는 허름한 술집뿐이다. 하지만 어김없이 아침이 오고 그는 다시 집 문을 연다. 그가 다니던 직장, 그가 거액의 대출을 받아서 산 집, 아직은 아이들에게 충실한 아내를 버릴 용기가 없다. 그는 자신이 가진 사회적 위치를 놓을 생각조차 없으면서 공연이 아내를 헐뜯으며 자신을 비호한다. 그러면서도 속마음을 감추고 끝내 다 괜찮을 거라고 주문을 욀 것이다. 그렇다고 삶이 복구될 리 없다.

카버는 어린 나이부터 글로 생계를 지탱했다. 그에게 집은 보기만 해도 끔찍한 혼란이 있는 곳, 벗어나고 싶은 책임감을 내재한 곳이었다. <제발 조용히 좀 해요>에 실린 결혼생활은 겉보기에는 중산층의 전형으로 비치지만 술만 마시면 썩은 환부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식이다. 카버는 이 소설집을 내고 교수라는 직함도 달고, 작품도 꽤 팔려서 생활고를 모두 해결했다. 재혼도 하고 다른 걸작 소설집도 내면서 더는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고통으로 점철했던 결혼 생활을 청산하자 새로운 삶이 온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여자 없는 남자들>(2014)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은 하루키가 스코틀랜드를 여행하면서 위스키에 관해 쓴 에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낮에 글을 쓰고 저녁마다 위스키 한잔을 마시며 음악을 감상하는 미주가로 유명하다. 하루키는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에는 직접 재즈 바를 운영하며 바텐더 일을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들에는 유독 바에서 술을 마시는 인물이 자주 등장한다. 하루키의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도 전형인 하루키 적 남자들이 술을 마신다. 피아노 재즈 넘버가 방안 가득 울려대며 파스타 면을 삶고, 동네 공원을 산책하며 기쁨을 느끼는 소박한 생활을 하지만, 위스키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남자들이다. 그들은 어제와 전혀 다르지 않은 내일을 살 것이다. 어쩌면 하루키의 문학이란 애써서 만든 일상의 평온함을 지키려는 안간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늦은 저녁 퇴근 후에 혼자 위스키 한잔을 걸칠 수 있는 상태를 위한 투쟁과 같다. 재밌는 점은 여자가 없어 외로운 남자들은 술만 마시면 제 평탄한 삶과 먼 이야기를 떠올린다는 점이다. 그것은 과거기도 하고, 누군가의 사연이기도 하며, 잘 듣다 보면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에 가깝다. 외로운 남자에게 이야기만큼 좋은 친구는 없으니까.

​<여자 없는 남자들>에서 유달리 기억에 남는 작품은 아내의 외도로 스스로 독립하려는 술집 사장 ‘기노’의 사연이다.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던 기노는 이모가 운영하던 카페를 이어받아 술집을 연다. 자신의 이름을 딴 술집 기노에는 다양한 단골손님이 있다. 바의 구석진 자리에 앉아서 술을 마시면서 독서를 하는 남자가 있고, 사연이 있어 보이는 검은 옷에 긴 생머리를 한 여자도 있다. 기노는 술을 마시는 인간 군상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점차 회복되어감을 느낀다. 단골손님 가미타는 기노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장소는 저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거하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기노는 이혼으로 받은 상처를 좋은 음악이 흐르는 술집 안에서 회복해간다. 다른 이들의 사연을 엿들으며 잔혹한 현실을 잊어낸다. 달콤한 위스키 그리고 머리를 긁는 고양이, 프란츠 리스트의 현란한 피아노 연주가 흘러나오는 기노야말로 하루키가 꿈꾸는 완전한 세계일 것이다. 떠나버린 여인은 그저 혼자 술을 마실 때 주전부리로 삼는 안줏거리에 불과하다.

하루키의 작품에서 화자가 자신이 사는 집에 애착을 갖는 건 흔한 일이다. 집에 취향이 고스란히 자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 없는 남자들>처럼 집의 상실에 불안감을 느끼는 캐릭터가 자주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늘 경제적 문제에 무미건조한 태도를 유지하던 남자들은 이 소설집에서만큼은 최소한의 삶의 조건으로 자그마한 집을 희구한다. 작가는 일본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청년들이 가진 경제문제, 거주지 찾기의 어려움을 녹여낸 걸까? 혼자 사는 이에게 번듯한 집 한 채가 주는 위안이 뭔지 평생 소설만 써온 하루키가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 신기하다.

 

메인 이미지 홍상수의 <북촌방향>(2011) 스틸

 

Writer

영화와 책, 그리고 예술 전반에 대한 글을 쓴다. 지은 책으로는 <우리 각자 1인분의 시간>, <보내지 않을 편지>가 있다. 염세주의자가 되고 싶으나 하루 세끼 먹을 때마다 행복하다.
박민진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