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무계’, ‘기상천외’, ‘정신 나간’ 같은 수식어가 붙는 공포영화가 있다. 바로 1977년 개봉한 <하우스>. 일본 영화 사상 가장 기묘한 컬트 영화 중 하나로 꼽히며, 일본의 <록키 호러 픽쳐 쇼>라고도 불린다.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야기와 파격적인 이미지 연출이 더해져 초현실적 분위기를 선사하는 작품이다. 개봉 당시 평단의 비판에도 아이들의 열광을 얻어 예상 밖의 상업적 성공을 거둔다. 뒤늦게 2009년 북미에서 출시되어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면서 해외에서도 컬트적인 추종자가 생기게 된다.

이미지 출처 – 링크

포스터 속 귀신들린 집의 이미지가 직설적으로 나타내듯, <하우스>는 ‘헌티드 하우스’ 장르의 계보에 속한다. 그러나 공포보다는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골몰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주인공인 고등학생 ‘오샤레’는 친구들과 시골의 이모 집에 방문하는데 이 여정은 과할 정도로 화사하게 묘사된다. 이후 괴이한 아우라의 집에서 미스터리한 인상의 이모가 등장하면 본격적으로 호러 코미디가 전개된다.

이미지 출처 – 링크

일곱 명의 친구들은 피아노, 이불, 장작 등 집의 물건으로부터 공격받으며 한 명씩 사라져가지만, 과장된 이미지로 인해 사건들은 무섭거나 심각하지 않고 오히려 유머러스하게 느껴진다. 말도 안되는 전개가 당혹스럽다가도, 내심 앞으로 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를 슬그머니 기대하게 되는 것이 <하우스>만의 매력이다. 대체 어쩌다가 이런 기묘한 작품이 탄생하게 된 것일까? <하우스>가 창작된 과정 역시 범상치 않았다.

이미지 출처 – 링크

 

영화 속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공포에 대한 상상

1960년대 할리우드에서 <죠스>가 히트하자, 고질라 시리즈를 만들며 당대 일본의 3대 메이저 스튜디오로 손꼽히던 토호 스튜디오는 실험적인 CF 광고로 이름이 알려진 오바야시 감독에게 이처럼 큰 성공을 거둘 영화의 대본을 작성해 달라고 요청했다. 신기하게도 감독이 의견을 구하기 위해 가장 먼저 찾은 이는 10살 정도였던 자신의 딸 치구미였다. 그는 항상 중요한 문제를 아이들과 함께 토론했는데, 그 이유는 어른들은 자신이 이해하는 것만 생각하여 예상 가능한 의견을 내지만, 아이들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해내기 때문이었다.

이미지 출처 – 링크

치구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잡아먹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말했다. 오바야시 노부히코 감독은 개미나 곰이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이 아이디어는 영화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환상이기에 매우 흥미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치구미의 이야기를 토대로 사람들을 집어삼키는 집을 소재로 삼았다. 건반에 손가락이 끼자 피아노에 물렸다는 느낌을 받은 경험과, 우물에 담가 식혔던 수박이 사람 머리처럼 보였던 기억을 비롯해 아이의 상상은 <하우스>만의 참신한 공포를 탄생시킨다. 오바야시 감독은 귀신들린 집의 배경에 전쟁에서 돌아오지 않은 연인을 기다리던 노파가 악령으로 변해 소녀들을 집어삼킨다는 설정을 넣었다. 히로시마 출신이었던 그가 평생 천착한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부여한 것이다.

이미지 출처 – 링크

 

비난을 굴하지 않는 도전이 이뤄낸 데뷔작

대본이 승인된 과정은 의외로 수월했으나 제작은 난관에 봉착한다. 토호 스튜디오의 모든 감독이 이 영화가 자신의 경력을 끝낼 것이라고 생각하여 아무도 맡지 않자 진행이 중단된다. 작품에 대한 무시에도 굴하지 않고 오바야시 감독은 포스터를 제작하며 직접 마케팅을 펼친다. 2년 넘게 다양한 홍보 방식을 시도하며 설득하는 오바야시 감독의 열정에 감명을 받은 토호 스튜디오 측은 결국 그를 감독으로 기용하였다. 제작이 보류된 시간 동안 <하우스>의 콘텐츠는 만화, 라디오 드라마, 사운드트랙 앨범 등으로 제작되며 많은 사람에게 영화에 대한 기대를 쌓았다. 특히 사운드트랙은 고딕 소설을 연상시키는 영화의 분위기에 걸맞게 우아한 음악으로 제작되었고, 작품을 더욱 환상적인 분위기로 만드는 데 기여하게 된다.

영화 <하우스>의 OST 앨범, 이미지 출처 – 링크
만화 <하우스>, 이미지 출처 – 링크

 

신선한 연출과 실험적인 표현기법

<하우스> 속 엉뚱한 상상들은 CF 감독 출신인 오바야시 감독의 특유의 감각적인 영상을 통해 몽환적으로 구현된다. 그는 자신을 영화 감독보다 영화 작가나 아티스트라고 생각하였기에,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전위적인 연출을 시도하였다. 감독은 또한 당시의 천편일률적인 리얼리즘 영화 대신 ‘영화 같은 현실’을 표현하고 싶어했다. 그가 원한 것은 진짜 같은 특수효과 대신 어린이가 만들 법한 효과였다. 그래서 촬영 기술을 계획하거나 스토리보드를 만들지 않고 세트장에서 실험하는 아날로그적인 촬영 방식을 택했다. 이런 과정 덕분에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키는 배경 이미지, 사이키델릭한 그래픽, 페이퍼 아트, 특수 합성처럼 다양한 영상 기술이 총망라되어 환상의 세계처럼 보이는 미장센이 완성된다.

데뷔작 <하우스> 이후로 <시간을 달리는 소녀> 실사판을 비롯하여 다양한 영화 장르에 도전하였던 오바야시 감독은 판타지와 컬트 장르의 대부로서 일본 영화계에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자신의 스타일을 집대성한 영화 <라비린스 오브 시네마>를 유작으로 남기며 2020년 타계했지만, 그만의 독창적인 시도가 담긴 작품들은 시대가 지나도 여전히 새로움을 줄 것이다.

 

Writer

글과 이미지가 만드는 아름다움을 좋아합니다. 
마음이 닿는 세상의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습니다.
줄라이 브런치
줄라이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