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위 그림은 클로드 드뷔시의 교향곡 ‘바다’의 모티브가 된 작품이다. 고흐, 모네 등 유럽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준 가츠시카 호쿠사이는 일본 에도시대 우키요에 (浮世畵: 에도시대 일상생활과 풍경, 풍물을 주로 그린 풍속화) 화가이다. 15세 무렵부터 책방에서 일하며 목판화 기술을 익혔는데 우키요에에 많은 관심을 가진 뒤 우키요에의 대가 가츠카와 순쇼의 제자로 들어가 본격적인 수업을 받았다. 그러나 중국화와 서양화까지 여러 가지 그림 사조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스승의 가르침을 어긴 죄로 파문을 당한다. 그러나 이것이 그를 더욱 폭넓은 화가로 자라게 하는 계기가 된다. ‘위치한 곳에 물들지 말라’는 좌우명을 가졌던 그는 평생 93회나 이사를 하였고 30회 이상 호를 바꾼 기인으로 알려진다. 호쿠사이 그림은 당시 인기가 있어 수요가 있는 대로 판화로 찍어냈다. 그것이 수백 장 찍혀서 팔렸는데, 정작 밑그림 그리는 돈만 받았던 호쿠사이는 매우 가난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일본 우키요에 그림에 영향을 받은 클로드 모네의 <일본 의상을 입은 여인>(1875)
<붉은 후지산>
<Kozuke Sano funabashi no kozu>

 

 

요괴 그림

일본에는 ‘하쿠모노가타리’라고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초 100개를 켜놓고 무서운 얘기를 한 가지씩 할 때마다 촛불을 끄는 놀이라고 한다. 결국 100가지 기묘한 이야기가 다 끝나고 모든 촛불이 다 꺼지면 괴이한 일이 생긴다고 전해진다. 호쿠사이는 하쿠모노가타리를 우키요에 판화로 남겼는데 지금 봐도 어색하지 않은 수작이 많다. 이는 자연스럽게 현대의 일본 요괴 만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오키쿠 귀신

부잣집 하녀였던 ‘오키쿠’는 주인이 아끼던 가보 접시를 깼다는 이유로 우물에 던져져 죽임당한다. 이후 그녀는 접시를 하나하나 세며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주는 귀신이 되는데, “한 장… 두 장… 아홉 장… 한 장이 모자라네….”라는 말로 주위 사람을 놀라게 한다고 한다. 위 그림은 접시로 연결된 뱀과 같은 형상으로 우물에서 빠져나오는 오키쿠 귀신을 표현한 작품이다.

 

엿보는 고헤이지

하쿠모노가타리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고헤이지’는 유명 배우였는데 아내와 친구에 의해 독살당한다. 한밤중, 깊은 잠에 빠진 고헤이지의 친구가 자고 있는 모기장 한쪽이 슬쩍 내려간다. 그리고 머리칼이 몇 가닥 남지 않고 해골과 같은 모습을 한 고헤이지가 등장한다는 내용이다.

 

오이와 귀신

부유한 집안의 딸과 결혼하려 아내를 살해한 비정한 남편. 그 아내인 ‘오이와’는 요괴가 되어 남편의 뒤를 따라다니고 남편은 미쳐버린다는 일본 귀신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여 그린 작품.

 

 

일본 만화의 시초, 호쿠사이 만화

<호쿠사이 만화> 속 캐릭터의 다양한 표정들 via ‘Panora’ 
만화 본문 중에서 via ‘Team wakon

다양한 그림 사조를 연습했던 호쿠사이는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한다. 50세 중반부터 60세까지 6년 동안 그렸던 <호쿠사이 만화>는 사후 출판된 것을 포함하여 15권이나 되는 대작이다. 만화라고 되어 있으나 지금의 만화책처럼 하나의 스토리로 된 것이 아니라 서민의 일상생활을 스케치해서 모은 일종의 데생집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호쿠사이가 그리는 기법이 오늘날 만화의 시초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를 일본만화(Japanimation)의 시초로 부르기도 한다. 현재 한문을 사용하는 아시아권에서 통용되는 만화(漫畵)란 용어도 호쿠사이 만화에서 처음 사용한 것이 유래가 되었다 한다. 호쿠사이 만화에서 그는 그때까지 없던 새로운 기법을 선보였다. 예를 들면 캐릭터가 뛰어가거나 화가 나서 씩씩대는 상태를 ‘=3=3’ 같은 모양으로 표현하거나 칸을 나누어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방식인 ‘코마와라’도 호쿠사이가 만들었다.

 

 

춘화

<문어와 해녀>

그의 1820년대 춘화집 <키노에노코마츠>에 수록된, 통칭 <문어와 해녀>라는 작품은 촉수물 포르노의 원형으로 평가받는다. 일본에서는 이 그림에 영향을 받은 사진전이 열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