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의 색으로 빛나는 전설 같은 뮤지션들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오직 하나, 오랫동안 자신의 색을 꾸준히 지키며 아직까지 현역으로 활동한다는 것. 각기 20년, 30년 넘게 활동을 이어온 블랙홀, 더더, 이상은의 2019년을 살펴본다.

 

블랙홀의 블랙

후배들이 꾸미는 헤비메탈 전설의 데뷔 30주년

블랙홀은 1989년 데뷔해,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이한 한국 록 신의 큰 형님이다. 지금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헤비메탈 음악을 고수하면서도, 기나긴 활동 시기 동안 흔한 휴지기나 해체 한 번 없이 신을 지켜왔다. 1993년에는 소외된 이들을 위한 자선 앨범을 발표했고, 미선이·효순이 추모 집회 연주, 이주노동자 권리를 위한 공연까지 참여하는 등 사회적 참여나 그늘진 곳에 대한 관심까지 놓지 않아 온 모범적인 선배다.

1집 수록곡 ‘야간비행’

이들이 2008년 발표한 8집 <Hero>는 제3회 한국대중음악상 2관왕에 올랐다. 블랙홀은 2014년에도 9집 <Hope>를 내놓으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렇게 지나온 30년. 선배 밴드의 음악을 사랑하고 발자취를 존경했기 때문일까. 오늘날 신을 대표하는 후배 밴드 9팀이 블랙홀의 데뷔 3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뜻을 모았다. 블랙홀 데뷔를 상징하는 1집 <Miracle>의 수록곡들을 오늘날 록, 메탈의 색깔로 재해석하기로 한 것.

8집 수록곡 ‘Ugly Hero’

블랙홀 데뷔 30주년 축하를 위해 뭉친 밴드의 면면은 무척 화려하다. 각각 데뷔 22주년, 14주년을 맞은 베테랑 밴드 바세린과 언체인드부터 메써드, 램넌츠 오브 더 폴른, 다크 미러오브 트래지디 등 한국대중음악상 메탈&하드코어 분야 음반상을 수상한 밴드 전원, 작금 가장 인기 있는 헤비니스 밴드 중 하나인 멤낙, 에이비티비, 팎 등 9팀이 뜻을 모았다. 블랙홀 데뷔 30주년 기념 헌정 음반 <리-인카운터 더 미라클>은 3월 31일까지 텀블벅 펀딩 진행 중이며 앨범은 올해 8월 발매할 예정이다.

블랙홀 데뷔 30주년 헌정음반 텀블벅 후원 페이지

 

더더의 블루

묵묵히 자기 색을 지켜온 모던록 전설의 새 앨범

김영준은 모던록 밴드 더더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다. 그는 23년째 밴드 더더를 이끌고 있으며, 동시에 사비나앤드론즈, 묘한나나 등 독보적 매력을 지닌 싱어송라이터들의 프로듀서이자 좋은 스승이 되어오고 있다. 김영준은 오랜 세월 동안 자기 음악을 통해 매번 다른 듯 비슷한 색을 이어왔다. 특히 더더를 통해서는 말랑말랑한 기타팝과 서정적인 모던록을 주로 오가며, 그만의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블루의 색을 유지했다.

2016년 발표한 싱글이자, 2018년 9집 수록곡인 ‘내 잘못이죠’ MV

초대 박혜경부터 2기 한희정, 김영준과 부부 사이인 현재의 이현영에 이르기까지 6명의 여성 보컬이 차례로 더더의 노래를 불렀다. 김영준은 더더의 음악을 표현하는 데 여성 보컬이 적합하다고 생각해, 한때 직접 인디 레이블 ‘우먼앤맨스’를 만들어 12명의 보컬을 영입하고 조련했다. 이렇게 탄생한 그와 더더의 음악은 차가운 듯 따스하게, 단단한 듯 다채롭게 노래의 감성을 전하며 밴드의 역사를 이었다. 4집 <The The Band>(2003)는 제1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반상을 받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2기 보컬 한희정이 참여한 4집 수록곡 ‘그대 날 잊어줘’

당연하게도 더더와 김영준의 손을 거쳐 간 보컬의 개성은 다양했다. 박혜경의 허스키하지만 발랄한 목소리, 한희정의 담백하고도 힘 있는 보컬, 이현영의 독특하고 귀여운 미성까지. 하지만 김영준의 식지 않는 뜨거운 감성과 늙지 않는 섬세한 감각을 거침으로써, 더더의 음악은 통일된 세련미와 감성을 갖춘 팝록의 대표 명사로 지금까지 자리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9집 <Have A Nice Day>에 스페셜 트랙 ‘I Never (REWIND)’를 추가한 디럭스 에디션을 발매했다.

더더 공식 페이스북

 

이상은의 레인보우

다채로운 색을 지닌 팝 전설의 쉬어 가기

강변가요제 출신의 아이돌 스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거듭난 이상은. 매 앨범 선보인 다채로운 콘셉트와 깊은 예술적 내공은, 그를 대중음악사 독보적인 뮤지션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상은은 1988년 데뷔 이래, 정규앨범만 무려 15집까지 발매했고, 책과 영화, 방송과 전시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진정한 아티스트의 표본이 되어 왔다.

1988년 강변가요제 대상곡 ‘담다디’

대학교 1학년 때 부른 ‘담다디’는 이상은을 하루아침에 대스타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이른 나이에 오르게 된 인기와 성공의 절정에서 일찌감치 허망함과 염증을 느꼈고, 이에 1990년 훌쩍 한국을 떠나 유학길에 올랐다. 뉴욕에서 입시 준비를 하는 동안 제작 전 과정을 스스로 주도해 만든 3집은 그를 비로소 싱어송라이터로 인정받게 했다. 이후 이상은은 갖가지 도전과 실험을 멈추지 않았으며, 한미일 3국을 오가며 음악을 발표해 자기만의 다채로운 빛깔 역사를 쓰게 된다.

14집 <We Are Made Of Stardust> 수록곡 ‘Something In The Air’ MV

국내에 일찌감치 힙합과 하우스 풍 음악을 소개한 4집 <BEGIN>(1992), 한국 고전의 시가를 부활시킨 ‘공무도하가’(1995), 거친 기타 사운드의 얼터너티브 록을 시도한 <외롭고 웃긴 가게>(1997), 일렉트로닉 사운드 실험의 성과를 보인 ‘비밀의 화원’(2003), 단지 음악만이 아닌 녹음, 믹싱 등 앨범 전체 작업을 홀로 해낸 15집 <Lulu>(2014)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업은 늘 새로웠다. 데뷔 30주년을 맞이한 지난 해, 30여 명의 팬과 3박 4일 소박한 여행을 다녀오며 잠시 쉬어 간 행보마저 그다웠다. 2019년, 이상은은 그렇게 또 다른 색의 31년을 맞이하기 위해 기지개를 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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