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둘 출간한 드로잉 북으로 꾸준히 팬을 모으고, 2008년 발매된 제이슨 므라즈 여덟 번째 앨범 커버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아티스트, 바로 데이비드 슈리글리(David Shrigley)이다. 개성 있는 선과 과감함으로 완성한 시그니처 드로잉부터 소재를 넘나드는 입체 작품들까지 그 깊고도 넓은 세계에 빠져든다.

드로잉 북 시리즈(왼쪽), 제이슨 므라즈 ‘I'm Yours' 앨범 커버 작업(오른쪽)

 

데이비드 슈리글리, 끊임없이 그리고 만들고 소통하다

‘197cm tall. Artist. Likes pens, rulers, etc.’

40개의 드로잉북 출판과 3,000여 개의 인스타그램 게시물, 그 양을 가늠하는 것만으로도 데이비드 슈리글리가 얼마나 대중과 소통을 성실히 하는지 알 수 있다. 이미 축적된 작업량이 어마어마하다 해도 매번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거의 매일 한 장의 작품이 그의 소셜 미디어 계정에 업로드된다. 그 덕에 항상 새로운 스낵 컬처와 시각적 영감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인스타그램에서는 팔로워 수가 95만을 넘겼고 여전히 꾸준히 늘고 있다.

데이비드 슈리글리 트위터 계정(왼쪽), 인스타그램 계정 (오른쪽)

그렇다고 작가가 본인의 삶을 노출하기를 즐기진 않는다. 자화상을 프로필 사진으로 지정한 그의 트위터 소개에는 단 세 문장, ‘197cm의 키. 예술가. 펜과 자를 좋아함’이 전부다. 그런데도 그의 작업물의 어조와 소셜 미디어 형식이 닮아 있어 세상에 작품을 내놓는 주 소통창구로 소셜 미디어를 선택했다고 한다. 맥락 없이 일상을 편집해 올린 게시물들이 다양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처럼 그의 작업물은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속의 위트와 유머가 웃길 수도 울릴 수도 화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30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작가로 활동해왔고, 2013년 터너상 후보에 올랐으며, 2020년 대영제국 최고 훈장(OBE)까지 받은 데이비드 슈리글리. 그는 가장 유명한 현존 작가 중 하나이지만 절대 안주하지 않고 성실히 그만의 페이스를 달리는 중이다

 

데이비드 슈리글리, 그의 유머, 위트, 그리고 메시지

‘THE PILE OF CRAP IS NOT A PILE OF CRAP’

‘이런 작품으로 유명해졌다고? 나도 그릴 수 있겠는데?’ 아리송한 반응을 보내는 관람객도 있지만, 보면 볼수록 어떻게 이런 이미지에 이런 메시지를 더했을까 감탄하게 된다. 작품의 구성은 복잡하지 않다. 동물, 인물, 자연물, 사물 등이 장면을 꽉 채우고 위, 아래 혹은 모서리에 정형화되지 않은 손글씨로 된 문장이 있다. 하지만 정어리 통조림, 주차장에 놓여있는 자동차들, 청소기, 레몬, 손가락처럼 일상에서 관찰한 것을 사회적 문제, 삶의 통찰과 결합하는 능력이야말로 데이비드 슈리글리 예술 세계의 정수다.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는 친근함과 간과했던 깨달음을 동시에 주는 작품들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데이비드 슈리글리의 드로잉 작업

그는 글래스고 아트 스쿨 진학 전부터 노트 패드에 아날로그식으로 그림을 그렸고, 순수 미술을 전공했지만, 만화적 작품을 하는 것에 더 관심을 보였다. 예술계에서는 인정받기 힘든 선택에도 그의 작품이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런 형식으로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원하는 방향을 파고드는 의지와 시대의 흐름이 만나 좋은 시너지를 만들어 낸 셈이다. 괴물, 외계인, 나쁜 어른들이 종종 등장하는 이 세계에서는 유머러스한 표현, 위트있는 구성이 한 편의 코미디를 완성한다. 특유의 영국인 블랙 유머를 오늘날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데이비드 슈리글리, 지루할 틈 없이 도전하는 삶

‘Don’t be afraid of failure.’

예술가로서 데이비드 슈리글리의 작업 매체와 방식은 매우 넓다. 그는 드로잉, 회화부터 설치 작품, 애니메이션 등 그 입지를 단단히 한 현대 미술의 범주를 넘어 뮤직비디오, 광고, 오페라, DJ, 패션 디자인까지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가능성을 실험한다는 신념으로 지루해질 때까지 하나의 분야를 파고, 미련 없이 다음을 찾아 나선다. 예술가로서 중요한 것은 ‘자기기만(Self-Delusion)’이라고 꼽았는데 하고자 하는 것이 있을 때 도움이 되지 않는 부분은 무시하고 우선 돌진하는 그의 행보와 닮아 있다.

데이비드 슈리글리의 애니메이션 작업

현대 미술가이지만 그의 작품은 사람들의 일상에서 매일 소비되기도 한다. 매년 달력을 만들고, 브랜드 혹은 다른 작가와 협업하며 티 타올, 문구류, 머그, 포스터 제작에 적극적인 모습은 끊임없이 변화와 도전을 즐기는 성격의 결과인 것 같다. 관객의 반응을 ‘좋다’, ‘나쁘다’로 나누지 않는 그는 사람들이 그의 작품과 함께 사진을 찍고 현장을 즐기는 과정에서 작품의 맥락이 변화한다고 설명한다. 진지한 표정과 차분한 인터뷰에도 역동성을 추구하는 열정이 담겨있다.

작품을 사람들에게 빠르게 선보이고 그것을 통해 소통하는 데이비드 슈리글리는 변화하는 스낵컬처 시대에 최적화된 예술가이다. 수많은 방구석 예술가들이 작품을 선보일 장소를 찾지 못해 예술의 다양성이 꽃피지 못했던 시절을 뒤로한 채, 그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음을 증명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몇 번의 터치와 클릭으로 더 다양한 작가와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시대에 사람들은 더 다양한 관점과 새로운 통찰을 궁금해한다. 그리고 그것을 충족할 수 있는 성실한 크리에이터는 예술계와 대중을 모두 사로잡는 게임체인저가 되는 것 같다.

 

데이비드 슈리글리 홈페이지

데이비드 슈리글리 인스타그램

데이비드 슈리글리 트위터

 

Writer

넓고 깊게 이야기를 담고 싶은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