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시기에 인간에게 힘을 주는 건 역시 문화예술이 아닐까.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많은 이들이 지친 시기에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여줄 새로운 전시가 찾아왔다. 지난 4월 24일 회현동의 문화공간 피크닉(piknic)에서 시작한 전시의 제목은 <명상 Mindfulness>이다. 피크닉은 개관 이후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 디자이너 재스퍼 모리슨, 무대미술가 페터 팝스트의 전시를 개최한 데 이어 이번에는 여러 아티스트들과 함께 ‘마음’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명상은 마음을 다스리고 평온을 찾는 하나의 치유적 방법일 뿐만 아니라 예술가들에겐 창작의 동기가 되기도 한다. 이번 전시는 회화, 영상, 공간디자인 등 다양한 작품을 전시하며 감상자들이 자신의 내면에 더 가깝게 다가가도록 이끈다. 그래서 첫 작품부터 마지막 작품까지, 각 공간을 이동하며 전시를 관람하는 과정이 마치 자신에게 다가가는 하나의 여행 같은 느낌이다.

미야지마 타츠오, ‘Five Opposite Circles’, (c)GLINT

세계적 거장부터 젊고 감각적인 아티스트들까지 다양한 국적과 분야의 작가들 9팀이 참여했고, 이들 중에는 개인의 경험과 관심으로 명상적 수행을 해온 이들이 많다. 죽음에 관한 사유를 담은 대만 작가 차웨이 차이(Charwei Tsai)의 영상설치 작품은 ‘공(空)’의 개념을 지속해서 탐구해온 작가의 성찰이 묻어난다.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인 미야지마 타츠오(Miyajima Tatsuo)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그는 동양의 세계관과 불교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았고 LED 작품을 통해 삶과 죽음, 윤회를 이야기해왔다. 특히 LED 디지털 카운터 연작으로 유명한데, 이번에 전시된 ‘Five Opposite Circles’에서도 어두운 공간 속에서 원형으로 깜빡이는 LED 숫자들을 통해 시간이라는 무형의 개념을 시각화했다.

박서보x원오브제로(1OF0)의 작품 전시 설치전경, (c)GLINT

특히 인상적인 공간은 한국미술계의 거장 박서보 화백의 작품이 설치된 전시실이다. 그는 신인작가 원오브제로(1OF0)와 협업으로 만든 공간에서 7점의 단색화를 선보였다.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박서보 화백의 회고전 제목이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였던 것을 상기하게 된다. 캔버스나 물을 머금은 한지 위에 연필로 선을 긋는 행위를 계속하는 ‘묘법’처럼 작품을 위해 같은 행위를 수없이 반복하는 작업 또한 마음을 비워내는 수행이자 명상적 행위다.

명상에 심취하며 명상교육을 위한 재단도 설립한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의 작품도 상영된다.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왜 명상에 빠져들었는지, 무엇을 얻었는지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한국의 아티스트 그룹 패브리커(Fabrikr)가 피크닉에 만든 신비로운 공간에서는 칠흑 같은 어둠을 경험하며 잠시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패브리커의 ‘空間’, (c)GLINT

이번 전시는 관객에게 체험을 유도하는 만큼, 전시장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기억에 남을 만한 경험도 하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오마 스페이스(OMA Space)가 선사하는 감각적 경험이다. 음악을 감상하면서 맨발로 천천히 흙과 돌을 밟으며 걸어보는 시간은 도시의 일상에서 쉽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전시의 모든 여정이 끝난 뒤 루프톱에서 차 한잔을 마시며 관람을 마무리하는 것 역시, 정화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명상 체험이다.

명상이란 자신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이다. 아티스트들의 작품에 대한 감상은 모두가 다르겠지만, 매 순간 자신에게 집중하며 관람할 때 내면의 무언가를 알아차리게 되고 그것만으로도 힐링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꼭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거나 무언가에 중독돼 치유가 필요한 상태가 아니라도 현대인들은 이렇게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전시를 보기로 결정했다면 일상에서 가속해오던 자신의 속도를 멈춘 채, 최대한 여유롭게 관람하고 체험해보길 권한다.

 

<명상 Mindfulness>
일시 2020.04.24~2020.09.27 (월요일 휴관)
장소 서울 중구 퇴계로6가길 30 피크닉 piknic
입장료 15000원
* 전시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사전예약제로 운영된다.

 

Writer

잡지사 <노블레스>에서 피처 에디터로 일했다. 사람과 문화예술, 그리고 여행지에 대한 글을 쓴다. 지은 책으로는 에세이 <마음이 어렵습니다>, <회사 그만두고 어떻게 보내셨어요?>, 여행서 <Tripful 런던>, <셀렉트 in 런던>이 있다.
안미영 네이버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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