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클로에 대한 호불호는 분명하다. 누군가에게 유니클로는 가성비 좋은 패션 브랜드일 것이고, 누군가에게 유니클로는 여러 논란을 일으키는 일본기업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유니클로가 얼마나 좋은 제품을 만드는지 혹은 얼마나 나쁜 기업인지에 관한 것이 아니다. 유니클로가 펼쳐 온 마케팅에 관한 이야기다.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시골의 작은 옷가게에서 시작한 유니클로가 이렇게 세계시장을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 한 번쯤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유니클로에 대한 호불호는 잠시 접어두더라도 말이다.

 

<유니클락 캠페인>(2008)

유니클락 캠페인 설명 영상

시작은 2008년 ’유니클락(UNIQLOCK)’이었다. 2005년, 미국에 진출하게 된 유니클로는 전 세계에 통용되는 무언가를 원했다. TV와 신문에 신제품을 광고하는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천문학적인 매체비를 쓰지 않고도 세계를 아우를 수 있는 그런 무언가. 세계인의 입에서 입으로 저절로 퍼져가는 그런 무언가. 그런 무언가를 안 찾아본 광고인들이 누가 있으려만, 그것은 꿈만 같은 이야기였다. 그런데 유니클로는 그 무언가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바로 블로그 위젯이었다.

유니클락 위젯 설치 과정 Via ‘The FWA
유니클락 위젯 설치 예시 Via ‘UNIQLOCK

전 세계 어디나 인터넷에는 블로그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블로그는 개인의 공간이기도 했지만 무시무시한 입소문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유니클로는 블로그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설치하고 싶은 위젯을 하나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유니클로가 만든 위젯을 블로그에 자발적으로 설치하면 그 블로그를 가진 개개인이 모두 유니클로의 영업사원이 될 터.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유니클락. 위젯이 마케팅의 수단이 된 것은 유니클락이 세계 최초였다. 사실 유니클락은 위젯이라고 하기에는 뮤직비디오에 가까웠고, 뮤직비디오라고 하기엔 어쨌든 위젯이긴 했다. 게다가 스크린세이버 기능도 있었다. 세계 최초였기에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단어는 없었다. 그냥 한마디로 유니클락이었다.

유니클락 댄스 영상 모음 Via ‘A.C.T.Brouwer

유니클락에는 유니클로를 드러내는 그 어떤 메시지도 없었다. 중독적인 음악과 그보다 더 중독적인 일련의 춤, 그리고 시계가 전부였다. 일본 최고의 일렉트로닉 뮤지션인 FPM(fantastic plastic machine)이 만들어낸 경쾌한 음악에 맞춰 유니클로의 옷을 입은 여성들이 무표정하게 춤을 추는 영상이 5초마다 한 번씩 반복되는 형식이었는데 춤을 추는 사람들이 입은 옷이 유니클로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유니클로임을 보여주는 건 없었다.

전 세계 유니클락 설치 현황 Via ‘The FWA

네티즌들은 이 위젯에 열광했다. 앞다투어 자신의 블로그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결국 런칭 8개월 만에 7개국의 3만 4천여 블로그에 유니클락이 자리를 잡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1년 만에 세계 210개국에서 1억 3천만명이 이 위젯을 타고서 유니클락 웹사이트를 방문했다. 이 모든 사람이 유니클로의 제품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 관심이 주문으로 이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 유니클로의 온라인 매출은 엄청나게 증가했다. 미국의 원쇼 광고제를 시작으로 클리오 광고제, 칸 광고제에서 연이어 그랑프리를 가져가면서 2008년 최고의 광고 캠페인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덤. 저 멀리 아시아에서 온 일본의 패스트패션 브랜드가 명실상부한 글로벌 브랜드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고작 시계 하나로 인해서 말이다.

 

<유니클로 럭키라인 캠페인>

럭키라인 캠페인 설명 영상

2010년은 1984년 유니클로가 히로시마에 1호점을 오픈한지 어언 26년 되는 해였다. 유니클로는 26주년을 맞이해 이벤트를 열고 싶었다. 물론 전단에 쿠폰을 넣어 뿌리거나 TV 광고로 할인행사를 알리거나 방문 고객에게 추첨 행사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유니클락으로 성공을 맛본 후였다. 그렇고 그런 이벤트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유니클로는 그래서 다소 엉뚱한 생각을 했다. 할인행사가 있을 때마다 매장 앞에 길게 늘어서는 줄. 그 줄을 온라인으로 옮겨 놓으면 어떨까 하는…. 럭키라인은 그렇게 탄생했다. 원리는 간단했다. 유니클로 홈페이지에 들어가 자신을 대신할 아바타를 고르고 트위터 계정을 입력하면 가상의 유니클로 매장 앞에 줄을 서게 된다. 26주년 기념 이벤트니까 줄 선 사람 중에서 스물여섯 번째 사람마다 만엔의 쿠폰을 준다. 아바타가 줄을 서는 것과 동시에 이벤트 당첨 여부를 확인할 수 있고, 만약 이벤트에 당첨이 되지 않으면 1분 뒤 다시 아바타를 줄에 세워 이벤트에 도전할 수 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3일 만에 무려 14만명이 참여했다. 그 말인즉슨 유니클로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가상의 매장 앞에 14만명의 아바타가 줄을 선 장관을 볼 수 있었다는 얘기. 이틀 연속 트위터 인기검색어 1위를 차지한 것은 기본. 결과적으로 총 220만 명 이상이 참여하는 기록을 세웠다. 2011년 칸 광고제에서는 사이버 부문 골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26주년 한번 제대로 기념한 셈이다.

럭키라인은 이후 유니클로의 전통이 되었다. 대만에서 유니클로 매장이 오픈할 때도,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3개 매장을 동시 오픈할 때도 비슷한 형식의 이벤트가 열렸다. 대만에서는 무려 63만 명이 가상의 매장 앞에 길게 늘어서 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세계 어디라도 자기 대신 아바타를 내세워 줄을 서고 할인 쿠폰을 받고 싶은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것이다.

단순한 아이디어. 하지만 참여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아이디어. 시계가 춤이 되기도 하고, 나 대신 나의 아바타가 줄을 서기도 하는, 기존의 상식을 살짝 비틀어버리는 재미있는 아이디어. 유니클락과 럭키라인의 성공으로 유니클로의 마케팅은 자기만의 색깔을 확실히 찾았다.

 

<라이프웨어 캠페인>

유니클로 와이어리스 브라 광고

그렇다면 최근엔 어떤 행보를 보일까? 최첨단을 달릴 것 같던 유니클로는 근래 들어 전통의 광고개념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특히 2017년 영국에서 했던 광고를 보면 말이다. 광고대행사 ‘Droga5 London’은 유니클로와 손을 잡고 첫 작품으로 “Becuase of Life, We made Lifewear”라는 카피 아래 <라이프웨어(Lifewear)> 캠페인을 런칭한다. 광고는 총 세 편. ‘Wireless Bra’, ‘Airism’, ‘Distressed Denim’이 그것이다. 이 광고들은 2016년 Droga5 뉴욕에서 만들었던 ‘우리는 왜 옷을 입는가’ 광고에 대한 대답처럼 보인다.

Starcrawler ‘Ants’

세 편 중 눈에 띄는 것은 단연 ‘Wireless Bra’ 광고. 브래지어가 얼마나 편하고 자유롭길래 저렇게까지 몸을 구부리고 비틀며 춤을 출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뮤직비디오다. 특히 그러한 메시지를 강조하는 “Move like you're not supposed to”(굳이 해석하자면 ‘움직일 수 없었던 것처럼 움직여라’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은)라는 카피까지 더해지면 어떤 해방감이 느껴질 정도다.

Somesuch의 어텀 드 와일드(Autumn de Wilde)가 감독을 맡았는데, 배경음악으로 쓰인 ‘Ants’를 부른 밴드 Starcrawler의 리드 싱어 애로 드 와일드(Arrow de Wilde)가 바로 감독 어텀 드 와일드의 딸이다. Starcrawler의 ‘Ants’가 이 광고만의 기이하고 독특한 매력을 만들어낸다는 걸 감안하면 감독 딸의 참여는 낙하산이라기보다 부녀의 효과적인 협업에 가까워 보인다.

Sia ‘Chandelier’

거기에 Sia의 ‘Chandelier’ 뮤직비디오와 넷플릭스 <The OA>의 안무가로 유명한 라이언 헤핑턴(Ryan Heffington)의 안무와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에서 의상을 담당했던 낸시 슈타이너(Nancy Steiner)의 스타일링도 영상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유니클로 ‘AIRism’

‘AIRism’ 편은 또 어떤가. ‘Wireless Bra’ 편과 전혀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경쾌하고 독특했던 ‘Wireless Bra’와 달리 ‘AIRism’은 느리고 단조롭다. 하지만 느리기에 연기의 움직임이 더 돋보이고, 색이 단조롭기에 땀방울이 희뿌옇게 증발되는 모습이 더 와닿는다. 거기에 “우리의 몸은 숨을 쉬도록 만들어졌다. 그러니 우리 옷도 우리와 함께 숨을 쉬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질문을 던지는 마지막 카피까지. 메시지 전달 면에서나 시각적인 즐거움 면에서나 모든 면에서 완벽한 광고다.

‘Wireless Bra’ 광고나 ‘AIRism’ 광고를 보다보면, Droga5 London의 수석 크리에이티브 담당자인 데이비드 콜부즈(David Kolbusz)가 말했던 “유니클로의 옷을 사야 하는 합리적인 이유를 예술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다”는 그 의도가 무엇인지 확실히 느껴진다.

유니클로 ‘Distressed Denim’

 

메인 이미지 출처 '포츈'

 

Writer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카피 쓴다는 핑계로 각종 드라마, 영화, 책에 마음을, 시간을 더 쓰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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