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 중의 덕은 영화감독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입증하듯 영화감독들의 덕밍아웃은 오늘날에도 계속 이어진다. 타이타닉 안에 들어가 보고 싶어서 영화 <타이타닉>을 만들었다는 제임스 카메론, 재즈를 너무 사랑했던 <라라랜드> 감독 데이먼드 셔젤, 온갖 것을 포크레인 마냥 파고들었던 쿠엔틴 타란티노, 소문난 클래식 마니아 박찬욱……. 열거하자면 끝이 없고, 도대체 무언가의 덕후가 아닌 영화감독이 있을지 의문마저 생기지만 이 글에서는 그중에서도 특히 ‘괴기 덕후’인 영화감독들을 소개한다. 이상하고, 음침하고, 어둡고, 사랑스러운 그들의 영화를 통해 괴기력을 충전해보자.

 

1. 기예르모 델 토로

자타가 공인하는 괴수 마니아인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그의 영화 필모그래피는 전부 기괴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재패니메이션에 푹 빠져, 등장하는 모든 괴수의 이름을 줄줄 외울 정도의 덕력을 자랑했다. 특히 <고지라>, <울트라 맨>을 좋아했다고.

<판의 미로> 스틸컷

이에 영향을 받아서일까. 그는 말 그대로 괴물 영화의 장인이 되었다. 뱀파이어를 그린 첫 장편 <크로노스>, <헬보이> 시리즈, <악마의 뼈>와 그를 잇는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이하 <판의 미로>), 여기에 더해 거대 로봇과 거대 괴수의 대결을 그린 <퍼시픽 림>으로 덕후의 한을 풀기도 했다.

<퍼시픽 림> 스틸컷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의 영화 속 괴물 중 왕 중 왕은 역시 <판의 미로>에 등장하는 ‘눈깔 괴물’이 아닐까 싶다. 괴물의 방을 표현한 영화 미술도 일품인데, 정말 영화를 이루는 모든 곳에서 기괴함이 폭발한다.

<판의 미로>에서 눈깔 괴물이 등장하는 장면
<헬보이2>에서 ‘I can’t smile without you’를 부르는 헬보이와 에이브

괴물에 대한 그의 사랑은 단순히 영화 미술, 분장 쪽만이 아닌 스토리에서 잘 드러나는데, 그가 창조하는 괴수들은 인간적인 면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 <헬보이 2: 골든 아미>에서 헬보이와 에이브가 함께 ‘I can't smile without you’를 부르는 장면은 꽤 뭉클하다. 연애상담을 해주며 맥주 한 캔을 곁들이는 그들의 모습은 정말 사람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델 토로 감독은 인터뷰에서 “괴물들은 아름다움 그 자체입니다. 제 영화 안에서 괴물성이란 외모가 아닌 사람의 마음 속에서 발현됩니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아, 아름다운 괴물들이여!

 

2. 키아 로취 터너

시체스 영화제가 사랑하는 감독, 키아 로취 터너를 소개할 때가 왔다. 아직 한국에서 익숙한 이름은 아니지만, 좀비물을 특히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웜우드>라는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봤으리라. 좀비, 호러, 아포칼립스를 사랑하는 것으로 알려진 키아 로취 터너는 자신의 영화를 통해 그 애정을 마음껏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이에 더해진 B급 감성은 그의 장편 영화 <웜우드 :분노의 좀비 도로>(이하 <웜우드>)를 더욱 특별하게 해준다.

<웜우드> 스틸컷
<웜우드> 트레일러

남자 주인공은 좀비들이 뿜어내는 메탄가스를 동력으로 하는 엔진을 개발해서 ‘좀비프루프’라는 전투 트럭을 몰고 다니고, 주인공의 여동생은 미치광이 박사의 실험 대상이 되었다가 좀비를 다스리는 힘을 얻어 ‘좀비퀸’에 등극한다. 그가 <웜우드>를 통해 창조한 종말의 세계와 주인공들의 끝내주는 입담을 듣고 있자면 이 장르가 과연 ‘호러’인지 ‘코미디’인지 헷갈릴 정도다.

키아 로취 터너의 단편 <데몬러너(DAEMONRUNNER)>

키아 로취 터너는 최근 시체스 영화제를 통해 <데몬러너>라는 5분짜리 단편 영화를 선보였다. 영화를 보다 보면 눈에 띄는 몇몇 오마주들이 보이는데, (<고스트 버스터즈>나 <엑소시스> 같은) 이쯤 되면 정말이지 ‘이 사람은 덕력을 자랑하기 위해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즐거운 생각이 든다.

 

3. 조성희

<늑대소년>과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로 잘 알려진 조성희 감독. 하지만 그가 <늑대소년>을 선보였을 때 그의 전작을 알고 있던 영화 팬들은 이 로맨스 영화의 감독이 조성희라는 것을 믿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성희 감독이 한국영화아카데미 시절에 선보였던 작품들은 대단히 기괴하고 으스스했기 때문이다.

<남매의 집> 스틸컷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단편 <남매의 집>은 한 소년의 눈높이에 맞추어 세기말의 분위기를 완벽히 재현해낸다. 조성희 감독은 <남매의 집>과 첫 장편 <짐승의 끝>에서 어떠한 이팩트도 넘치는 분장도 없이 괴기(怪奇)를 표현해낸다. 대신 너무나 현실적인 모습의 사람들이 자행하는 ‘이상한’ 행동과 말투, 분위기 속에서 공포는 극대화된다.

<짐승의 끝> 예고편

<짐승의 끝>에서 야구모자 역을 맡은 박해일이 총을 든 남성에게 말로 시비 거는 이 장면은 음악, 피, 이팩트 하나 없이도 영화의 분위기를 무섭게 자아내고 있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만화 마니아임을 밝힌 조성희 감독은 특히 <20세기 소년>과 <에반게리온>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그래서일까? 그가 평소에 충전해놓았던 괴기력은 로맨스 영화 <늑대소년>을 비껴가지 못했고 탐정물 <탐정 홍길동>에서도 조금씩 얼굴을 드러낸다. 밝아 보이기만 하는 이 두 영화에도 어느 순간 특유의 ‘스산함’이 언뜻언뜻 끼어들어 있는데, 감독의 전작을 보면 이 느낌이 대체 어디에서 왔는지 충분히 알 수 있으리라 믿는다.

<짐승의 끝> 스틸컷

그들의 영화에서는 덕후의 냄새가 난다. 덕후는 덕후를 알아본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작품 속에서 은연중에 드러나는 그들의 덕질은 영화를 감상하는 포인트들을 한층 돋보이게 해준다. 무료한 일상에 지쳤거나 괴기력 충전이 필요한 분들에게 이 괴기충만한 감독들의 작품을 추천한다.

 

메인 이미지 <웜우드> 스틸컷 

 

Writer

아쉽게도 디멘터나 삼각두, 팬텀이 없는 세상에 태어났지만 그 공백을 채울 이야기를 만들고 소개하며 살고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들고, 으스스한 음악을 들으며, 여러 가지 마니악한 기획들을 작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