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밴드 혁오(hyukoh) <22>에 실린 그림 원본

노상호는 ‘네모난(Nemonan)’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미술가다. 정확히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덧붙이는 작가’라고 하는 게 맞겠다. 그만의 독특한 작업 방식과 성실하게 그려온 많은 양의 작품은 일찍이 미술계와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그중 2015년 밴드 ‘혁오(hyukoh)’의 두 번째 EP 앨범 <22> 재킷 그림은 노상호라는 미술가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데 크게 공헌한 작업이다.


“땅 밑에는 침팬지들이 낄낄거리고 있었다.

나는 누구도 죽여본 적이 없는 살인자라는 말을 떠올렸다.
야간비행은 침침하고 적적하고, 늘 그랬다.”

▲ <a night flight>, 노상호 홈페이지 ‘Daily Fiction 2015 ’ 중

그는 매일 한 장의 드로잉과 그에 맞는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다. 자신이 만든 작품의 원본성은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역시 인터넷에 표류하는 무수한 사진과 그림, 이야기를 토대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 때문이다. 값싼 켄트지에 붓과 수채화 물감으로 그린 그림은 SNS에 올라가면서 사람들의 손을 거쳐 빠르게 퍼져 나간다. 누군가는 그 그림을 짧은 눈길로 빠르게 소비하고, 누군가는 그가 쓴 이야기로 위로를 얻거나 영감을 받는다. 그렇다면 반대로, 노상호는 인터넷에 널린 무수한 영상 중 어떤 것을 보고, 어떤 영향을 받으며, 어떤 방식으로 즐길까? 매일 작업실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꽤 외로운 사투를 벌일 그가, 혼자만의 적적한 밥 시간을 달래줄 시청각들을 보내왔다.

Noh Sangho Says, 

“돌이켜보건대 게임을 하건 음악을 듣건 공부를 하건, 심지어 ‘멍을 때리고’ 있더라도, 컴퓨터 앞에서 보낸 세월을 합치면 10년은 되지 않을까 싶다. 작업을 하다 보면 종일 컴퓨터를 틀어놓게 된다. 그림을 그리는 직업이다 보니, 음악·라디오·예능 프로그램 등을 귀로만 들을 때가 많다. 특정한 영상을 집중해서 보는 시간은 '밥 먹을 때’가 거의 유일하다. 점심은 주로 모니터 앞에서 해결할 때가 많은데, 이때 볼 영상을 고르는 일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너무 길면 밥을 다 먹고 나서도 영상을 계속 보게 되어 시간을 낭비하고, 너무 진지하면 밥이 넘어가질 않는다. 그렇기에 아래 영상들이 나만의 '밥 시간'에 안성맞춤인 시청각들이다.“

 

1. 모임 별의 곡 ‘태평양’을 삽입한 게임 영상

평소 ‘모임 별(Byul.org)’이 만든 음악에 자극을 많이 받는다. 이 영상은 모임 별을 검색하다 유튜브에서 우연히 찾았다. 추측건대 누군가 게임 영상에 모임 별의 노래를 붙여 만든 게 아닐까 싶다. 끝도 없는 길을 보고 있으면, 왠지 차 안에서 '태평양'을 크게 틀고 드라이브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차도 없고 게임을 할 시간도 별로 없으니까 밥을 먹으며 이런 식으로 기분이라도 느껴본다.

2. 웨스 앤더슨 감독의 단편영화 <CASTELLO CAVALCANTI>

최근 작업에 참고할 만한 것이 있어 웨스 앤더슨(Wes Anderson) 감독의 영상을 많이 본다. 그가 프라다(PRADA)와 협업하여 만든 이 영상은 7분 남짓 길이라 밥을 먹으며 보기에 적당하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우연한 사고로 낙오한 카레이서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모험기’ 정도가 아닐까. 웨스 앤더슨 작품은 생각보다 집중하고 보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 영어를 잘 몰라 정확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눈이 즐거운 영상.

 3. 게임 <오버워치> 플레이 영상 

게임을 하는 것보다 고수들의 게임 방송을 보는 것이 더 재미있을 때가 있다. 실제 내 오버워치 실력은 너무 보잘것없으니 고수의 영상을 보며 마음을 정화한다. 대리만족 같은 기분이다. 개인적으로 ‘파라’라는 캐릭터를 좋아하는데, 그가 등장하는 영상을 보며 이것저것 배우고 '저런 건 PC방 가서 해봐야지' 하고 기억하기도 한다. 물론 절대 마음처럼 되지 않지만.

4. 음악 프로그램 <이소라의 프로포즈> 

 1996년. 당시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고 부모님의 이상한 교육 철칙 때문에 밤 10시 이후엔 TV 시청이 금지였다(무려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이소라의 프로포즈>는 그때 굉장한 이슈인 프로그램이었는데 늘 소문을 통해 들을 뿐이었다. 이후 성인이 된 나는 한 맺힌 사람처럼 어릴 때 보지 못한 심야프로그램을 유튜브로 자주 찾아보곤 한다. <이소라의 프로포즈>는 이소라의 독특한 진행과 마이너한 선곡을 엿볼 수 있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이다. 어떤 시즌에는 이소라가 거의 매일같이 노래하기도 한다. 당시엔 아무렇지 않게 봤는데, 후임 프로그램인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매주 윤도현이 노래를 부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현재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전신이기도 한 이 프로그램을 늘 즐겁게 돌려보고 있다.

 

노상호는?
1986년에 태어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했다. 서울문화재단의 <MACHEN CART PROJECT>(2013), 국립현대미술관의 <젊은모색 2014>(2014), 세종문화회관의 <굿즈2015>(2015) 같은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로 선정되었다. 올해 10월에는 세 번째 개인전 <THE GREAT CHAPBOOK>(2016)을 열었다.
인터넷, 잡지, 신문 같은 매체에서 이미지를 수집하거나 일상의 한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기록한다. 수집한 이미지는 먹지를 덧대 베껴 그리고 여기에 자신의 일상 경험 혹은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하여 쓴다. 자신이 만든 이야기를 ‘데일리 픽션’이라 명명했고, 이것들을 엮어 그림책 <Daily Fiction>(2015, 미메시스)으로 발간했다.

홈페이지 http://nemonan.net/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nemon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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