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이 가장 사랑하는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위치한 퓌블리시스 극장이 일주일간 한국영화로 가득 채워진다. ‘한불 영상문화 교류협회 1886’의 주최로 2006년부터 이어져 온 파리 유일의 한국영화제가 시작했기 때문이다. 올해로 11회를 맞은 ‘파리한국영화제’는 프랑스인들에게 매회 50여 편의 장, 단편 한국영화를 소개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한불수교 130주년을 기념하여 지정된 '한-불 상호교류의 해'라 더 뜻깊다.
이번에도 역시 최근 화제작부터 숨겨진 명작까지 알뜰살뜰하게 챙겼다. 개막작으로는 올여름 국내 관객 700만 명을 동원하며 흥행한 김성훈 감독의 <터널>을, 폐막작으로는 한국 독립영화계에 독보적인 자국을 남기고 있는 김종관 감독의 <최악의 하루>를 선정했다. 가히 올해 국내 영화계 흐름을 빼곡히 담은 파리한국영화제의 알찬 시간표는 지금 파리에 없는 사람들마저 아쉽게 만들 정도다. 그러나 화려한 개선문이 보이는 샹제리제 거리에서는 못 보더라도, 아쉬움을 달랠 방법은 있다. 올해 파리한국영화제가 선정한 작품을 되돌아보고 그 가치를 한 번 더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김성수 감독의 재발견
<아수라> & <무사>
올해 한국 최고의 흥행작을 소개하는 부문인 ‘에벤느망’에는 송강호와 김지운 감독의 네 번째 만남으로 일찍이 기대를 모은 흥행작 <밀정>과 함께 김성수 감독의 <아수라>가 선정됐다. 특히 국내 관객에게 호불호 논란을 불러일으킨 <아수라>가 과연 프랑스 관객에게는 어떻게 비칠지 관심이 모인다. 한편 ‘특별상영: 위험한 관계’ 부문에 <무사>를 선정해, 김성수 감독의 전작과 신작을 나란히 상영하는 점도 흥미롭다. 거대한 무협 액션과 짜임새 있는 구성이 돋보이는 <무사>는 <아수라>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국내 관객에게도 김성수 감독을 재발견하게 할 작품이다. <아수라>와 <무사>에 모두 출연했던 정우성과 김성수 감독이 함께 파리를 방문해 프랑스 관객에게 직접 영화를 소개하는 자리도 마련했다.
박찬욱을 향한 프랑스의 애정 어린 호기심
<올드데이즈> & <올드보이>
다양한 한국영화를 조망하는 부문인 ‘페이사쥬’ 부문 상영작 중 한선희 감독의 <올드데이즈>가 있다. 한국영화 중에서도 국제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제작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올해 출시한 <올드보이> 특별판 블루레이에 수록하기 위해 기획된 작품으로, 극장상영이 없었기에 이번 파리한국영화제에서의 상영은 더없이 반가운 기회. ‘특별상영: 위험한 관계’ 부문에서는 제57회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던 <올드보이>를 상영한다. 게다가 2016년 11월에는 칸영화제로 먼저 프랑스를 찾았던 영화 <아가씨>가 프랑스에 개봉해 더 많은 프랑스 관객이 박찬욱 감독의 세계를 경험할 예정이다.
파리를 습격한 한국형 좀비
<부산행> & <서울역>
올해 국내에서 단연 화제였던 영화는 <부산행>이다. 주로 사회 비판적인 애니메이션을 제작해온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영화이자, 한국 최초의 좀비 블록버스터 <부산행>은 올해 첫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강력한 흥행성을 증명했다. 그리고 앞서 칸영화제 상영에 힘입어 프랑스에도 <마지막 부산행 열차: Dernier train pour Busan>라는 이름으로 개봉해 역시 만만치 않은 성과를 이룬 바 있다. 그래서 이번 파리한국영화제 ‘페이사쥬’ 부문에 선정된 <서울역>의 현지 반응도 기대할 만하다. <부산행>의 프리퀄이자, 국내 최초 좀비 애니메이션으로 주목을 모은 <서울역>은 실사영화 못지않은 긴장감과 재미를 선사한다. 프랑스 관객뿐 아니라, 아직 <서울역>을 보지 않은 국내 관객에게도 추천한다.
프랑스도 주시하는 신예감독, 윤가은
<우리들> & <손님>
한국영화를 이끌 신예 감독의 작품을 소개하는 ‘포트레’ 부문에는 올해 한국 영화계가 유독 주목한 윤가은 감독의 영화들이 채웠다. 이미 [인디포스트]에서도 소개한 바 있는 윤가은 감독의 장편영화 <우리들>과 함께 단편영화 <손님>, <콩나물>, <사루비아의 맛>이 나란히 상영된다. 이미 ‘단편영화계의 칸영화제’라 불리는 ‘2011 끌레르몽페랑 국제단편영화제’ 그랑프리, ‘베를린영화제’ 수정곰상 수상 등으로 해외에서도 인정받은 윤가은 감독의 아이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프랑스 관객들도 매료시킬 것이다.
한국의 클래식, 신상옥의 영화들
한국의 고전 영화를 소개하는 ‘클래식’ 부문에는 1960년대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신상옥 감독의 작품들을 선정했다. 얼마 전 국내에서는 신상옥, 최은희 부부의 납북 스캔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연인과 독재자>가 개봉해 관객들에게 신상옥 감독의 명작들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파리한국영화제는 <빨간 마후라>(1964),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을 포함한 5편을 상영한다. 1994년 칸영화제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던 신상옥 감독 대신 그의 작품들이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의 클래식한 감성을 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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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컷’이 보여주는 한국영화의 가능성
유일한 경쟁부문인 ‘숏컷’ 부문에는 개성 있는 한국 단편영화를 다루는데, 우승자에게는 이듬해 파리를 방문할 기회를 제공한다.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단편경쟁부문 대상을 받은 이지원 감독의 <여름밤>과 ‘제10회 대단한 단편영화제’ 작품상, 제목상을 받은 이충현 감독의 <몸값>을 포함한 19편을 상영한다. 초단편영화부터 단편 애니메이션까지, 한국의 다양한 가능성을 프랑스 관객에게 알리는 장이다.
제11회 파리한국영화제
기간 2016.10.25(화) ~ 2016.11.01(화)
장소 파리 퓌블리시스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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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이미지 출처- 제11회 파리한국영화제 트레일러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