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시티팝 같은 것이다. 펑크, 디스코, 포크까지. 일본 사람들은 도시 감성으로 저들을 묶어 하나의 장르로 이름 붙였다. 풍요로운 분위기의 세련된 시티팝이 유행이던 1980년대의 한 편에는 시장통 같은 테크노가요가 흐르고 있었다. 엔카든 레게 리듬이든 신시사이저가 들어가면 그것은 테크노가요(テクノ歌謡)였다.

1970년대 일본은 테크노 사운드로 들썩했다. 영미권에서는 신스팝, 일렉트로 팝으로 분류되는 신시사이저와 미디 등을 이용한 대중음악을 일본에서는 테크노 팝이라 불렀다. 1978년 YMO(Yellow Magic Ochestra)가 등장하면서 테크노 사운드의 기세는 80년대까지 이어졌다. 테크노가요의 탄생은 거의 YMO의 몫이 크다. 세 멤버 모두 작곡 실력이 지나치게 뛰어났기 때문에 솔로 가수부터 아이돌까지 곡을 원했다. YMO 멤버가 만든 아이돌 음악은 곧장 장르화되었다. 바로 테크노가요다.

1982년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호소노 하루오미(細野 晴臣)는 말도 안 되는 두 테크노가요 곡을 내놓았다. 마나베 치에미(真鍋ちえみ)의 콘셉트는 신비한 소녀. 시티팝인지 테크노가요인지 의견이 분분한 ‘음 저 멀리(うんととおく)’와 ‘노려진 소녀(ねらわれた少女)’로 원조 테크노 아이돌이라는 칭호를 달았다.

Chiemi Manabi ‘노려진 소녀(ねらわれた少女, Targeted Girl)’

마나베 치에미의 적당한 성공해 심취한 호소노 하루오미는 스타보(Starbow, スターボー)라는 전설적 아이돌 그룹의 프로듀싱을 맡는다. 태양계 제10혹성 스타보에서 사랑을 전하기 위해 지구에 온 성별 불명의 3인조 아이돌이라는 설정. 나카토, 이마토, 야에토라는 남성적인 이름과 “알로하 셔츠의 단추를 하나 더 풀면 더욱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다고” 같은 불량배스러운 가사의 노래를 불렀다. 결과는 폭삭 망했다. 너무 빨랐던 건지 후에야 안타까운 명곡 취급을 받는다.

Starbow '하트브레이크 태양족'(ハートブレイク太陽族)

그렇다고 ‘YMO + IDOL’ 공식이 전부는 아니다. 테크노가요의 범위는 무척 넓다. 전자악기 소리와 테크놀로지가 들어간 테크노스러운 것은 죄다 테크노가요라고 불렀으니까. 모험심이 넘치거나 유행을 민감하게 읽은 음악가들이 자신의 음악에 테크노라는 장치를 건 결과물 모두를 일컬었다.

일반적으로 싱어송라이터이자 재즈 뮤지션으로 분류되는 야노 아키코(矢野 顕子)의 두 곡을 비교해보자. 똑같이 피아노를 치고 있는데 신시사이저가 추가된 ‘하루사키코베(春咲小紅)’는 테크노가요에 속하며 대표하는 곡으로 전해진다.(신시사이저를 연주하는 사카모토 류이치(坂本 龍一)와는 부부 사이였다. 야노 아키코는 지금까지 전자 음악을 포함한 다양한 음악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야노 아키코 ‘전화선(電話線)’
야노 아키코 ‘하루사키코베(春咲小紅)’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은 SF적 가사에도 있다. 테크노는 곧 컴퓨터, 우주, 로봇이라는 인식이었는지 비슷한 콘셉트의 테크노가요가 많았다. 대표적인 곡은 코스믹 인벤션(コスミック・インベンション)의 ‘컴퓨터 할머니(コンピューターおばあちゃん)’. 할머니가 컴퓨터라서 영어도 잘하고 수학도 잘하는 척척박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널리 알려진 테크노가요 중 한 곡, 코스믹 인벤션 ‘컴퓨터 오바짱~’
코스믹 인벤션 ‘테크노폴리스(テクノポリス)’

코스믹 인벤션은 YMO의 무도관 공연 오프닝에 선 적이 있다. 멤버 대부분이 13, 14세였다. 여담이지만 드럼을 치며 노래하는 모리오카 미마(森岡 みま)는 일본 전자 악기 제조업체 힐 우드/퍼스트맨의 창업자 모리오카 카즈오의 딸이다. 

테크노가요 덕에 덩달아 일본에서 인기를 끈 외국곡도 있다. 

포르투갈에서 태어나 벨기에에서 자란 리오(Lio)는 데뷔 싱글 ‘바나나 스플릿(Banana Split)’으로 프랑스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열여섯 살의 이 소녀는 일본에서 프렌치 롤리타로는 각광받지 못하고 테크노가요 아이돌이 되어버렸다…

Lio ‘Banana Split’

미카도(MIKADO)는 우연히 호소노 하루오미에게 발탁되어 일본에 소개되고 인기를 얻게 되었다. 대표곡 카니발(Carnaval).

MIKADO 'Carnaval'

1980년대 정점을 찍은 테크노가요의 인기는 1990년대 말과 2000년도에 와 부활한다. 관련 OST가 속속 쏟아졌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YMO 멤버가 프로듀싱한 곡을 CD 세 장에 담은 <옐로 매직 가요곡(イエローマジック歌謡曲)>과, P-Vine에서 낸 시리즈다. 일본을 대표하는 메이저 레코드 회사별로 테크노가요 곡을 추려 8장의 CD를 발매했다. 이런 움직임으로 다양한 곡들이 재조명되었다.

 

Writer

매거진 <DAZED & CONFUSED>, <NYLON> 피처 에디터를 거쳐 에어서울 항공 기내지 <YOUR SEOUL>을 만들고 있다. 이상한 만화, 영화, 음악을 좋아하고 가끔 사진을 찍는다. 윗옷을 벗은 여성들을 찍은 음반 겸 사진집 <75A>에 사진가로 참여했다.
박의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