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은 같은 한옥마을인 북촌보다도 한층 더 여유로운 정취로 주목을 모으는 곳이다. 관광명소가 된 탓에 이제는 제법 시끌시끌한 장소가 되긴 했지만, 서울의 오랜 역사를 가장 가까이 느낄 수 있는 동네라는 점은 변함 없다. 반세기를 훌쩍 넘긴 가게와 전통 기와를 간직한 한옥들이 묵직한 서촌의 세월을 고스란히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유달리 생경한 모습으로 세월을 비추고 있는 ‘아파트’ 한 채를 찾아 갔다.

경복궁 서쪽, 도로변의 상점 간판에 영문 대신 한글이 눈에 띄기 시작하면 거기가 곧 서촌이다. 평일이라 그런지 한산했지만, 주말에는 여지없이 붐비는 번화가이기도 하다. 그 길을 곧장 따라 걸으면 이내 서촌의 명물 재래시장, 통인시장이 나온다. 통인시장은 고도가 낮은 서촌 주택가에서도 나름 높은 키를 자랑하는 두 건물 사이에 끼어 있는데, 그중 더 높은 쪽에 주목하자. 희뿌연 시멘트벽 위로 빛 바랜 금색 간판과 허름한 창들이 줄줄이 매달린 ‘효자아파트’다.

 

통인시장 옆으로 켜켜이 쌓아 올린 세월

효자아파트 지하에 위치한 생선가게 입구. 통인시장 쪽에서 들어갈 수 있고 곧장 효자아파트 1층으로도 연결된다

정확히 말하면 효자 ‘상가’ 아파트다. 1941년 일제강점기 때 효자동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을 위해 개설한 통인시장을 1층으로 두고 점차 층을 쌓아 올린 주상복합아파트다. 원래는 공설시장을 목적으로 지은 단층 건물이었는데 정작 시장은 지금 모습처럼 1층으로만 길어졌다. 1960년대 후반에 지금의 5층짜리 외관을 갖춘 효자아파트는 지층부터 2층까지는 상가이고, 3층부터 5층까지가 살림집이다. 정확히 따지면 통인시장은 효자아파트 1층 상가의 한 부분인 셈이다.

효자아파트의 정확한 건축연도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대강 계산해봐도 40년은 훌쩍 넘겼다. 잘 알려진 국내 최초 주상복합아파트인 세운상가 다음 순이다. 지금이야 허름해 보여도 그 당시 ‘아파트’라면 전부 획기적인 건물로 간주됐다. 비슷한 역사를 지닌 서소문아파트, 동대문아파트와 마찬가지로 효자아파트도 공무원, 연예인, 정치인 같은 소위 ‘있는 사람들’이 거주했다고. 오래된 아파트가 누렸을 한때를 어렴풋이 떠올려 보다가, 지금은 누가 살고 있을지 궁금해하며 아파트 입구에 들어섰다.

얼핏 보아도 오래돼 보이는 시멘트 벽과 대리석 계단, 페인트 칠이 벗겨진 목재 난간 위로 독특하면서도 웅장한 풍경이 펼쳐진다. 꼭대기층까지 한 번에 쭉 연결된 계단과 거대한 철창문이 만들어낸 풍경을 한동안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올려다봤다. 이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낡은 목재 우편함이다. 관광객이 들락날락하기 바쁜 통인시장 위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아파트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일러주는 것 같다. 2층에 위치한 전기 설비 업체와 합기도장에선 사람 소리가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낡은 복도에서 마주친 낯설고도 태연한 정서

3층부터는 마주보고 늘어선 현관문들 사이로 길게 뻗은 일자형 복도가 펼쳐진다. 집집마다 문양이 다른 낡은 녹색 창살과 드문드문 새로 꾸민 것 같은 현대식 창문이 눈에 띈다. 그러고보니 현관문 모습도 제각각이다. 당연히 세입자의 입맛에 따라 바뀌었을 터인데, 외관에서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젊은 현관문의 모습이 어쩐지 신기할 따름이다. 문득, 요즘 새집을 구하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래된 아파트가 인기라는 뉴스를 보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자연스레 효자아파트 1층 상가에서 본 부동산과 인테리어 가게가 스친다. 

5층으로 올라오면 1층에서 보았던 계단의 모양이 한층 도드라진다. 꽤 아찔해 보이는 높이를 내려다보니 아래에 안전 그물망이 설치되어 있다. 복도 끝마다 깔끔하게 놓여 있던 여러 대의 소화기를 떠올려보면 몹시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오히려 예상치 못한 건 옥상이다. 5층 위로 한 번 더 계단을 올라가면 널찍하게 트인 옥상이 나타난다. 요즘 지어진 아파트에선 단연 보기 힘든 모습이다. 가지런히 줄 지은 장독대와 여전히 사용하는 듯 보이는 튼튼한 빨랫줄이 정겨워 보인다. 이내 야트막한 서촌 일대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람 사는 냄새가 은근히 새어 나오는 효자아파트에서 내려다본 서촌은 복닥거리는 속사정과 달리 더없이 태연해 보인다.

 

효자아파트 인근 맛집

1. 통인시장

효자아파트 인근 맛집이라고 하면 단연 한 몸을 이루고 있는 통인시장을 빼놓을 수 없다. 2005년 서울시에서 추진한 재래시장 활성화 프로젝트로 새롭게 정비한 뒤 개성 있는 젊은 가게들이 많이 들어섰지만,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래된 가게부터 주목해보자. 효자아파트 지하에 있는 생선가게만 해도 벌써 40년이 됐다. 통인시장의 명물이 된 기름떡볶이집 뿐만 아니라 동네 이름을 내건 효자마트, 효자떡집, 효자김밥도 긴 세월 자리를 지켰다. 방송에 소개된 적 없어도, 버젓해 보이지 않아도 훌륭한 식료품 가게들이 많다. 오랜 시간 변함없는 맛을 전해주는 재래시장의 미덕을 미각으로 먼저 느껴볼 일이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15길 18
전화 02-722-0911
영업시간 07:00~21:00, 점포 별 상이, 셋째 주 일 전체휴무

 

2. 곽가네음식

통인시장에 자리잡은 지 8년 째인 곽가네음식은 시장 내 터줏대감 가게들 못지않은 깊은 맛을 보장하는 곳이다. 소박하면서도 정갈한 사찰음식을 주로 선보인다. 대표메뉴는 인삼이나 버섯, 연근을 넣은 ‘견과류탕’이다. 견과류를 갈아 넣은 걸쭉하고 구수한 국물에 갖가지 채소가 들어있어 단연 건강한 맛을 낸다. 정식을 시키면 같이 나오는 과일야채찜은 생각보다 맛이 풍성해 인기가 좋다. 사찰음식 외에 김치찌개, 야채불고기 같은 대중음식도 있다. 특히 큰 그릇에 양껏 퍼서 먹을 수 있는 밑반찬은 이 집만의 ‘묘미’다. 제철 음식과 천연 조미료로 맛을 내는 사찰음식의 매력을 푸근한 재래시장에서 느껴보자.  

메뉴 인삼/연근/버섯 견과류탕, 건강약선정식, 선식 떡국 등
주소 서울시 종로구 필운대로6길 8
전화 02-735-3268
영업시간 매일 07:30~21:00, 일 휴무

 

3. 영광통닭

통인시장에서 필운대로 방향 입구로 나오면 유명한 맛집이 즐비하다. 부류를 나누자면 역시 내공을 자랑하는 ‘오래된 가게’와 개성이 가득한 ‘젊은 가게’인데, 고즈넉한 서촌의 정취에 어울리는 곳이라면 아무래도 전자일 것이다. 통인시장 바로 맞은 편에 위치한 영광통닭은 족히 30년 넘은 가게다. 화려한 프랜차이즈 치킨에 밀려난 ‘옛날식 통닭’을 맛볼 수 있다. 듬성듬성 조각 낸 닭을 바삭하게 튀겨내어 은박지를 두른 박스에 푸짐하게 담아낸, 그 추억의 치킨이다. 방문 포장만 가능하지만 맛이 좋아 단골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메뉴 옛날통닭, 양념통닭, 반반통닭
주소 서울시 종로구 필운대로 55-1
전화 02-736-8269
영업시간 매일 14:00~23:00(유동적이니 연락 후 방문)

 

4. 영화루

통인시장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영화루는 장장 50년 넘는 세월을 버텨온 곳이다. 자연스레 세월에 물든 느낌을 풍기는 외관은 억지로 꾸미지 않아 더욱 멋을 뽐낸다. 워낙 유명한 탓에 대기줄을 서는 일이 허다하지만, 나름 비법을 터득한 단골들은 브레이크 타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여유롭게 들어간다. 대표메뉴는 모 방송에서 숟가락 별점 5개를 받았다는 고추간짜장과 고추짬뽕인데, 굳이 따라서 시킬 필요는 없다. 참고로 캡사이신 없이 오직 청양고추만으로 냈다는 ‘매운 맛’은 정말 맛있게 매우니 각오할 것. 오리지널 짜장과 짬뽕, 바삭한 탕수육으로도 영화루의 내공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메뉴 짜장면, 짬뽕, 탕수육, 고추짜장, 고추짬뽕 등
주소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7길 65
전화 02-738-1218
영업시간 11:00~20:30, Break time 15:00~17:00, 첫째, 셋째 월 휴무

 

글/사진 유미래

 

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