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앨범 이후 16년이 흐른 4집 밴드의 리더가 첫 솔로 앨범을 발표했다. 인디음악 역사에 주요한 발자취를 남긴 밴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이하 ‘구남’)의 조웅이 주인공. 그가 XXX, 250, Beenzino(빈지노), 애니메이션 감독 에릭 오 등 다양한 장르와 분야의 음악가, 예술가들이 각자의 색깔로 실험적이면서도 트렌디한 활약을 두루 펼치는 Beasts And Natives Alike(BANA)에 합류한 지 7년 만이다. 조웅이 솔로 앨범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은 몇 년 전부터 들려왔다. 그 사이 데모곡이 두 차례 사운드클라우드에 공개되기도 했다.

기다림과 궁금증 끝에 지난 10월 20일 공개한 <슬로우모션>은 기대한 것 이상으로 흥미로운 요소가 많은 앨범이었다. 독특한 이름과 댄서블한 포스트 펑크, 뉴웨이브 스타일이 그만의 인장이자 많은 화제를 모았던 밴드 시절 음악과 또 전혀 다르게, 오롯이 기타와 목소리에 집중한 음악을 선보였다. 대만과 국내 목포, 부산, 양양 등을 돌아다니며 곡과 이야기를 완성했고, 모래내시장에 있는 작업실과 서교동 음악서점 라이너노트(건축가 김중업 설계, 현재 카페로 운영 중)에서 앨범을 녹음했다.

섬세함을 요구하는 작업이었기에 외부의 도움도 있었다. 마스터링은 미국의 사운드 엔지니어 제이크 비에이터(Jake Viator)가, 앨범 커버 아트워크는 현대미술 분야에서 유명한 장종완 작가가 맡았다. 비에이터는 제리 페이퍼(Jerry Paper), 마일드 하이 클럽(Mild High Club) 등 글로벌 뮤지션의 음반과 애플의 2021년 이벤트 영상, 스포티파이, 더 페이더, 사운드 클라우드 등 주요 매체의 다큐멘터리 영상 음악까지 여러 영역에서 활동 중이다. 구남 4집 <모래내판타지>(2019)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모래내시장에 있는 조웅의 작업실에서 앨범 발매에 관한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조웅 © Beasts And Natives Alike

Q 밴드 구남의 리더로 오래 활동하셨지만 솔로 앨범은 처음입니다.

조웅 사실 저는 제 이름(‘조웅’)을 수줍어하면서 성장했어요. 아버지에게는 죄송하지만 (웃음) 어렸을 때부터 외자 이름을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고, 밴드 이름도 이상해서 후회도 많이 했어요. 처음에는 밴드 이름에 대한 반응도 즐겼어요. 그런데 활동이 이어지다 보니까 그 이름을 매번 설명하는 것도 좀 그렇더라고요. 요즘은 좀 괜찮아요. 다만 이번에 처음 제 이름으로 활동하니 쑥스러움이 좀 있는 정도예요. 차이가 있는 만큼 작업도 좀 달랐고요. 밴드 활동 때보다는 좀 더 단순하게 접근하고자 했어요.

 

Q 솔로 작업으로서 처음 구상했던 대로 작품이 나왔나요?

조웅 더 많은 작업물이 있었어요. 이번에 발표한 건 한 챕터로 괜찮겠다고 정리를 한 거고, 지난 과정에 만들어진 것들이 꽤 있었죠. 현재 노래와 기타 연주만 있는 곡이 있고, 드럼이 들어간 곡이 있잖아요. 처음에는 드럼이 있는 곡은 없었어요. 정말 순수하게 노래와 기타만으로 앨범을 만들려고 구상했는데, 작업한 곡들을 나중에 돌아보니까 전체 분위기가 너무 진하더라고요. 심지어 곡들의 이야기가 다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보니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조금 과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후반에 일부 곡에 드럼 파트를 넣거나 별도 곡을 녹음해서, 현재의 앨범 밸런스를 만들었습니다.

 

Q 녹음을 추가로 한 건가요?

조웅 별도 녹음 공간(서교동 음악서점 라이너노트)을 빌려서, 음향 셋업을 다 하고, 이틀 동안 드러머와 잼(jam)도 하면서 뭔가를 또 뽑아내려고 시도했어요. 거기서 나온 것들과 기존의 진한 부분을 섞어서 일종의 칵테일처럼 만든 거죠. (웃음)

 

Q BANA에 합류한 후 거의 7년 만에 앨범이 나왔어요.

조웅 애초에 저에게는 기준이 없었어요. 이런 작업 자체가 처음이라 (물론 그 전이라고 해서 명확한 기준이 있던 건 아니지만) 시작 당시에는 막연히 진행하던 작업이었고요. 언제까지, 어떻게 하겠다고 정한 것도 없었어요. 간격을 두고 작업하다가, 다시 간격을 뒀다가, 이런 과정이 몇 년간 있었죠. 이제 곡들이 좀 모였고, 이 곡들을 정리해서 앨범을 내게 됐어요.

회사와 함께하면서 다양한 도움을 받았어요. 작년 하반기에 이미 발매 이슈가 있었는데 당시 이태원에서 비극이 있었어요. 급하지는 않았지만, 개인 일정도 있었고요. 처음 해보는 작업이기 때문에 기다리는 분들이 있다 한들 서둘러야 할 건 아니라고 판단해서 차분히 했습니다.

 

Q 작업할 때 특별히 어려운 점이 있었을까요?

조웅 밴드 편성으로 작업을 해오다가 이전까지 잘 쓰지 않던 악기 구성을 택했잖아요. 기타와 목소리, 드럼. 이런 소스만으로 음악을 해보자고 선택을 한 건데, 그러다 보니까 악기를 사는 과정부터가 시작이었어요. 원하던 악기를 중고로 얻으려고 목포까지 가서 구입했거든요. 국산 브랜드이고 장인이 만들었는데, 되게 저가예요. 그걸 만지는데, 감이 좋았어요. ‘아, 소리가 좋은 악기구나.’ 싶었죠. 그 악기로 편안한 혹은 마음에 드는 연주를 하기까지 트레이닝이 먼저 필요했어요. 이후에는 연주를 하면서 노래를 만들어 보는 과정이었는데, 이런 것들이 전부 새로웠어요.

아까 얘기했듯이 기준이나 어디가 만족일지 한계도 없고, 그렇다고 레퍼런스가 있어서 목표를 그린 것도 아니었고. 무슨 이야기가 나오나 자연스럽게 지켜보고 기다리는 과정이었던 거예요.

‘외롭고 시끄럽고 그리워’ 뮤직비디오

Q 선공개곡이자 타이틀곡인 ‘외롭고 시끄럽고 그리워’의 뮤직비디오에 직접 출연했어요. 영상의 분위기도 그렇지만, 출연한 모습도 존재감이 독특해요.

조웅 제가 쑥스러워도, 시키는 건 또 해요. 다만 저도 제가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헤어스타일이나 복장 등 외부로 표출하는 것들에 관해 단순해지고 정돈이 되어가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리고 학부형이 되다 보니까 덜 움직이게 되더라고요. 피지컬적으로 노쇠하고, 허리도 아프고, 결국 이렇게 단정해지고 있구나.

 

Q 그렇게 달라지는 모습이 만족스럽나요?

조웅 달라지지 않으면 무언가를 시도하지 않는 것 같아요. 똑같은 걸 또 하는 건 개인적으로도 너무 어려운 일이에요. 뭔가 새로워야 마음이 동해서 그 길을 따라가 보고 싶고, 재미가 있어야 노력과 성의를 기울이게 돼요.

 

Q 가사에서 섬마을도 가고, 도시도 가고, 외국에도 갑니다. (웃음) 짧은 가사이지만 공감도 되고요. 무엇에 관한 얘기일까요?

조웅 만족에 대한 얘기 같아요. 어디로 가도 만족이 쉽지 않다. 처음에는 모르다가 쓰고 보니까 ‘이 노래는 이런 얘기구나.’ 싶었어요. ‘외롭고 시끄럽고 그리워’를 타이틀곡으로 정한 건 회사 BANA였는데요. 회사가 제 프로젝트를 세심하게 집도했다고 생각해요. 어떤 면에서는 이 작업을 저보다 더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기도 하고요. 저는 이렇게 모호한 입장인데도요. 뭐든 외부에서 더 구체적으로 보는 경우가 있잖아요. 앨범의 곡 순서도 회사에서 정했어요.

 

Q 저는 첫 곡 ‘소프트쉘’과 CD Only 공개인 마지막 곡 ‘깔깔’ 모두 앨범의 인트로와 아웃트로의 인상이 분명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이 곡들의 순서도 직접 정한 게 아닌 건가요?

조웅 네. 제가 먼저 순서를 정해봤어요. 별로 흡족하지 않았죠. 기본적으로 곡의 순서를 두고 하는 얘기는 앨범 단위의 감상을 전제로 하는 거잖아요. 저희 시절에는 음악을 듣는다고 하면 주로 앨범을 듣는 거였으니까, 저는 계속 그런 과점에서 음악을 경험하고, 작업하고 있는 편인데, 제가 정한 순서가 또 쑥스럽더라고요. 그래서 얘기 나온 1번 곡 ‘소프트쉘’ 같은 건 저기 구석에 있었어요. 그런데 회사에서 한 번 해보겠다고 하고 조정해서 줬는데 너무 괜찮은 거예요. 제가 한 것보다 훨씬 구성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좋다고 하고 소고기 사줬죠. (웃음)

‘소프트쉘’

Q ‘소프트쉘’부터 너무 재밌어요. “성필아, 이렇게 맛있는 타코는 어디서 사온 거야?” 일상의 대화가 결국 노래의 가사처럼 들어갔고, 앨범 소개글에도 들어갔어요.

조웅 아까 얘기 나온 드럼과 같이 연주했다는 추가 녹음 작업 있잖아요. 그때 상황이었어요. 이틀간 녹음 공간을 빌려서 “여기서 뭔가를 뽑아내 보자.” 이렇게 달려들었죠. 돈을 들여 공간을 빌렸고 인력까지 온 상황에, 약간의 부담이 없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컨디션 문제가 있었고 뭔가 잘 안됐어요. 답답해하는 차에 회사의 성필이가 간식으로 타코를 사 왔는데 그게 너무 맛있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맛있게 먹으면서 ‘내가 이렇게 맛있는 타코를 먹어도 되나? 이렇게 잘 안 풀리는 상황에? 난 값을 못 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을 노래로 만들었어요.

 

Q 노래들을 보면, 의미가 매우 직설적인 가사도 있고, 아닌 가사도 있습니다. 몇 가지 트랙만 직접 골라서 그 이야기를 소개해 주세요.

조웅 2번 트랙 ‘별로 그렇게’는 제 멘탈 건강에 관한 이야기예요. 이전까지는 정신력이 매우 건강한 편이었어요. 그래서 우울증이라든지 불면증이라든지 우리 주변에 흔한 증상을 지금보다 젊은 시절에는 겪어 보질 않았죠. 어쩔 수 없이 남들의 경험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어느 시점이 지나자 저도 버그가 나고, 버퍼링이 생기더라고요. 그런 얘기예요. 우울과 불편을 다룬 얘기. 그렇지만 “별로 그렇게 중요한 것은 없어.” ‘가볍게 여길 수 있어.’ 그런 내용이에요.

3번 트랙 ‘피어나는 물결’은 현대 과학 이슈, 담론을 다뤘어요. 양자역학이니, 다중우주니. 과학 유튜브를 재밌게 보고 있거든요. 어렸을 때는 <월간 Newton>이라는 잡지를 봤는데 그 시절하고는 과학의 화두가 엄청 다르잖아요. 그걸 다룬 노래죠.

‘김일뚜’는 친구(김일두)의 이름을 제목에 한 번 넣어 보고 싶어서, ‘너의 모닝콜’은 연주곡인데 모닝콜로 듣기에 좋아서 사람들이 모닝콜로 이용하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노래들 모두 제게 모두 자연스러운 이야기이자 흐름이고, 그 밖의 것을 하긴 어려워요. 최근에 드라마 음악도 의뢰받아서 하고, 그전에도 영화 음악도 해보고, 디렉션이나 오더가 있으면 그에 맞춰서 하긴 하지만 이건 제 개인 앨범이니까 제게 가장 자연스러운 걸 할 수밖에 없죠.

‘별로 그렇게’

Q 5번 트랙 ‘내가 뭘’은 2018년에 사운드클라우드에 데모를 공개한 적 있어요.

조웅 이 앨범에서 제일 오래된 곡이에요. 20대 후반에 만들었죠. 회사에서 이 곡도 넣어 보자고 하길래 ‘이거 너무 어릴 때 만든 건데.’ 생각했죠. 누구나 자기만의 템포와 에너지로 살지만 유난히 10대 후반, 20대 후반에 뜨거운 느낌이 있잖아요. 새로운 조건 속에서 그렇게 에너지를 쏟은 후 뭔가 진이 빠진 상태에서 만든 곡 같아요.

 

Q 데모곡과 크게 다르지 않던데 처음 쓰셨을 때도 딱 이 구성과 편성이었나요?

조웅 네. 노래가 만들어진 그날 그대로였어요. 처음으로 사회에 나와서 연애도 하고, 그런 상황의 끄트머리에 만들었던 노래이거든요? 그때가 지나 또 다른 시절을 뜨겁게 보낸 후 다른 끄트머리에 발표가 되었네요.

 

Q 시점은 달랐지만, 결국 시기의 단계가 같아서 맞물렸나 봐요.

조웅 맞아요. 10년 전 얘기이다 보니. 이걸 한 6, 7년 전에 하려고 했으면 애매했을 거예요.

 

Q 8번 트랙 ‘유주와 조웅’에는 조웅님과 드러머의 잼 연주로 8분가량이 이어져요. 곡 후반부 7분경에는 재채기 소리도 그대로 녹음돼 있고요.

조웅 당시의 연주 장면이 촬영되기도 했는데요. 연주 후에 제가 잠이 들어요. 저는 소파에 앉아 있었고, 제 앞에는 드러머가 있었고요. 비가 내리는 일요일이었어요. 자세히 들으면 빗소리도 들려요. 이제 뭔가 더 할 게 없다. 이런 상황이었죠. 녹음 장소를 빌린 시간도 다 끝나가고, 다들 피곤한 것 같고. 그런데도 뭔가를 좀 더 하고자 했어요. 되는대로 두드리기 시작했는데 드러머가 호응을 한 거죠. 서로 호흡을 주고받으니까 재밌었어요. 그러자 좀 더 길어졌죠. 한 시간 동안 즐겼어요. 그렇게 저절로 페이드아웃이 되는 상황이었고, 그게 녹음에 담긴 거예요. 원래는 이 연주를 앨범에 넣을 뜻은 없었어요. 그런데 앨범을 구성하고 나서 이를 회사가 보더니 온전한 연주곡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앨범이 이미 연주곡 구성이긴 했어요. 가사도 별로 없고. (웃음) 그래도 어쨌든 (진정한 의미의) 연주곡이 있으면 좋겠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이런 것도 있어.”라는 의미로 보냈죠. 그랬더니 이 곡을 넣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좀 잘라서 넣든가 할 줄 알았죠. 그런데 그냥 다 넣자는 거예요. “괜찮겠어?” 확인했더니 좋다고 했어요. 심지어 앨범 한중간에 넣었어요. 저는 이 곡도 앨범 끝에나 들어갈 줄 알았죠. 결과적으로 이렇게 된 게 재밌어요.

‘유주와 조웅’

Q 이번 앨범에 있어 가장 집중한 부분은 무엇일까요?

조웅 이 앨범은 특별한 이야기를 다루지 않아요. 그냥 어떤 한 사람이, 보통의 사람이 살면서 겪을 수 있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음악 역시 멜로디, 음계로 특정한 인상을 주는 단순한 형태죠. 대신에 제가 집중한 건 녹음이었어요. 요즘은 과거처럼 밥값을 아껴 가면서 음반을 사고, 앨범을 듣는 시절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계속해서 제 음악을 만들고 있는 입장에서 이게 굳이 '앨범'으로 발표될 이유가 있을까? 이런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까 '녹음을 다르게 해보자.' 그렇게 된 거죠.

말하자면 뭔가 다른 '물질'을 만들어 보자라는 입장이었어요. 그냥 컴퓨터로 만들어지는 거 말고. 물론 컴퓨터로 재생은 되겠지만, (어떻게 만드는가에 따라) 그것도 결과물이 굉장히 다르거든요. 여러 테스트와 시뮬레이션을 거쳤어요. 예를 들면 먼저 테이프로 녹음한 뒤 그걸 컴퓨터로 믹스하고, 테이프로도 재생해 보고, 디지털로도 재생해 보고. 아니면 컴퓨터로 녹음한 걸 테이프로 다시 만들어 보고. 그 결과 제일 괜찮은 방식을 정했죠. 기타와 보컬만 있는 곡들은 다 예전 방식의 테이프 녹음이에요. 한 자리에서 노래와 기타를 두 채널로 녹음했죠. 드럼과 같이하는 건 그 방식이 좀 힘들어서 컴퓨터로 녹음한 걸 다시 테이프로 돌렸죠.

리듬에 집중하기도 했어요. 자세히 들어보면 드럼과 함께한 연주는 당연하고, 저 혼자 하는 연주도 리듬의 관점에서 굉장히 재밌어요. (기타를 연주할 때 현을 만지는) 오른손으로 만드는 리듬이 제 입장에서는 가사나 보컬 이런 걸 배제하고 음악으로 들을 때 제일 재밌는 부분이에요. 악기의 질감이 특정한 진동과 리듬으로 들릴 때, 어느 날 문득 그 이미지를 연상했을 때 '이게 (앨범의 제목인) '슬로우모션'이구나.'라는 느낌인 거죠.

 

Q 그렇게 완성한 소리에 만족하나요?

조웅 너무 만족해요. 믹스 후 마스터링을 몇 군데 맡겼어요. 그 중에 몇몇 마스터링에는 실패가 있었어요. 실패의 원인은 당시 엔지니어가 이 작업을 일반적인 사운드로 접근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후에 결정된 제이크 비에이터의 마스터링은 무척 만족했어요. 제가 그걸 두고 “엔지니어가 이 작업을 무척 즐겼던 것 같다.”라고 했더니, 엔지니어도 별도의 코멘트를 보냈더라고요. 이게 “너무 재미있었다.”라고요. 제가 의도했던, ‘피지컬’이라고 느끼는 작업에 대한 입장을 엔지니어도 마찬가지로 느낀 것 같아요. 이전까지 여러 작업을 해왔지만 사실 마스터링에 대한 기대를 해본 적이 별로 없어요. 내 의도가 들어간 믹스의 결과를 별로 훼손되지 않게 볼륨 업해주는 정도의 역할로 생각했죠. 그런데 이번 앨범의 마스터링은 기대 이상이었어요. ‘슬로우모션’이라는 앨범 제목이 담은 의미를 함께 작업한 여러 맥락에서 ‘하이파이브’(high five)하는 과정이었어요.

 

Q 이번 앨범에서 집중한 음악적인 면모, 그러니까 리듬의 미학이나 그에 대한 지향에 관해 더 말씀해 주세요.

조웅 저는 리듬 음악을 오래 해왔죠. 음악에 있어 리듬은 사실 기초적인 부분이잖아요. 그런데 스스로 그걸 조금 더 즐겨요. 하다 못해 박수 치는 것도 즐기고요. 솔로 프로젝트를 한다고 했을 때, 소박하고 단순한 편성이라고 할 지라도, 누군가는 분명 그게 꼭 리듬이 아니라도 특정한 질감과 분위기, 색깔만으로 멋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건 제가 할 수 없는 거라고 여겼어요. 일종의 멋진 옷을 입는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제가 그걸 하는 건 말 그대로 ‘부끄러운’ 입장인 거예요. 그래서 저는 리듬을 다루기로 했고, 훈련했고, 시도했죠. 아주 본질적인 입장에서의 리듬이 필요했어요.

한 가지 더 얘기하면, 어릴 때 (20대 초반에) 브라질 음악의 영향을 받았어요. 이번 작업을 발표하면서 다른 인터뷰에서도 얘기한 적 있는데요. 구남 때만 해도 첫 앨범(2007)의 ‘뽀뽀’도 그렇고, ‘언더스탠드 케어레슬리’도 그렇고 그 당시에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알게 된 브라질 노래들을 이후에도 계속 좋아했어요. 더 어린 시절에는 영미 음악과 한국 가요를 많이 들었지만, 20대 때 그렇게 알게 된 브라질 음악이 제게 너무 특별했던 거죠. 20대 중후반에는 민요나 제3세계 음악(글로벌 뮤직)을 많이 찾아 듣고요. 아마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시기 한국에서 비슷한 과정을 거쳤을 것 같아요. 이전에는 접하기 어려웠던 것들을 인터넷을 통해 보다 쉽게 경험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하얗게 부서지는’

Q 이 앨범을 위해 구매한 기타와 이미 매우 친해졌을 것 같아요.

조웅 그럼요. ‘유주와 조웅’ 연주할 때 끌어안고 자고 그랬을 정도라니까요. 빈백에 누워 넷플릭스 틀어 놓은 채 기타 끌어안고 자고. 그러다가 다음 날 어깨가 빠져 있던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로 (악기와) 친해졌죠.

평소 밴드 연주를 하거나 좀 큰 소리가 있는 음악의 경우에는 몸을 좀 던지면 되거든요? 근데 이 앨범의 음악은 그게 아니라 섬세함이 필요하고, 섬세함이라는 건 하려고 하면 한도 끝도 없어질 수 있는 거라 그러다 보면 함정에 빠지기도 해요. 그렇다고 그냥 러프하게 하려고 하면 아쉽고요. 제 안에 (제가 할 수 있는) 레인지의 간격이 있는데 그걸 잘 정리하고 균형을 만드는 게 필요해요. 그 과정은 경험으로 가능한 것이기도 하고, 연습일 수도 있고, 여러모로 그 밸런스를 공부하고 있어요.

기타만이 아니라 노래도 마찬가지예요. 밴드를 할 때는 내 소리를 주로 어딘가를 향해 들려주려는 발성으로 노래했다면, 이번에는 그렇게 노래하려고 하니 밸런스가 깨지더라고요. 녹음할 때도 습관적으로 노래를 전달하려고 하는 발성이 나왔어요. 여기서도 그걸 정리하는 데 훈련이 필요했죠. 제 자리에서 나한테 노래하는 게, 내 머리가 울리게 노래하는 게 좋은 발성이거든요. 악기와 친해지는 것도, 밴드 활동도, 솔로 앨범도, 공연이나 그 밖의 활동도, 계속해서 그에 맞는 균형과 만족을 좇는 무엇인가일 거 같아요.

 

Q 녹음을 통해 실현한 물성(物性)이라든지, 음악의 리듬이나 균형이라든지 나름의 신경 쓴 포인트들이 있는 앨범이에요. 혹시 청자가 어떻게 들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이나 예상이 있을까요?

조웅 제가 의도한 부분들을 고스란히 이해하고 듣기는 어려우리라는 것을 알아요. 색깔이 있는 노래, 잔잔한 노래 내지는 포크 노래 이렇게 받아들이기 쉬울 것 같아요. 그런데도 이 앨범에는 분명 저만의 입장이 있으니 얘기 나왔던 부분들을 고려하면서 들으면 더 재밌으실 거로 생각해요. 이를테면 ‘외롭고 시끄럽고 그리워’의 뮤직비디오 영상의 경우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보다는, TV나 PC 등 보다 큰 화면으로 볼 때 나름의 성의가 더 잘 보이더라고요.

다만 음악은 어떻게 들어도 괜찮아요. 마지막 마스터링 과정에서 그렇게 신경을 썼으니까요. 굳이 더 좋게 들으려면 스피커나 헤드셋도 좋은 것 같고. 아, 혼자 들을 때 좋을 것 같아요.

<슬로우모션> 앨범 커버 © 장종완

Q 앨범의 아트워크를 작업하신 현대미술 작가 장종완의 경우 과거 다른 인터뷰에서 “비극보다는 희극을 좋아하고, 희극보다는 부조리극을 좋아합니다.”라고 한 소개 코멘트가 인상적이었어요. 그 이야기가 조웅의 음악 내지는 이야기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거든요.

조웅 한 번 뵀는데 전부터 구남을 잘 아셨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작가님의 얘기를 듣고, 또 그림을 보고, 한국에서 구남의 음악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이번 작업을 잘 이해할 수 있겠다는 입장이 있었어요.

 

Q 마지막으로 앨범 발매 후 활동에 관해 특별히 기대하시는 부분이 있다면요?

조웅 공연. 라이브죠. 이런저런 형태로 해볼 생각이 있어요. 기본적으로 혼자 하는 게 제일 중요한데, 앨범 자체가 매우 미니멀한 편성이니까 장소도 다양하게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이디어 중 하나는 제가 과거에 자라면서 보고 동경했던 선배들이 했던 공연 형태를 해보는 거예요. 출근하듯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공연장이나 극장 주변에 머물며 술 마시고, 다음 날 출근하고. 그런 생각이에요.

 

인터뷰 정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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