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코의 여왕’(Queen of Disco)으로 불린 도나 썸머(Donna Summer)는 1970년대 불어 닥친 디스코의 열풍을 타고 최고의 스타 반열에 올라섰다. 경쾌하고 독특한 리듬의 전자 음악과 풍부한 성량의 보컬로 단숨에 전세계 댄스 클럽을 점령했고, 무려 32곡을 빌보드 핫100 차트에 올려 14곡의 톱10 히트곡을 남긴 디바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간간이 음반 차트에 오르면서 대외 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그는, 2012년 62세의 나이에 암으로 화려했던 인생을 마감했다. 겉으로 보이는 우아한 외모와 선정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실제로는 내면에 겹겹이 쌓인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로 인해 몹시 힘든 일상을 살았고, 가족과 친지를 늘 불안하게 했다. 최근 HBO가 내놓은 다큐멘터리 <Love To Love You>(2023)에는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그의 이면에 숨겨진 삶을 고스란히 담았다.

다큐멘터리 <Love To Love You>(2023) 예고편

 

내면에 쌓인 트라우마와 스트레스

도나 썸머는 2003년에 출간한 자서전 <Ordinary Girl: The Journey>에서 “당신은 나를 보고 있지만, 그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이 아니다”고 자신의 이중적인 삶을 진솔하게 밝힌 바 있다. 어린 시절부터 우울감과 죄책감 그리고 불안감이 따라다녔으며, 주위의 친지와 가족들은 그가 무슨 일을 저지르지 않을지 전전긍긍했다. 16세가 될 때까지 심리상담사의 치료를 받으면서 위태로운 사춘기를 버티어 냈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지만 교회에서 노래를 하면서 목사에게 추행을 당하여 마음의 상처를 받았고, 가수가 되고 나서는 섹시한 의상을 입거나 성적인 표현을 해야 할 때마다 자신을 무척 혐오했다. 도나 썸머는 트라우마와 스트레스를 털어내지 못하고 내면에 쌓이면서 행복하고 안정된 삶을 살지 못하였다. 심지어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도 방문을 걸어 잠그고 혼자 방에 틀어박혀서 주위 사람들을 불안하게 한 적인 한두 번이 아니었다.

디스코 열풍의 신호탄 ‘I Feel Love’(1977)

 

조르조 모로더와의 운명적 만남

도나 썸머는 블루스 록 밴드의 보컬리스트로 가수 생활을 시작했고, 곧 뮤지컬 <Hair>의 연기 오디션에 응모하여 합격하였다. 1968년에는 혼자 독일로 건너가 현지 뮤지컬 무대에 올랐으며, 수년 동안 살면서 독일어에 능숙해지자 그곳에서 싱글 음반을 내기도 했다. 이때 첫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애도 낳았으며, 뮌헨에 정착하면서 패션 모델과 백업 가수의 생활을 계속 했다. 그러다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그의 성공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프로듀서 조르조 모로더(Giorgio Moroder)와 피트 벨로트(Pete Bellotte)을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다. 세 사람이 한 팀을 이뤄 낸 ‘Love To Love You Baby’(1976)가 빌보드 차트 2위에 오르면서 스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76년부터 1984년까지 이들과 함께 하면서 한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톱 40 히트곡을 낸 기록은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다.

아카데미, 골든글러브, 그래미를 수상한 ‘Last Dance’(VH1, 1999)

 

문화 아이콘

1983년 그래미 시상식 후 뒤풀이 파티가 한창이던 레스토랑의 화장실에서 지치고 힘들어 깜박 잠든 직원을 보고, 그가 써내려 간 노래가 바로 ‘She Works Hard for the Money’(1983)다. 이 노래는 빌보드 핫100 차트의 3위에 올랐고, 여성 근로자의 권리를 대변하는 노래로 자리잡았다. 이 노래를 수록한 동명의 앨범은 발매 40주년을 맞은 올해 다시 발매될 예정이다. 블루칼라 여성을 대변했던 그의 사회적 위상은, 무대 위에서 동성애를 반대하는 발언을 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LGBT 커뮤니티로부터 항의와 배척의 대상으로 되돌아왔다. “신은 아담(Adam)과 이브(Eve)를 만들었지, 아담(Adam)과 스티브(Steve)를 만들지 않았어요.”라고 그가 말했다는 것이다. 썸머는 극구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면서, 이를 기사화한 뉴욕 매거진에 법적 소송을 내기도 했다. 한동안 시끄러웠던 논란이 점차 수그러들면서 그는 어릴 적부터 취미였던 미술 활동에 더욱 전념했고, 세 자매를 키우면서 그의 대외 활동은 많이 줄어들었다.

‘She Works Hard for the Money’ 뮤직비디오

도나 썸머가 암 진단을 받고 사망한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의 생애와 진짜 모습에 관한 숨겨진 진실은 묻히는 듯했다. 하지만 10여년이 지난 후 배우와 가수로 활동하던 딸 브루클린 수다노(Brooklyn Sudano)가 어머니의 인생에 대해 깊이 알게 되면서 어머니의 인생을 세상에 조명할 기회를 만들었다. HBO에서 최근 제작하여 공개한 다큐멘터리 <Love To Love You, Donna Summer>(2023)의 공동 제작자와 감독으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