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체크가 정규 3집을 들고 왔다. 디지털 싱글 ‘Velvet goldmine’ 이후 4년 만의 신곡이자 정규 앨범으로는 9년 만의 새 앨범이다. 여러 시대 상황과 맞물려 대체불가 토큰(NFT) 서비스로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장치가 마련된 앨범이기도 하다.*

* NFT에 관한 이야기는 인디포스트의 지난 기사를 확인하자.(링크)

이번 앨범의 커버 ‘화이트 래빗’을 내세운 ‘The Rabbit Hole’ 컬렉션은 성서에 나오는 7개의 죄악을 테마로1,111개씩 총 7,777개가 판매된다. 각 주제가 완판 될 때마다 순차적으로 로드맵이 공개되며 정규 앨범 얼리 액세스, 공연 입장권, 굿즈 등 여러 가지 혜택을 제공한다. 지난 1차 NFT는 이틀 만에 완판되었고, 구매자들에게 3월 발매 예정인 정규 3집 <Bleach>를 얼리 액세스하여 전곡을 미리 들어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어 특별 커뮤니티 ‘The Rabbit Hole’페이지를 오픈하여 이번 앨범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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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EP <Disco Elevator>로 데뷔한 이후 한국 대중음악상 사상 최초로 2년 연속 최우수 댄스&음반상을 받고, 국내외 페스티벌 공연과 해외 각국의 아티스트 및 레이블들과 교류 등 다양한 영역을 오가며 활동을 펼쳐온 글렌체크.

유럽과 서울에서 받은 영감을 녹여냈던 정규 1집 <Haute Couture>(2012)는 광고, 예능 등 각종 매체에서 울려 퍼졌고 페스티벌에서는 타이거 디스코를 따라 모두가 ‘60’s Cardin’을 추곤 했다. 음악, 패션, 영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창작을 하는 동료들과 함께 스페인 여행길에 올라 제작한 정규 2집 <Youth!>(2013)는 청량함, 젊음, 자유라는 수식어를 입혀준 명반으로 꼽히며 대중에게 글렌체크라는 밴드를 깊이 각인시켜 준 앨범이었다. 이어서 특정 이야기 구조를 바탕으로 제작한 EP <The Glen Check Experience>(2017)는 글렌체크만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그려내며 완벽한 변신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처럼 콘셉추얼함으로 완성도를 높인 그동안의 앨범들과 달리 이번 정규 3집 <Bleach>에서는 두려움을 마주한 글렌체크의 직접적인 경험과 감정을 바탕으로 13곡을 채웠다. 이 중 글렌체크의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차례대로 선공개 되며 우리의 기대를 높여준 4곡을 소개한다.

 

1. Dive Baby, Dive

‘Dive Baby, Dive’는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 기반으로 글렌체크가 이전에 시도해 보지 않았던 장르의 곡이다. 글렌체크만의 해석으로 풀어낸 록 사운드는 소설 속 한 장면 같은 가사까지 더해져 서정적인 분위기를 완성했다.

몽환적인 질감으로 쌓아 올리는 사운드와 자신의 신발만 내려다보며 기타를 치는 모습에서 파생한 ‘슈게이징’(Shoegazing) 장르 스타일은 ‘Dive Baby, Dive’에 그대로 녹아 있는데, 슈게이징으로 연주하는 멤버들은 가사의 “I'm shoegazing right in front of you”처럼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신발만 쳐다보며 머뭇거리는 화자의 마음과 맞물려 우리에게 이중적인 의미를 전달한다.

뮤직비디오에서는 주저하지 말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뛰어들라는 듯 계속해서 “Dive Baby, Dive”가 울려 퍼지고, 모든 외침이 끝나면 4:3 비율의 프레임이 우리에게 익숙한 넓이의 화면으로 바뀐다. 갇혀 있던 시야와 사고의 확장을 암시하는 것처럼 넓어진 화면 속에서 마음껏 연주를 하는 멤버들의 모습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기타 사운드와 함께 교차되며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처음에 등장한 새소리로 마무리되는 ‘Dive Baby, Dive’는 그렇게 깊은 잔상을 남긴다.

 

2. Dazed & Confused

초창기 글렌체크를 느낄 수 있는 사운드와 90년대 밴드 비주얼이 결합된 퍼포먼스 비디오는 다양한 앵글 속에서 몽환적이고 붕 떠있는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한다.

글렌체크가 말하고자 하는 종류의 젊음은 무엇일까? 반복되는 가사는 함께 부수곤 했던 그 무엇을 떠올리며 지난날 꽤 용감했던 우리에게 스스로 쉽게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한다. ‘Dazed & Confused’는 지난 EP 앨범 <The Glen Check Experience>의 ‘Rude & Confused’와는 또 다른 결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노래하고 있다.

 

3. Raving

‘Raving’은 비주얼라이저 버전으로 공개되었다. 3D 그래픽으로 제작된 공간은 정제된 공허함과 연속성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며 깜빡이는 불빛과 어지러운 분위기를 통해 ‘Raving’이 내포하고 있는 광적이고 거친 느낌을 더욱 증폭시켰다. 영상은 글렌체크의 VJ로도 활동하며 페스티벌 무대 영상을 제작한 바 있는 비주얼 아티스트 YNR(ynrvisuals)의 작업으로 완성되었다.

 

4. 4ever

푸른색과 노란색으로 대비되는 뮤직비디오의 전체적인 톤은 노래가 끝날 때까지 그 정적인 느낌을 유지해간다. 멤버 김준원의 연기와 동선, 가사와 함께 전환되는 장면들은 주목성을 띠며 영상 속 결부된 것들을 주관적인 해석으로 채워보도록 유도한다.

무엇보다 이 뮤직비디오의 하이라이트는 2분 30초의 “I'll be thinking about you” 구절에 이어 헤드셋을 끼고 음악에 몸을 맡기는 김준원의 모습일 것이다. 지난날에 대한 회상과 믿음은 여전히 견고하지만 계속해서 음미하게 되는 감정들은 무엇인지 곱씹어 보게 되는 ‘4ever’는 ‘Dive Baby, Dive’와 또 다른 서정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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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중심이 안에 있는 사람은 소용돌이에 휩싸여도 언젠가 자신의 페이스를 찾아낸다. 글렌체크는 불안하다고 해서 회피하기엔 새로운 시도가 갖는 가치와 즐거움을 너무나 잘 아는 밴드였다. 신스 팝, 뉴웨이브, 힙합, 디스코, 펑크, 알앤비, 테크노, 록, 애시드, 사이키델릭 등 끝없는 탐구와 결합을 시도하며 장르를 확장해 온 흔적은 한때 한정적이었던 수식에서 벗어난 현재로 증명하고 있다. 그 과정이 긴 호흡으로 이어질지라도, 언제나 서로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방향을 향하면서.

이번 앨범은 두려움에서 비롯된 원초적인 감정들을 직접적인 경험에 비추어 그려낸 글렌체크의 흔적이다. 11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달려오는 동안 어느새 불어난 강박과 두려움이 있었음을, 결국 지난날 스스로 만들어 놓은 것들에 의해 삼켜져 감당하기 어려운 지점까지 내몰리게 되었음을, 글렌체크는 고백한다. 그래서 이들은 원점이라는 공백 속에서 자신의 감정들을 요약하고 확장하며 다시 차곡차곡 채워냈다.

그동안의 침묵이 3집 <Bleach>에 있다. 새로운 장을 넘긴 글렌체크의 화이트 래빗을 따라가보자. 우리는 다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글렌체크 인스타그램

 

Writer

그림으로 숨 쉬고 맛있는 음악을 찾아 먹는 디자이너입니다. 작품보다 액자, 메인보다 B컷, 본편보다는 메이킹 필름에 열광합니다. 환호 섞인 풍경을 좋아해 항상 공연장 마지막 열에 서며, 동경하는 것들에게서 받는 주체 못 할 무언가를 환기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