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를 막론하고 세상 모든 이야기엔 ‘관종’이 되기 위한 욕구가 내포돼 있다. 그것은 직업적 사명감의 발로이기도 하며, 세상을 향한 한 개인의 외로운 외침일 수도, 그저 짧게 지나갈 가벼운 여흥일 수도 있다. 뭐든 자신의 이야기를 목표 공중에게 퍼트리려면 어떻게 관심을 끌 수 있는지 그 조건을 면밀하게 탐구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따라서 이야기를 만드는 모든 사람은 관종이어야 한다. 

우리는 스포츠 스타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무대에서 저마다의 올림픽을 꿈꾼다. 실력에 맞는 대우를 갈구하는 동시에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고자 한다. 흔히 그것은 ‘성공’이라는 욕망으로 조각된다. 어느 분야에 종사하든 성공의 척도 중 하나로 중요하게 각인되는 요소가 바로 ‘관심’이다. 올해 올림픽에서 높이뛰기 한국 신기록을 세우며 화제가 됐던 우상혁은 특유의 태도와 행동으로 그만의 매력을 뽐냈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물론 그만한 실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지만, 메달 지상주의의 현판을 무너뜨린 보기 드문 사례이기도 했다. “다음 올림픽에서는 강력한 우승 후보가 될 것”이라는 우상혁의 공언은 기존 국내 스포츠 스타에서 볼 수 없던 수사였다. 자신보다는 타인에게 공을 돌리고, 성취의 기쁨보다 실패의 아쉬움을 말했던 그동안의 클리셰를 깨부수는 장면이었다. 이제 겸양만이 미덕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만한 실력이 있다면 적당히 뽐내도 좋다.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숨길 필요 없이. 재주껏.

이쯤에서 자연스레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온갖 형태의 관심을 그러모으다 느닷없이 낭떠러지로 훅 꺼져버린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런 사람들의 말로를 보고도 관종이 되라고? 대체 관종이 뭐길래? <90년생이 온다>에 이어 <관종의 조건>를 쓴 임홍택 작가의 관점을 살펴보면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그에게 관종은 부정적 의미로 차용되는 ‘관심병자’가 아니다. 건전한 차원을 향해 나아가는 ‘관심추종자’의 영역이다. 

자본은 교환의 가치를 띤다. 관심에 자본이라는 단어가 붙으려면, 관심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상호 호혜적인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해치는 방향이어선 곤란하다. 더욱이 자신을 해하는 방식은 좋지 못하다. 관심은 결코 적선이 아니다. 그러므로 어느 선에서 관심을 주고받을지 경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 탐하는 건 좋지만 매몰돼선 안 되기에. 이에 지난 9월, 강남구청역 인근 카페에서 임홍택 작가를 만나 한국 사회가 관심을 다루는 방식과 창작자로서 그가 설정한 관심의 경계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Q 오랜만에 뵙는데 또 특이한 명함을 뽑으셨네요.

‘문서수발실’이요? 이게 사무실인데 제가 정규직으로 근무하는 건 아니고요. 무급이에요. 집필실을 쓰고 있어서 문서수발실 실장이라는 명함을 팠어요. 실제로 글을 쓴다는 의미죠. 명함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싶진 않거든요.

 

Q 명함에는 한국 사회의 암묵적인 룰이 담겨 있잖아요. 관심을 수월하게 획득하려는 수단으로 명함만 한 게 없죠.

우리나라에서 명함을 이용하는 방식은 좋고 나쁨을 떠나서 하나의 문화라고 보면 돼요. 보통 명함을 받았을 때 우선 회사를 보죠. 그 후에 직함을 보고요. 저는 예전에 회사 다닐 때 명함에서 회사와 직책을 지우면 과연 내 이름에 뭐가 남을지를 항상 고민했던 사람이거든요. 실제로 저보다 10~15년 선배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명함이 사라졌을 때 힘들어하는 모습을 많이 봤어요.

 

Q 관심이 사라지고 내가 나를 표현할 수단이 없어져선가요?

그렇죠. 소위 100세 시대를 사는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보기엔 아저씨고 할아버지일진 모르죠.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열심히 일할 수 있어요. 잘 지낼 수 있고요. 그런데 회사가 없으면 명함을 파기 민망한 거죠. 명함이 없으니 사람 보기가 힘들고요. 저 같은 사람이야 대놓고 전빨련(전국빨간차연합회) 회장 명함을 챙겨 다니는 거고요. 개드립 치려고 (웃음).

Q 작가님이 주는 명함을 보고 당황하는 분들도 있을 거 같아요.

그래서 막 뿌리진 않고 제 성향을 이해해 주실 법한 분들께 드리죠. 저도 한 회사의 대표 명함을 갖고 있어요. 근데 그걸 이런 자리에서 안녕하세요. 저 회사 차려서 대표예요. 이렇게 하는 게 겸연쩍어요. 물론 할 순 있지만 지나치게 격식을 차린 느낌이 든달까요. 개인적으로 지위에 대한 욕심은 제로라서요. 돈에 대한 욕심은 많은데 권력욕이 없어서 회사원으로서 100점은 못 됐거든요. 명함으로서 인정욕구를 강하게 느끼고 싶다는 생각은 없는 거죠.

 

Q 저는 직업 특성상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을 많이 만나요. 그런데 어떤 분은 ‘소장’으로, 어떤 분은 ‘실장’으로 자신을 소개해요. 두 사람 다 독립된 디자인 사무소의 대표인데 말이죠. 작업물 수준에 우열을 가릴 수 없어요. 단지 둘의 차이는 나이뿐이에요. 추측하건대 나이라는 요소가 ‘명명의 차이’를 불러오고, 나아가 ‘권위의 차이’를 가져오는 사례라고 볼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능력이 아닌 외적인 요소로 ‘관심의 크기’를 달리 받을 수밖에 없는 불평등한 사례라고 생각해요.

어려운 문제네요. 제가 잘 모르는 업계라 딱 잘라서 말하지는 못하겠습니다. 다만 아직 사회 전반적으로는 나이와 성별에서 보이지 않는 벽이 있거나 유리천장이라는 게 존재한다고 봐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강연 관련 책들을 보면 30대 이하의 사람들을 믿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해요. 왜냐하면 한 기업의 임원들이라고 했을 때, 그들이 외부 전문가를 보고 인정하는 범위가 있어요. ‘나는 잘나가는 기업의 임원이야.’ ‘경험도 많아.’ ‘감히 30대의 젊은 친구가 뭘 안다고 이런저런 조언을 해?’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대체로 40대 이상의 교수분들을 강연에 부르는 게 안정적인 섭외라 보죠.

 

Q 작가님도 30대일 때 그런 일을 겪었나요?

저는 약간 특수한 게 <90년생이 온다>를 쓴 사람이잖아요. 기업에서 젊은 세대에 관한 강연을 누군가에게 맡길 때, 한 살이라도 더 젊은 사람이 잘 알지 않을까 하는 판단이 저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죠. 그렇기에 수월하게 강연을 맡을 수 있었다고 봅니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특수한 경우인 거고요. 실제로 몇몇 기업이 젊은 유튜버를 강연자로 부른 적이 있는데, 많이 실패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들에게도 리스크가 존재하는 거죠.

 

Q 어찌 보면 클라이언트를 대해야 하는, 소위 ‘을’에 있는 모든 직업군이 가지고 있는 숙명으로도 보여요.

갑과 을의 세계에서도 어느 정도 ‘급’이 맞지 않으면 받아들이기 힘들다 뭐 그런 게 있을 수 있겠죠. 사실 명함으로 서로를 구분 짓는다는 행위 자체가 원시시대에서 으르렁대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봐요. 명함은 그냥 자기의 정보를 나누는 행위일 뿐인데. 우쭐댈 이유도 슬퍼할 필요도 없고 굳이 주고받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에요.

 

Q 어떤 영역에 종사하느냐에 따라 받을 수 있는 관심의 양 또한 정해질 겁니다. 예컨대 대중적인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의 가수를 비교했을 때 그 차이가 극명하겠죠. 관심이 곧 돈이 되는 시대이고, 그리고 그 돈의 차이가 삶의 질을 나누는 현 상황에서 ‘메이저’가 아닌 ‘마이너'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주위에 힙합 하는 친구가 있어요. 실력 있고 음악도 좋은데 메이저로 잘 안 가더라고요. <쇼미더머니> 충분히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 안 나오더라고요. 언젠가 만나서 물어보고 싶었어요. 왜 TV에 출연하지 않는 이유요. 본인이 스스로 경계를 짓고 나가지 않는 건지, 아니면 기회가 없는 건지, 혹은 철저히 마이너로 살고 싶은 건지. 저도 궁금해요. 그래서 감히 조언을 드리기보단 이렇게 보면 좋을 거 같아요. ‘대중가수’ 언급하셨는데, 대중이냐 비대중이냐의 차이는 규모의 문제죠. 하지만 ‘재즈 가수’라는 갈래를 따로 놓고 보자고요. 이건 장르의 영역이잖아요. 이 비유를 출판시장에 그대로 대입해 보면 돼요.

Q 출판시장에 어떻게 대입할 수 있나요?

‘작가’라는 말을 짚어보자고요. 이 범주 안에는 소설가, 시인처럼 분야가 명확히 정해져 있는 분들이 있어요. 이런 분들이 아까 말한 장르의 차원인 거예요. 근데 또 뭐가 있냐면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개념이 있어요. 제가 운 좋게 들어갈지 모르지만 사실 골 때리는 거죠 (웃음). 이게 되게 작위적인 개념이라 생각해요. 저는 저를 베스트셀러 작가로 정의해 본 적 없어요. 더군다나 작가라고 소개하지도 않아요. OOO의 ‘저자’로 소개해요. 어떤 책을 쓰면 거기에 대한 책임을 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쇼펜하우어도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내고 나서 자신이 그 ‘책’의 저자라고 말하고 다녔어요. 방점은 작품에 있다는 거죠.

 

Q 작가라는 개념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의미인가요?

작가라는 개념 자체가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메일을 쓰든 기사를 쓰든 방송 대본을 쓰든 모두 ‘writer’(작가)이거든요. 그냥 글 쓰는 사람이라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출간작가’를 다른 차원에 놓고 지나치게 높게 평가해요. 한국 사회에서 특수한 지위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망의 시선도 있고요. 언젠가 대담을 나갔는데 사회자분이 그러는 거예요. 작가로서 한마디 해달라고. 사실 작가가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요. 일개 개인일 뿐이고, 큰 기대를 받을 필요도 없고, 또 작가 스스로 우쭐할 필요도 없어요. 근데 이런 인정욕구를 사회적으로 조성하고 일부 작가님들은 또 거기에 매몰돼 있지 않나 생각해요.

 

Q 굳이 따지자면 작가님은 메이저 혹은 마이너 어디에 더 맞닿아 있다고 보세요?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이제 세 권의 책을 쓴 ‘저자’에 불과하고 앞으로도 글을 쓰려고 매일매일 싸우고 있는 그런 사람일 뿐이에요. 다만 앞으로 더 잘 팔리고 인정받는 작품을 쓰고 싶긴 해요. 그렇다고 이게 ‘메이저를 ‘이상’으로 좇느냐.’의 문제는 아닌 거 같아요. 누가 나를 알아보고 이런 건 부담스럽거든요. 그래서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그어놓는 거죠. 솔직히 메이저가 되면 뭐든지 유리해요. 강연료 올라가고 먹고살기 편하죠. 유튜브도 병행하면 더 좋고요. 책을 훨씬 잘 팔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아요. 성향에 안 맞는다는 뜻이에요. 저도 TV에 나가고, 강연도 하지만 균형을 찾고 싶은 거죠. 항상 고민해요. 이 지점을.

 

Q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관심을 받고자 하는 건가요? 적정선을 지킨다는 게 원래 어렵잖아요. 자신이 원하는 만큼과 대중이 바라는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까놓고 말해서 ‘임홍택’이라는 석 자는 ‘듣보잡’에 가까워요. 제 책은 잘 알려진 반면 저는 그렇지 않죠. 그런데 전 이게 좋아요. 어느 정도까지 관심시장에 뛰어들 건지 이 선을 결정한 사람이거든요. 예전에는 나무위키에 기재되는 게 꿈이었던 시절도 있었어요. 지금은 아니에요. 저에 대해서 아무도 관심 없으면 좋겠어요. 제가 쓰고 싶은 에세이의 핵심도 바로 ‘영원히 나를 모르면 좋겠다’예요.

 

Q 생각이 바뀐 이유가 있나요?

타인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맘대로 살고 싶어서요. 누가 알아보고 그러면 맘대로 못하잖아요. 욕도 막 내뱉고 개드립도 치면서 놀아야 하는데, 아무도 관심이 없어야 논란 안 되잖아요. SNS에도 별의별 거 막 올리거든요. 그러니까 명성을 얻는다는 건 관심의 문제에 있어서 양날의 검인 거예요. 임홍택이라는 사람이 알려지지 않는다는 디메리트가 있다면, 알려지지 않음으로써 이슈의 논란이 되지 않는 메리트가 있을 수 있죠.

 

Q 그래도 가끔은 누군가 알아볼 법도 한데요. 곤란한 일은 없었나요?

있어요. 몇 달 전에 아이들과 동네에서 노래 부르면서 지나가는데 갑자기 쿡, 하고 저한테 시선이 박히는 느낌이 들었어요. 뭔가 싶었는데 주민분이 저를 알아보신 거예요. 임홍택 작가 아니냐고. 이게 기분이 나쁘진 않았지만 되게 위험을 느꼈단 말이죠. 동네에서 한두 명 알아보면, 헐렁헐렁 쭉 늘어난 티셔츠 못 입고 다니는 거 아닌지 걱정도 되고요. 그래서 그냥 저는 작품으로 알려지고 싶어요. 제가 아니라.

Q 농담으로 말하는 거지만 작가님이 스스로 ‘설정한’ 위치에 있는 거 같긴 해요. 저도 주변에 이야기했을 때 임홍택 작가라고 하면 잘 모르거든요. <90년생이 온다>를 이야기하면 그제야 알아채더라고요.

제가 책 세 권 냈거든요? 그게 각기 다른 내용이라 연결이 안 되잖아요. 쓰고 싶은 책을 쓰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패턴이 생기고 문체가 좋다고 사람들이 이야기하면서 긍정적인 의미의 팬덤이 생기면 저도 좋은 거죠. 그러니까 작품으로 인정받고 싶은 거예요. 이게 자의적인 작가가 아니라 타의적인 작가가 되는 기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Q 작품에 창작자가 매몰되는 경우도 왕왕 있잖아요. ‘원 히트 원더’라는 말도 있듯이요.

하나만 빵 터지고 영원히 안 되는 경우도 물론 있겠죠. 저는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다음 책을 열심히 쓰고 인정받으려는 거거든요. 사실 되게 편하게 살 기회가 있었단 말이죠. <90년생이 온다>가 떴죠? 이제 관련된 책만 줄줄이 쓰면 돼요. ‘70년생이 온다’ 혹은 ‘2000년생이 온다’ 쓰면 되죠. 왜 못써요. 제안도 많이 왔어요. 하지만 전 그 길이 싫더라고요. ‘90년대생 연구소장’이라고 딱 타이틀 달고 활동하면서 청년 관련한 단체나 기관에 기웃대면 돼요. 그런데 안 하고 있어요. 스스로 편한 길을 버린 거죠. 이게 바로 선택이에요. 무얼 할 수 있는지는 자신이 정하는 거죠. 저는 더 재밌는 얘기를 쓸 수 있다고 스스로 확신해요.

 

Q 인정은 대중의 영역이지만 벽을 넘어야 하는 건 결국 창작자죠.

<관종의 조건> 나왔을 때 전작보다 못하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나름 저에게 기대한 바가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생각하지 못한 책이 나왔죠. 실망인 분도 있겠지만 저는 만족해요. 책이 두껍고 어렵다는 쓴소리는 일종의 자양분으로 다음 책에 반영하면 되는 거고요. 말씀하셨듯이 결국 창작자인 제가 넘어야 할 벽이에요. 더 좋은 이야기를 듣고자 노력하고 경험을 녹이고 계속 무언가를 써야 하죠. 그리고 좌절해야죠. 글 쓰는 사람들은 계속 좌절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괴롭지만.

 

Q 요새는 책을 내서 유명해진다기보단 유명하니까 책을 내는 시대가 된 거 같아요.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가장 쉬운 길은 인기 있는 유튜버나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섭외하는 거죠. 출판도 하나의 산업이니 나쁘지 않은 방식이에요. 다만 씁쓸한 상황이기도 해요. 반대로 생각했을 때 유명하지 않으면 인정받기가 어렵잖아요. 워낙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상황이어서 그래요. 더군다나 이상한 건 출판시장은 쪼그라드는데 출판사는 많아지고 있잖아요. 이상하단 말이죠. 책을 쓰고 싶은 사람은 점점 늘어나는데 정작 사고 싶은 사람은 줄어든단 말이에요. 플레이어만 많아지는 희한한 시장인데, 시장이 작으니까 조금만 팔려도 상위권에 올릴 수 있어요. 그러면 이름 있는 사람 쓰는 게 성공과 가까운 길이죠. 물론 유명세를 장점으로 가진 분들께 뭐라 할 건 아니에요. 분명 본인이 열심히 노력한 거고 시대의 흐름을 잘 맞춘 거니까.

 

Q 최근에 작가님의 관심을 끌었던 콘텐츠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봉준호 감독님의 강연이 기억나요. <기생충>을 찍고 나서 있었던 강연을 유튜브에서 봤는데요. 거기서 본인을 ‘6개의 영화를 찍은 감독’이라고 소개하시더라고요. 그분에 대한 여러 수식어가 많지만, 이것만큼 임팩트 있는 소개를 본 적이 없어요. 과거의 영광에 본인을 두는 게 아니라 앞으로의 작품에 본인을 놓는 거잖아요.

 

Q 작가님의 모토와도 맞닿아 있는 듯한데요. 그래서 더 와닿았겠어요.

살인의 추억에서 대성공을 거두시고 괴물을 찍으셨고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을 하시다가 기생충을 터트리신 거잖아요. 저도 그런 삶을 살고 싶은 거죠. 끝이 없는 도전이 힘들겠지만, 내가 쓰고 싶은 책이 있는데 포기하기엔 오기가 생기는 거죠. <관종의 조건> 두꺼우니까 사람들이 싫어한단 말이에요. 그래도 나중에 벽돌처럼 두꺼운 책 쓸 거예요. 진짜. 물론 팔기는 어렵겠지만, <사피엔스>처럼 방대한 내용을 열심히 연구해서 쓰고 싶은 게 꿈이에요. 다른 사람이 쉽게 꾸지 않는 꿈이지만 저는 진심이거든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접할 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뭔가 메이저라 성공하고 마이너라 실패하고 인디는 돈을 못 번다 이런 개념은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메이저가 마이너가 될 수도, 마이너가 메이저가 될 수도 있어요. 앞날은 몰라요.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벌이가 되느냐는 계속 고민해야겠죠. 속물적인 의미가 아니라 내가 과연 어떤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하니까요. 돈이 안 된다는 건 아무도 찾지 않는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니까.

메이저만 가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마이너라 해도 찾는 사람이 있으면 돈을 버는 거죠. 메인 시장에선 많은 사람이 경쟁하지만, 그 울타리를 벗어나면 아닐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자기 실력으로 자기 취향을 꾸준히 지켜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그렇다면 유명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게 제 생각입니다. 그냥 본인의 꿈에 기대어 묵묵히 가면 그만 아닐까요?

 

Writer

일상이 계기가 된다고 믿었던 사람. 망상을 철칙으로 삼았던 사람. 언젠가 현실주의자가 되고픈 염세주의자.
서인원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