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공주는 왕자와 평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이 결말이 스크린에 등장한 지 8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지난 1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이하 디즈니 스튜디오)는 언제나 애니메이션 산업을 대표하는 이름이었다. 매 작품에서 천천히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온 이들의 철학은 마치 100년간 꾸준히 활동해온 한 사람의 감독을 보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들은 세상이 원하는 이상적인 해피엔딩 동화를 자신들이 정한 공식에 맞춰 꾸준히 제공해왔다. 그렇기에 디즈니 스튜디오의 작품이 어떻게 변화해가는가를 살펴보는 과정은 곧 세상이 추구해온 보편적인 가치들이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살펴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기술적 혁신과 함께 화려하게 등장한 후 50년에 가까운 시간을 견뎌냈고 1990년대 다시 화려하게 부활하여 현재에는 3D 기술로의 완전한 전환을 성공시키기까지, 여섯 편의 작품들과 함께 디즈니 스튜디오의 지난 100년의 역사를 조명한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1937년 개봉한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는 디즈니 스튜디오의 첫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이 작품의 가치를 논하기 위해선 아무도 애니메이션을 보기 위해 극장에 가지 않던 시대에 이 작품이 등장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작품의 길이뿐 아니라 선명한 총천연색의 색상과 화질 그리고 인물의 동작을 표현해내는 능력과 화면 속 이미지에 원근감을 부여하는 능력까지, 본작은 동시대의 다른 작품들보다 한참을 앞서 있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는 단순히 막대한 흥행을 이뤄냈을 뿐만 아니라 ‘디즈니식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의 기준이 될 만한 공식들을 확립했다. ‘이미 모두가 알만 한 동화 채택하기’, ‘작품 중간중간에 더해진 뮤지컬 넘버들로 작품에 활력을 더하기’, ‘권선징악의 해피엔딩을 택하기’까지. 이 일련의 과정들은 하나의 공식으로 자리 잡아 이후 디즈니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반복되어 등장한다. 때문에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곧 30년대부터 80년대에 이르기까지 50여 년간의 디즈니 스튜디오 영화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 ‘Heigh Ho’

하지만 이 사실은 다시 말해서, 과거 디즈니 스튜디오의 영화들은 더 이상 현대에서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저 죽은 채 누워있다가, 시체에게 키스한 왕자 덕분에 새 생명을 얻고 평생 행복한 삶을 약속하며 끝맺는 백설공주의 이야기는 불평등과 소극적 여성상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백설공주뿐만 아니라 이 작품을 답습한 모든 영화들 속 다른 디즈니 공주들이 그런 존재가 되어버렸고, 더 이상 누워있기만 하는 공주를 바라는 관객은 어디에도 없다. 역설적이게도 이제는 이 작품이 얼마나 놀라운 기술력과 아름다운 작화를 갖추었는지가 잊혀 가는 듯하다.

 

<환타지아>

<환타지아> ‘토카타와 푸가’

디즈니 스튜디오의 과거 영화들에 성공을 위한 '공식'이 확연히 자리 잡혀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이들이 새로운 시도 없이 기계처럼 영화를 찍어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환타지아>는 오케스트라의 등장과 함께 시작한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여러 음악에 맞추어 애니메이션이 화면에 펼쳐진다. 음악과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서사가 있는 애니메이션이 등장하는가 하면, 서사가 없이 그저 음악의 분위기와 상황을 구현하는 애니메이션이 등장하기도 한다. 또 그중 몇몇의 애니메이션은 오직 음악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파편화된 이미지들의 연속이다.

이 실험적인 애니메이션을 구현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쏟은 디즈니 스튜디오는 본작의 처참한 흥행성적으로 인해 파산 직전까지 향하게 된다. 그러나 이 작품은 현대에 이르러 걸작으로 재평가된다. 당시에는 졸작으로 불렸던 이 작품이 재평가를 받게 된 중요한 변화는 무엇이었을까? 음악이 이미지에 헌신하는 것이 아닌, 이미지가 음악에 헌신한 최초의 작품이라는 점을 눈여겨볼 할 필요가 있다.

당시 기준에서 이러한 시도는 낯설다. 본작이 개봉한 1940년대는 듣는 음악의 시대였다. 그러나 60년대 뮤직비디오라는 개념이 탄생하고 1981년 MTV가 개국하면서, 음악을 듣는 시대는 가고 음악을 보는 시대가 도래했다. 시간이 더욱 지나 유튜브 세대가 등장했고 이제 <환타지아>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할 관객은 없다. <환타지아>는 선구자였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클래식 음악을 시각적인 쾌감으로 옮겨내는 붓으로 그린 2D 애니메이션이 현대의 관객들에게 남기는 인상은 남다르다.

 

<알라딘>

장편영화는 매번 많은 시간과 자본이 필요했고 <환타지아>라는 실험의 실패 후 디즈니 스튜디오는 백설공주의 공식을 50년 가까이 답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들이 표방한 구시대적 가치들은 반세기가량 이어졌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속의 수동적인 공주의 모습은 신데렐라로, 잠자는 숲 속의 공주로, 여러 차례 얼굴을 달리하며 반복됐다. 이제 시간을 옮겨, 1990년대로 가보자.

<알라딘>은 과거의 디즈니 영화들과 분명 다르다. 안데르센이나 그림형제의 동화 대신 아라비안 나이트의 이야기를 빌려와 동양의 색채가 두드러진다. 가장 큰 변화는 역시 ‘자스민’ 공주에게 있다. 시대의 요구에 발맞춰 1990년대의 디즈니 공주들은 이전보다 진취적인 인물들로 성장했다. 자스민 공주는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지 않는다. 술탄이 정해준 남편들과의 결혼에 반항하고, 몰래 궁궐 밖으로 나가기도 하며 무엇보다 그녀는 알라딘의 훌륭한 조력자로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간다.

그러나 자스민은 아직 21세기 디즈니 영화 속 여주인공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그녀는 여전히 조력자의 위치에 남겨져 있으며 그녀를 운명 밖으로 꺼내 주는 것은 결국 알라딘의 몫이다. <알라딘>은 동양의 이야기를 가져와 이전보다 다양한 문화를 포용하려는 디즈니 스튜디오의 모습을 보여줬지만, 이들이 아랍이라는 문화와 아랍인 등장인물들을 그려내는 태도에는 오리엔탈리즘이 묻어있음을 작품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영화 <알라딘> 트레일러

이전보다 진취적이지만 여전히 아쉬운 여성 인물들, 타문화를 포용하고자 하지만 조금은 차별적인 시선들, 그럼에도 대중적이고 포용력 높은 이야기. 이 특징들이 90년대 디즈니 스튜디오를 설명한다. 최근의 디즈니 스튜디오가 90년대 작품들을 연달아 실사화 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높은 흥행 가치를 가진 이 작품들은 아쉽게도 완전한 정치적 올바름의 구현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라이온 킹>

<라이온 킹>은 디즈니 스튜디오의 첫 창작 애니메이션이다. 처음으로 부분 3D 효과를 도입했고 기존의 캐릭터 중심의 미장센에서 벗어나 배경의 웅장함과 서사의 비극성을 강조한 화면 구성을 선보였다. 하지만 <라이온 킹>의 기술적 발전이나 엄청난 흥행성적도 중요하지만, 여기에선 창작 애니메이션에서조차 디즈니 스튜디오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비록 모티브가 된 셰익스피어의 햄릿보다는 여성 캐릭터의 비중이 늘어나는 태도를 보였지만, 여전히 본작을 지배하는 사회질서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이며, 강자 중심의 계급주의다. 권선징악의 이야기 구조는 본작의 차별적인 시선과 얽혀 편견과 혐오를 조장한다. 어두운 피부톤으로 등장하며 흑인 혹은 히스패닉의 언어를 구사하는 악역 동물들의 모습은 이들의 외향적 특징들이 편견으로부터 탄생했음을 알 수 있다.

영화 <라이온킹> 트레일러

본작이 창작 애니메이션임을 고려했을 때, 디즈니 스튜디오가 창조해낸 세계가 이러한 규율에 따라 구현되었다는 점은 아쉽다. 어쩌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제는 <라이온 킹> 역시도 떠나보내는 것이 마땅할 작품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본작이 담고 있는 몇 가지 놀라운 변화들도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생명의 순환이라는 주제의식과 함께 본작은 생명의 존엄과 생태계의 보존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무겁게 이야기한다. 또한 남성만으로 구성된 가족 공동체의 모습을 미디어에 자연스레 노출했다는 점 역시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라푼젤>

21세기 초반의 디즈니 스튜디오는 낡고 둔한 거인이었다. 1990년대 말 픽사 스튜디오는 <토이스토리>와 함께 3D 애니메이션의 시대를 알렸고, 2001년 개봉한 드림웍스 스튜디오의 <슈렉>은 디즈니 스튜디오의 고리타분한 가치관들을 모조리 뒤집으면서 디즈니 스튜디오의 구시대적 이미지를 더욱 공고히 했다. 3D 기술에서도 뒤쳐지고, 이야기도 낡고 진부해진 디즈니 스튜디오에게 <라푼젤>은 반드시 변화해야 하고, 반드시 성공해야 할 작품이었다.

‘라푼젤’이라는 주인공을 택한 점부터가 의미심장하다. 다른 3D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만큼의 기술력을 보여주고 변화된 가치관을 증명하면서도, 디즈니 스튜디오의 색채를 완전히 포기해서는 안됐다. 따라서 디즈니 스튜디오는 창작 애니메이션이 아닌 다시 한번 고전 동화를 택했다. 대신 탑에 갇혀있는 공주를 구하러 가는 왕자의 이야기가 중심이었던 원작을, 왕자라는 조력자와 함께 성을 탈출하여 주체적으로 모험을 이어나가는 공주의 이야기로 탈바꿈시켰다. 더 이상 ‘디즈니 공주’라는 단어는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는 여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영화 <라푼젤> 트레일러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라푼젤이라는 주인공은 디즈니 스튜디오가 3D 기술을 얼마나 잘 활용할 수 있는가를 증명할 좋은 기회였다 20m가 넘어가는 머리카락을 자연스럽고도 리듬감 있게 표현해냄은 곧 3D 기술의 후발주자인 디즈니 스튜디오가 완전한 기술적 전환에 성공했음 의미했다. 실제로 <라푼젤>의 3D 효과는 성공적이다. 애니메이션에서만 연출할 수 있을법한 극적이고 빠른 카메라 효과와 액션 연출들을 선보임으로써 이전의 어떤 영화에서도 본 적 없는 3D 기술의 혁신을 보여줬다. <라푼젤>을 통해 21세기의 디즈니 스튜디오는 기술적으로도 서사적으로도 다른 모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들에게 확실한 카운터 펀치를 선사했다.

 

<겨울왕국>

‘안나’는 여왕 ‘엘사’의 동생이자 공주다. 엘사는 죽을 위기에 처했다. 안나의 양쪽에는 죽어가는 엘사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남자 조연 ‘크리스토프’가 서있다. 안나는 어디를 향해야 할까? 크리스토프를 기다렸다가 그와 함께 간다는 선택지는 곧 지난 세기 디즈니 스튜디오 영화의 모든 인물들이 택한 방향이다. 디즈니 공주들은 자신의 운명에 순응했고, 자신의 조력자에게 의지했으며, 언제나 결말에서는 그들의 결혼상대를 찾아 결혼하는 것만이 이들의 해피엔딩이었다.

안나는 크리스토프를 기다리지 않고 엘사에게 달려간다. 이제 디즈니 스튜디오는 지난 시간 동안 답습해왔던 로맨스 서사와의 종결을 선언한다. 남녀 간의 사랑은 자매간의 사랑으로 대체되었고 여전히 해피엔딩이지만 그 자리에는 남자와의 결혼이 없다. 공주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수많은 영화들에서 공주들은 한 번도 제대로 된 주인공이었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겨울왕국>은 오직 안나와 엘사의 이야기다. 이 점이 그동안의 모든 디즈니 공주들과 엘사, 안나를 달라 보이게 한다.

영화 <겨울왕국> 트레일러

그동안 ‘디즈니 공주’라는 단어는 드레스를 입고 구두를 신으며 높은 성에서 사는 역할을 하는 이들을 의미했다. 하지만 안나와 엘사에게는 책임져야 할 백성이 있다. 안나와 엘사는 자신의 삶이 원하는 개인적인 가치에만 집중하지 않고, 공주와 여왕이라는 자리가 주는 책임감에 대해 고민한다. 모든 아이들이 동경하는 ‘디즈니 공주’라는 이름은 이제 그에 걸맞은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자리가 되었고, 세상은 이들의 모습에 열광했다.

디즈니 스튜디오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앞으로 더 많은 가치들을 지향할 것이다. 결혼이 아닌 다른 행복한 결말을 찾을 것이고, 사랑이 아닌 다른 이상을 좇을 것이며 모든 이들은 동화 속 세계에서 평등할 것이다. 디즈니 스튜디오는 자신들의 최고 흥행작에서 21세기 동화의 기준을 다시 세웠다.

 

Writer

좋아하는 건 오직 영화 뿐이고 특히 68혁명 이전까지의 고다르 영화에 대한 광적인 팬이다. 스스로가 언젠가 대단한 일을 해낼 거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 철이 없다.

강정화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