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은 누구에게나 취약한 시간이다. 내가 사실 별것 아닌 존재라는 걸 깨닫는 시간이다. 나 자신조차 받아들이기 버거운 시간이다. 무엇보다 가깝다고 믿었던 사람을 생경하게 느끼는 시간이고, 시간의 잔해들이 나뒹구는 황량한 시간이다. 마의 새벽 두 시를 넘기면 증세는 더 심해진다.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저도 모르게 전화통을 붙잡고, 도통 잠을 이루지 못해 뒤척이다가 라면 냄비에 물을 올린다. 고독은 이렇게 뜬눈 사이로 스며든다. 눈을 감기조차 어렵게 온 방안을 부유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고독한 이의 책장엔 문학이 꽂혀있다. 도시가 잠들고 달빛마저 희미한 새벽이 오면 문학은 외로운 이의 등을 정성스레 쓰다듬는다. 홀로 남겨졌다는 두려움도 잠시 잊고, 떠나보낸 그를 다시 이불속으로 끌어당긴다. 흔한 연애담을 내 일처럼 보살피고, 더는 혼자 긍긍하지 않도록 사려 깊게 낱말을 고른다. 오늘은 이처럼 고독에 신음하는 누군가를 이야기하는 소설 두 편을 소개한다.

 

<금테안경>(1958) - 볼로냐 인근에 혼자 사는 ‘아토스 파디가티’ 씨

조르조 바사니는 볼로냐 대학 문학부 출신이고, 평생을 근처 도시 페라라에서 살았다. 그의 소설 대부분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페라라를 배경으로 한다. 현재 바사니는 이탈리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불리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 출판사 문학동네가 바사니의 선집을 출간하면서 낯선 도시 페라라가 내 방으로 들어왔다.

<금테 안경>은 외로운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가엾은 남자 ‘아토스 파디가티’. 이 늙수그레한 남자는 잘나가는 의사면서도 문화 소양이 뛰어나서 주민의 이목을 끈다. 옷도 화려하고 매끈하게 입는 멋쟁이에 말투는 어찌나 상냥한지 온 동네 사람이 그를 보면 웃으며 손을 흔든다. 그는 어디를 가든 품위 있는 장소로 탈바꿈시킬 줄 아는 지성인이며 예술가 기질이 풍부한 데다 사교적이기까지 해서 페라라 주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

페라라는 동네가 좁고 인구가 적다 보니 개개인의 사생활에 민감하다. 작고 화목한 공동체일수록 더 간섭이 심한 편이니까. 민족주의의 탈을 쓴 집단 문화는 뿌리 깊은 인류의 내력이다. 그걸 잘 아는 파디가티는 사람 눈을 피해 저녁 시간마다 조용히 영화관에 들른다. 금테 안경을 쓴 채 눈에 띄지 않는 구석 자리에서 영화를 관람한다. 허구에 은거하며 다른 세상에 몰입하는 행위는 그에게 있어 이 좁디좁은 마을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으리라. 시대를 잘못 태어난 보헤미안이 갈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상류층 백인 남자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게 흔치 않은 일이다 보니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주민들은 직감적으로 파디가티가 게이라는 걸 눈치채고, 그에 관한 추문을 마을 깊숙이 퍼뜨리기 시작한다.

간신히 마을 공동체에 걸쳐있던 파디가티는 동네 미소년 델릴리에르스와 사랑에 빠지면서 위신이 추락하다. 당시만 해도 공개적으로 게이라는 걸 밝힐 수 없는 시대였기에 그의 선택은 모든 걸 감수한 일탈이다. 주위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젊고 잘생긴 애인과 해변 근사한 호텔에서 동거한다. 문제는 델릴리에르스가 상종하기 어려운 무뢰한이라는 점이다. 델릴리에르스는 파디가티를 노골적으로 경멸하고 내밀한 비밀을 함부로 발설하고 그에게 주먹을 휘두른다. 소설은 두 사람이 어떤 계기로 가까워졌는지 힌트조차 주지 않는다. 특이한 점은 파디가티의 태도다. 파디가티는 델릴리에르스의 기행을 감수한다. 마치 델릴리에르스가 평생을 거쳐 시달려온 삶의 조건이라도 되는 듯 견뎌낸다. 파디가티는 왜 그를 떨쳐낼 수 없었을까? 어쩌면 사랑이란 게 애초에 불가해하고 비이성적인 충동에 불과한 걸까? 다 지나가고 나서야 한 번 더 입술을 깨무는 것에 불과한 걸까?

소설은 중간중간 페라라의 자연경관과 일상의 목가적인 풍경을 손에 잡힐 듯 그려낸다. 소박한 도시가 지닌 냄새를 고스란히 보존해냈다. 그와 동시에 절절한 외로움도 그 안에 담아냈다. 조르조 바사니는 모든 아름다움이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한 남자의 삶을 탐미적인 문장 안에 가둔다. 파디가티의 밝은 표정에 가려진 어두침침한 고독. 늘 마음 한구석이 위축되어 마음 터놓을 친구 하나 없는 처지. 페라라라는 유배지에 고립된 파디가티는 끝내 수인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방인>(1942) - 알제에 사는 평범한 직장인 '뫼르소' 군

첫 문장을 기억하는 소설이 있다.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 점심을 먹다가 문득 창밖을 볼 때 불현듯 외는. 그중에서도 카뮈의 <이방인>은 별난 울림을 가진 작품이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한 소년이 살인죄로 기소되고,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을 때까지 이 문장은 독자를 따라다닌다. 소설에서 첫 문장은 연애의 첫 만남처럼 관계를 좌우한다. 역시 잘생긴 게 최고라는 말을 들으려면, 매혹적인 도입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매일 수많은 소설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진짜배기는 어김없이 고고한 첫 문장을 나직하게 속삭이는 법이다.

알제에서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는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고 느닷없이 한 아랍인을 살해한다. 살인 혐의로 법정에 선 뫼르소는 왜 사람을 죽였냐는 판사의 질문에 타오르는 태양에 눈이 부셔서 그랬다고 답한다. 이때 뫼르소의 담당 변호사는 어깨를 으쓱한다. 더는 변호하기 어려운 골칫덩이라는 식이다. 그의 대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며칠 전 뫼르소는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신 어머니의 장례를 치렀다. 그는 피로했고,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슬픔보다는 내내 관습에 가까운 절차를 따르느라 분주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 틈에서 질식할 것처럼 숨이 막혔다. 당연한 수순처럼 능숙하게 망자를 떠나보내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죽음이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음을 처리하는 관례에 몰두하는 게 이상했다. 그들은 슬픔을 표할 때도 허례에 불과한 말을 붙이고, 죽음을 동정하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뫼르소는 능숙한 그들 앞에서 주눅이 들었다. 오직 바라는 게 있다면 어서 장례를 치르고, 그들을 빠져나와 애인 품에 안기고 싶었다. 자신에게 익숙한 여름날 마을 풍경과 천진한 바닷가 골목 어귀를 홀로 걷고 싶을 따름이었다. 법정은 뫼르소에게 어머니를 잃은 자식이라면 응당 해야 할 행동을 강요했고, 그는 맡겨진 배역을 연기하지 못해 궁지에 몰렸다. 이쯤 되면 그에게 씌워진 혐의는 명백하다. 사회 부적응을 넘어, 시스템을 부정하는 불순분자. 뫼르소는 그때부터 기요틴에 목을 넣을 때까지 우스운 세상을 외면한다. 그는 항변하기보다 부정함으로써 저항한다. 따져 묻기보다는 실토하지 않음으로써 당당하다. 그에게 사람들은 무의미를 길어 올리는 시시포스처럼 보였고, 자신은 그렇게까지 해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이방인>이 가진 폭력성은 시선에 있다. 뫼르소는 온갖 사람들이 지닌 통념에 놀아난다. 왜 당신은 어머니 장례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느냐? 왜 당신은 밀크커피를 마시며 직원과 시시덕거렸냐? 왜 당신은 장례를 치르자마자 놀러 갔냐? 왜 어머니가 죽은 다음 날 여자랑 잤냐? 아무도 그의 심정이나 내적 갈등을 눈치채지 못한다. 그는 끝없이 스스로 자문하며 생각을 이어가지만, 아무도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지 않아 외롭다. 그는 발언 기회조차 잡지 못한 채 악한으로 몰린다. 사뭇 우습게까지 느껴지는 법정의 진술 과정은 세상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자신의 죄를 논하는 자리에서 자신을 배제해내는 공권력의 부조리. 속내를 숨기고 허튼 말을 뇌까려야 납득하는 대중 주류의 정서. 실존주의 철학에 의하면 세상에 던져진 존재는 끝없이 질문해야 마땅하다. 이유 없는 실천은 실존과 거리가 멀다. 뫼르소는 보편이라는 폭력에 침묵으로 대항했다. 왜라는 질문 자체에 관심이 없는 무리 틈에서 스스로 묻고 또 물으며 죽음을 기다린다. 이런 뫼르소의 면모에 관해 카뮈는 영적인 신화라 말하기도 했다.

난 사회 교육 절차에 따라 규범을 배우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습득했다. 하지만 내 삶에서 깨달음이라는 말은 수동적인 지시에 불과하다. 그냥 넋 놓고 믿어버리기엔 미심쩍은 구석이 흥건하다. ‘왜’라는 질문보다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느라 의미를 잊고 살았다. 뫼르소는 죽음에 이를 때까지 세상 잣대에 대항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머리를 조아리지 않았다. 신이 영생이라는 달콤한 구원을 건넸지만, 콧방귀를 뀌고 죽음을 택했다. 그는 외로웠지만 비굴하지 않았고 목이 말랐지만 구걸하지 않았다. 그는 새벽녘에 감옥 안에서 신의 구원을 바란다. 당신은 왜 나를 이렇게 여기 홀로 남겨뒀나요? <이방인>은 홀로 남겨진 남자에 관한 이야기이자, 고독하게 삶의 의미를 찾아내려는 기도문을 들린다.

 

Writer

영화산문집 <우리 각자 1인분의 시간> 저자. 영화와 책, 그리고 예술 전반에 대한 글을 쓴다. 염세주의자가 되고 싶으나 하루 세끼 먹을 때마다 행복하다.
박민진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