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작년 칸 영화제에서 <기생충>과 쟁쟁하게 맞선 걸작으로 당시 각본상을 받은 이 작품은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와 결혼을 앞둔 귀족의 사랑을 섬세하게 그렸다. 영화에서 초상화 속 주인공인 귀족 '엘로이즈'를 연기한 아델 에넬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로, 지난해 영화감독 크리스토프 뤼지아가 저지른 성추행 사건을 용감하게 폭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국내에서 개봉했던 대표작과 함께 아델 에넬의 다양한 면모를 알아보자.

* 아래 본문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셀린 시아마 감독이 연출한 영화로 72회 칸국제영화제 각본상과 퀴어종려상을 받았다. 2월 28일에 열릴 프랑스 최고 권위 영화상인 45회 세자르 영화제에서는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등 총 10개 부문 후보로 지명됐다. 전작 <워터 릴리즈>, <톰보이>, <걸후드>에서 알 수 있듯이 다양한 여성들의 성장기를 그려온 시아마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18세기 여성 퀴어들의 사랑과 감정을 다뤘다. 그는 "분명히 존재했지만, 역사 속에서 존재가 지워진 여성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자 했으며, 이 영화를 "삶의 길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다른 길을 택한 여성들의 용기, 사랑에 바치는 영화"라고 밝혔다.

1989년에 태어난 아델 에넬은 부모님이 어렸을 때부터 보낸 연극 수업에서 연기를 시작했다. 그가 자란 프랑스 몽트레유는 다양한 국적의 예술가들이 밀집한 곳이다. 10대라는 이른 나이에 데뷔했으며 일찍이 세자르 영화제에서 두 번이나 연기상을 수상할 만큼 탄탄한 실력을 갖췄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이번 영화제에서도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시아마 감독과는 <워터 릴리즈>에서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으며, 오랜 연인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기에 찬 표정으로 포즈를 취하고, 내내 자신의 정념을 탐미했던 엘로이즈처럼 영화 밖에서 만나는 아델 에넬 또한 그 모습이 단단하다. 웃음을 쉬이 내주지 않고 정면을 당당히 응시하는 그의 눈빛은 깊게 뿌리 내린 나무처럼 흔들림 없다.

 

<120BPM>

로빈 캉필로가 연출한 <120BPM>은 1989년 파리를 배경으로 성 소수자들의 투쟁을 그린 영화다. 개봉 당시 황금종려상 수상 후보에 올랐으며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아델 에넬은 영화에서 성소수자 사회단체인 '액트업파리'의 주요 일원인 '소피' 역을 맡았다. 최근 아델 에넬이 프랑스에서 열린 '여성 폭력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한 모습과 영화 속에서 소피가 사회 활동가로서 시위 현장을 누볐던 장면이 자연스레 겹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수자 인권을 위해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소피처럼 아델 에넬 또한 평소 사회 구조가 작동하는 방식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바칼로레아(프랑스 대입시험)를 통과한 후 경제학과 사회학을 수학한 아델 에넬은 Fast Life 인터뷰에서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 저작 <남성지배>를 좋아한다고 밝힌 바 있는데, 에넬이 언급한 이 책은 '남성 지배'로 인한 정치적인 난제와 지배에 관한 논쟁을 다룬 책으로 유명하다.

 

<언노운 걸>

리얼리즘 영화의 대가이자 <더 차일드>, <로제타> 등을 연출한 다르덴 형제 감독의 작품으로, 의도치 않게 신원 미상 소녀의 죽음에 얽히게 된 의사 '제니'가 죄책감에 뒤덮여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는 이야기다. 영화는 오롯이 주인공 제니의 일상과 행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아델 에넬이 성실하고 인간적인 의사 제니를 연기했다. 영화에서 능숙하게 환자를 치료하고 진단하는 연기는 그가 촬영 전까지 의료 기술과 지식 공부에 매진한 결과다.

다르덴 형제 감독은 현실에 있을 법한, 사실적인 영화 장면을 구현하기 위해 주로 무명 배우를 캐스팅한다. 따라서 얼굴이 잘 알려진 배우가 다르덴 형제와 함께 영화 작업을 하기란 드문 일이다. 그런데도 아델 에넬은 다르덴 형제 영화에서 주인공을 연기한 몇 안 되는 프랑스 배우로, <내일을 위한 시간>에서 열연한 마리옹 꼬띠아르 이후 두 번째다. 다르덴 형제는 사석에서 아델 에넬을 만난 후 그를 캐스팅했으며 아델 에넬 연령대에 맞춰 제니 나이를 수정했다.

 

Writer

망원동에서 사온 김치만두, 아래서 올려다본 나무, 깔깔대는 웃음, 속으로 삼키는 울음, 야한 농담, 신기방기 일화, 사람 냄새 나는 영화, 땀내 나는 연극, 종이 아깝지 않은 책,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를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