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으로 환상을 자아내는 존재들을 떠올려 본다. 인어와 요정, 거인과 마녀. 신비로워 현실과 더욱 멀게 느껴지는 이들은 키티 크라우더가 쓰고 그린 이야기 속에서 한결 친근하고 다정해진다. 밤하늘의 오로라처럼 매혹적인 모습으로.


아무도 그 아이가 난청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저 말이 조금 늦되다 여겼을 뿐. 소리가 부재한 세계는 늘 물음표였다. 무언가를 겪고도 한 발짝 지나서야 비로소 이해하는 곳.
질문의 존재조차 몰라 답을 건네줄 수 없었던 어른들 틈에서 아이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은 것들을 배웠다. 물음표를 바짝 세워 부지런히 주변을 더듬고 그렇게 살핀 것들로 빈자리를 메우는 법을. 그렇게 여섯 해가 지나고 뒤늦게 소리와 만났을 때, 수평이 맞지 않던 감각이 마침내 나란해졌을 때 아이는 깨달았다. 눈에 보이는 것이 언제나 진실은 아니었음을.



벨기에의 그림책 작가 키티 크라우더(Kitty Crowther)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쓰고 그린다. 깊은 호수 속에는 순한 거인이 웅크리고 있고, 달이 뜨는 밤이면 숲 속을 돌아다니는 수호신이 곧 찾아올 잠을 알리는 곳. 오래 된 전설 속 이야기처럼 뭐라고 불러야 할지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곳.



이 신비로운 곳은 키티 크라우더가 살아온 세계의 연장선이다. 그의 부모는 각각 영국과 스웨덴 출신, 인어와 요정들이 사람들 틈에 섞여 살고 수풀을 흔드는 바람에도 마법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이들이었다. 덕분에 키티 크라우더는 집안 어딘가에 숨어있을 꼬마 유령을 위해 음식을 조금씩 남겨두는 집에서 자랐다. 남들이 듣는 것을 듣지 못했던 아이는 그렇게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법을 배웠다.



상상 속 존재들이 등장하는 오래된 이야기들은 밤하늘의 오로라를 닮았다. 오묘한 빛깔로 파도치다가 홀린 듯 다가서면 너울너울 멀어지는 것. 아무리 애써도 결코 닿을 수 없는 것.
키티 크라우더의 세계 역시 오로라를 닮았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는 듯, 신비로운 일들이 당연하게 벌어지니까. 하지만 이곳에서는 아무도 멀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에게 손을 내밀고 고립되어 있던 이들을 곁으로 세상으로 불러들인다. 낯선 존재들이 수줍게 우리 곁에 내려앉을 때, 머나먼 곳 같던 이 세계도 우리에게로 스며들어온다.



시간을 초월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는 키티 크라우더.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어제와 내일을 이어주는 것들로 가득하다. 구름이 흐르는 하늘, 단단한 땅, 거기에서 나고 자라는 모든 것들. 그래서 이곳은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먼 옛날부터 전해져 왔고 오늘의 우리에게서 먼 훗날로 이어질 이야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