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능력은 어디까지인가. 그 답을 생각하며 역사 속 수많은 천재들과 인간이 이뤄온 업적을 떠올린다. 그리곤 괜한 ‘인간부심’을 부려본다. 하지만 그런 우리에게 AI가 대답한다. 인간의 능력은 고작 여기까지라고. 번역, 운전을 넘어 바둑, 그리고 창작까지. 인간이랍시고 마냥 자신만만해하기에는 AI의 활약이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을 던져본다. AI의 능력은 어디까지인가.

여기, 창작의 영역을 넘보는 AI들이 있다. 시와 소설을 쓰고, 영화를 만들고, 광고를 만드는 AI들. 그들을 마냥 두려워해야 할지 아니면 아직은 인간으로서 희망을 품어도 될지 AI가 창작한 결과물을 통해 그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쓴 문학

2016년 3월,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주최하는 호시 신이치 SF 문학상 공모전에서 한 소설이 1차 예심을 통과했다. 제목은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 A4용지 3페이지 분량의 짧은 단편소설이었다. 특이할 것 없어 보이는 이 소설은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다. 이유는 하나. 사람이 아닌 AI가 쓴 최초의 소설이었기 때문이었다. 무려 AI가 쓴 소설이 1,450편의 인간이 쓴 소설들 사이에서 1차 심사를 당당히 통과 한 것이다. 심사위원들을 감쪽같이 속이고서 말이다. 공립 하코다테 미래대학의 마쓰바라 히토시 교수팀이 4년간 공을 들여 이뤄낸 성과였다.

공립 하코다테 미래대학의 마쓰바라 히토시 교수, 이미지 출처 링크

심지어 소설의 주인공도 AI. 게다가 일인칭 소설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쓰지 않으면 일본 AI의 명성이 꺾인다. 전광석화처럼 생각하고 나는 읽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스토리를 만들기로 했다. 내가 처음 경험하는 즐거움에 몸부림치며 열중해 써내려갔다. 컴퓨터가 소설을 쓴 날. 컴퓨터는 자신의 재미 추구를 우선하고, 인간에 봉사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같은 구절은 실제 AI의 생각을 전해들은 것만 같아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인공지능 ’샤오빙’이 쓴 시집 ’햇살은 유리창을 뚫고’, 이미지 출처 링크

소설뿐만이 아니다. 2017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중국에서 선보인 '샤오빙(小氷)’이라는 AI가 중국어 시집을 발간했다. 시집의 제목은 ‘햇살은 유리창을 뚫고’. 시집 제목도 샤오빙이 직접 지었단다. 샤오빙은 1920년 이후 시인 519명의 작품 수천 편을 100시간 동안 학습해 1만 여 편의 시를 썼다. 인간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학습속도다. 이 시집에는 그 중 139편이 실렸는데 고독, 기대, 기쁨 등의 감정을 토대로 10개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비가 해풍을 건너와 드문드문 내린다’, ‘태양이 서쪽으로 떠나면 나는 버림받는다’ 등의 나름 신선한 시구들을 보면 얼핏 샤오빙이 시인에 근접했다는 생각도 든다.

AI가 소설도 쓰고 시도 쓰는 세상. 아마 많은 사람이 놀라움과 함께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바둑도 이길 수 있다더니 이제는 문학까지. 인간만이 할 수 있을 줄 알았던 영역까지AI에게 내어주어야 하는 건가. 하면서…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 같은 경우만 해도 사실상 인공지능이 자신의 힘으로 소설을 전부 완성했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마쓰바라 교수도 “인간이 80%, 컴퓨터가 20% 정도의 일을 한 것”이라 했을 정도니까. 사실 연구팀이 소설의 기본 흐름과 내용에 맞춰 주어와 목적어를 일일이 프로그램에 입력해놓았단다. 샤오빙이 쓴 시 또한 마찬가지다. 화제를 모았던 것에 비하면 어떤 표현들은 AI가 썼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어색하다. 다행이다. 소설은, 시는 인간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아직은.

 

인공지능이 만든 영화

세계최초 인공지능이 각본을 쓴 영화 <선스프링(Sunspring)>

2016년 4월 영국의 SF영화제 Sci-Fi London film festival에 ‘벤자민’이라는 신인 시나리오 작가가 한 명이 등장한다. 이 신인작가가 엄청난 화제를 몰고온 건 작품이 뛰어나서도 아니요, 이력이 특이해서도 아니었다.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영화감독 오스카 샤프와 AI 전문가 로스 굿윈은 함께 영화를 만들기로 한다. 다름 아닌 AI가 쓴 대본으로. 그렇게 만들어진 벤자민은 일종의 머신러닝 기법인 엘에스티엠(LSTM, 인공신경망)방식을 이용해 <고스트 버스터즈>, <마이너리티리포트>, <스타워즈> 같은 SF영화 수십 편을 학습한다. 그리고 이렇게 학습한 것을 바탕으로 9분짜리 단편영화 <선스프링(Sunspring)>의 대본을 쓴다. 대사뿐만이 아니었다. 벤자민은 무대 지시까지도 써내려간다. 그렇게 완성한 대본의 내용은 우주정거장에서 벌어지는 삼각관계 이야기. 하지만 평가는 그닥 좋지 않았다.

책을 두뇌로 스캔하는 등의 장면은 SF영화이니 그렇다 치는데 아무 맥락없이 입에서 눈알처럼 생긴 구슬을 뱉는다거나 ‘그는 별들 위에 서 있어. 그리고 바닥에 앉았지(He is standing in the stars and sitting on the floor)’와 같은 어떻게 구현할지 알 수 없는 무대 지시나 “나는 100살이 된 것으로 간주된다”와 같은 대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우리가 인간이라 AI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건가 싶을 정도다. 이렇듯 개연성 없는 AI의 작품을 보고 어떤 사람은 “그들이 다시는 이런 짓(AI를 이용한 영화제작)을 하지 않는다고 약속한다면 이 작품에 최고점을 주겠다”같은 혹평을 하기도 했다.

인공지능 벤자민의 두번째 작품 <It’s no game>

하지만 이런 혹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스카 샤프 감독과 로스 굿윈은 벤자민과 함께 두번째 작품을 만든다. 하지만 첫번째 작품 ‘선스프링’처럼 혹평을 받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이번에는 벤자민에게 시나리오 전체가 아닌 자막 파일만 학습시킨다. <선스프링>에서 나타났던 이상한 무대지시 같은 시행착오를 다시 겪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이번에는 오스카 샤프 감독이 벤자민의 작업에 조금 더 개입한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이 <It’s no game>. 파업한 시나리오 작가들을 대신해 벤자민이라는 이름의 ‘AI’가 시나리오 작가 역할을 맡게 될지도 모른다는 내용의 7분짜리 단편영화다. 이 영화 또한 영국의 SF영화제 Sci-Fi London film festival ‘48시간 만에 영화만들기’ 부문에 출품됐다. <전격z작전>과 <베이워치>로 유명한 데비드 핫셀호프가 ‘호프봇’으로 등장하는데 전작인 <선스프링>에 비해서는 많이 탄탄해진 시나리오를 뽐낸다. 인간이 그러하듯이 AI도 이렇게 한 작품씩 완성해나갈 때마다 조금씩 성장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It’s no game> 촬영장면, 이미지 출처 링크
Ross Goodwin & Oscar Sharp TED 강연 'Machines Making Movies'

 

인공지능이 만든 광고

AI가 인간을 이기는 세상. 일본의 한 광고회사는 생각했다. 바둑이 아닌 광고는 어떨까? 광고를 만드는 건 AI가 인간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까? 그래서 시작한 프로젝트가 바로 ‘광고 국민투표 인간 대 인공지능’. 인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만든 광고와 인공지능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일명 AI-CD)가 만든 광고 중 어느 광고가 더 좋은지 홈페이지에서 투표를 받아보기로 한 것이다. 어느 광고를 AI가 만든 것인지는 투표가 끝나고 밝히기로 하고서 말이다.

A.I. vs. Human Creative Battle

제품은 클로렛츠 민트껌. 메시지는 ‘입안을 상큼하게 10분 더 오래간다’. 인간 대표로는 일본의 쿠라모토 미츠루 CD가 참여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다행히도 인간 CD의 승. 역시 광고는 바둑과 달리 AI가 감히 넘보지 못하는 분야인 건가 싶지만 54% 대 46%라는 투표결과를 보면 두려움이 엄습한다. 이 정도 차이라면 AI가 승리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예감 때문이다. 실제로 광고를 보면 어느 광고가 AI가 만든 것인지 확실하게 구별해내기도 쉽지 않다. 영화나 소설은 몰라도 광고는 AI에게 따라잡힐 날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만 같다.

AI가 만든 클로렛츠 민트껌 광고

AI-CD뿐만이 아니다. 일본에는 광고카피를 쓰는 AI도 있다. 이름은 AICO. AI Copy writer의 준말이다. 중의적으로 귀여운 여자라는 의미도 된단다. 손에 연필을 들고 있는 귀여운 캐릭터도 만들고, ‘문과계 여자이며 우뇌형. 소설이나 만화, 드라마를 좋아한다’고 캐릭터 소개도 덧붙였다. 어쩐지 친근한 느낌이 든다.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만 빼면.

덴츠 8월호 사보에 소개된 인공지능 ‘aico’, 이미지 출처 링크

AICO가 처음 쓴 카피는 ‘신문광고의 날’을 맞이하여 후지산케이 비즈니스 아이에 실린 전면광고 카피. 해석해보면 ‘신문광고의 섹시가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다. 어쩐지 인간이 쓴 카피보다 별로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 광고카피는 촉박한 일정 속에 급히 나온 것이라고 하니 이 카피가 AICO의 본 실력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든다. AI-CD 뿐만 아니라 AICO도 만만치 않은 상대가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AICO가 만든 광고카피로 일본 신문광고의 날(2017년 10월20일)에 실린 광고, 이미지 출처 링크

 

Writer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카피 쓴다는 핑계로 각종 드라마, 영화, 책에 마음을, 시간을 더 쓰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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