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아무리 변했다지만 사랑의 감성도 그러할까? 다소 덜 무더웠던 올여름, 스트리밍 서비스의 실시간 차트에 발라드 노래가 가득 상위권에 올랐다. 절절한 사랑 노래를 담은 벤의 '헤어져줘서 고마워’, 노련한 두 가수 장혜진과 윤민수의 ‘술이 문제야’, 김나영의 ‘솔직하게 말해서 나’ 등이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혹자는 이런 흐름을 보고 ‘발라드 전성시대’의 귀환이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유튜브에서 1990~2000년대까지 익히 들어봤을 법한 발라드 명곡을 검색해보자. 10여 년 전 게시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옛 노래를 찾아 들으며 짝사랑, 연애 경험담을 풀어놓은 댓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방학 동안 따가운 태양만큼이나 누군가를 뜨겁게 짝사랑했던 있는 이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여전히 들어도 좋은 2000년대 발라드 음악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나윤권 '나였으면'

나윤권 <중독>

2004년에 발매된 나윤권 1집 <중독> 앨범에 제일 마지막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사랑하는 상대편의 연인이 다른 사람이 아닌 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화자의 심정을 표현한 곡이다. 김광석의 '사랑이라는 이유로', 김건모 '첫인상', 변진섭의 '그대 내게 다시', 신승훈 'I Believe' 등 시간이 지나도 오랫동안 기억되는 명곡들을 작업한 김형석이 작곡했다. 당시 차태현과 성유리가 출연한 드라마 <황태자의 첫사랑> OST에 수록되면서 대중의 귀에 익숙해졌다. 최근 나윤권은 한 방송에서 '나였으면'으로 활동했을 당시 모태솔로였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덧붙여 드라마 OST를 급하게 넘겨야 했기 때문에 40분 만에 곡을 녹음했다고 밝혔다. 이 노래는 이후 큰 사랑을 받으며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짝사랑 전용' 곡으로 뭇 사람들로부터 종종 소환되고 있다.

“기다림이 잊혀짐보다 쉽다는 걸 슬프게도 잘 알고 있죠”

10년 전 유튜브에 올라온 나윤권의 '나였으면' 음원은 현재 1,400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무슨 통곡의 벽이야, 댓글들이 왜 이래”라고 지나가던 네티즌이 한마디 던진 것처럼 '나였으면' 유튜브 게시글 아래 댓글은 그야말로 사랑 고백의 장이다. 길게는 1년, 짧게는 한 달 간격으로 짝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는 누군가의 추억이 꾸준히 올라온다. 차곡차곡 쌓인 그 그리움들은 어느덧 1,600여 개의 댓글 사연으로 기록됐다. 비단 온라인에서만 이러할까? 2014년 나윤권은 서울 대학로에서 깜짝 게릴라 콘서트를 열었는데 100명이 넘는 시민들이 나윤권과 함께 '나였으면' 떼창을 하며 장관을 이뤘다고 한다.

'나였으면' 유튜브 영상  댓글

 

태연 '들리나요'

<베토벤 바이러스> OST

2018년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모바일 서비스 이용자의 43%가 유튜브로 음악을 듣는다고 답했다. 멜론으로 음악을 듣는 이용자는 28%에 그쳤다. 이처럼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사거나 실시간 음원 차트에 있는 음악들을 주로 소비했던 예전과 달리 SNS나 유튜브 등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러면서 아이돌 음악에 국한하지 않고 자신의&nbsp 취향을 드러내는 음악, 오랫동안 들었던 나만의 '띵곡'을 공유하는 이들도 증가했다. 특히 유튜브에서는 실력이나 인기를 겸비한 가수의 노래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부르는 '커버'가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이 사랑은 멈추지 않네요”

정통 발라드는 가수를 꿈꾸는 연습생뿐만 아니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겨 커버하는 장르 중 하나다. 무엇보다 화려한 기교 없이 담백하게 부르는 태연의 발라드곡은 한결같이 많은 이들의 애창곡이었다.

2007년 대한민국 대표 아이돌 그룹 ‘소녀시대’로 데뷔한 태연은 2008년, 드라마 <쾌도 홍길동> OST '만약에'를 부르며 솔로로 두각을 나타냈다. “2018년에도 듣는 사람?” “2019년에서 시간여행 왔어요” 같은 유튜브 반응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곡도 '들리나요' 못지않게 10년 넘게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당시 태연은 “데뷔 후 처음으로 생각대로 부른 곡”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태연은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OST '들리나요'로 연이어 실력과 대중성을 인정받는다. 2009년 피겨 여왕 김연아는 태연과 함께 '들리나요'를 열창한 바가 있다. 감성적인 멜로디를 속삭이듯 맑게 표현하는 태연의 발성이 한국 발라드의 또 다른 표준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안주하지 않는다. 현재 태연은 발라드뿐만 아니라 트로피컬 하우스, 솔재즈, 힙합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의 음악적 색깔을 넓혀 가고 있다.

'들리나요' 유튜브 영상 댓글

 

윤하 '기다리다'

윤하 <Audition>

2004년 일본에서 17살 나이에 데뷔한 이후 2006년 국내에서 윤하는 '비밀번호 486' '혜성' '오늘 헤어졌어요' 등의 히트곡을 낸다. 이중 '기다리다'는 윤하의 데뷔 앨범에 수록된 곡이자 첫 자작곡으로 앨범 타이틀 곡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윤하 역시 15년 동안 활동하면서 내놓은 곡 중에 '기다리다'를 가장 좋아한다고 밝혔다. 윤하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아직도 대학교 축제를 가면 학생들이 '기다리다' 노래를 요청한다”며 “발매 당시 큰 홍보 없이도 싸이월드 UCC 콘텐츠에서 자주 이 노래가 나와 인기를 끌었다”고 전했다.

“그립다고 천번쯤 말해보면 닿을까요”

이후 2006년 시작한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 삽입되면서 스테디셀러 발라드 곡으로 인지도를 이어나간다. 태연의 발라드곡뿐만 아니라 윤하의 '기다리다'는 소녀시대의 태연, 걸스데이 혜리 등 가수뿐만 아니라 노래를 좋아하는 이들의 대표적인 커버곡이다. 2015년에는 아이유가 드라마 <프로듀사>에서 <기다리다>를 커버하면서 음원차트 역주행을 하기도 했다. “'기다리다'가 많은 사람들에게 추억을 안겨드린 거 같아서 소중한 곡이다”라고 윤하가 말했듯 유튜브 '기다리다' 음원 게시글은 1,500만 조회 수를 달성했다. 아울러 댓글은 2,034개에 달한다. 주기적으로 이 노래를 찾아 지나간 사랑을, 현재의 사랑을 추억하는 사람들에게 어느 네티즌이 위로를 건넨다. “오글거리는건 나쁜 게 아니에요. 오히려 자기 감정에 충실하고 표현을 잘 한다는 건 좋은 능력이죠. 모두들 각자의 사랑을 응원할께요!”

 

Writer

망원동에서 사온 김치만두, 아래서 올려다본 나무, 깔깔대는 웃음, 속으로 삼키는 울음, 야한 농담, 신기방기 일화, 사람 냄새 나는 영화, 땀내 나는 연극, 종이 아깝지 않은 책,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를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