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개관한 서소문 성지역사박물관. 박물관이 위치한 서울역과 충정로 사이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 성지는 한국 가톨릭교 사상 가장 많은 순교자가 나온 역사적, 종교적 장소다. 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인박해를 거치며 수많은 신자가 이곳에서 순교했다. 개관 당시 서소문 성지역사박물관은 “지하 공간의 빛과 동선을 이용한 공간표현과 완성도가 매우 우수하다”는 평과 함께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을 받았다. 역사와 문화, 디자인이 살아 숨 쉬는 서소문 성지역사박물관의 여러 공간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이미지 출처 - 서소문 성지역사박물관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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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여간 공사장 천막에 둘러싸여 있던 이 공간은 지상에는 시민을 위한 역사공원과 지하에는 전시장과 박물관, 예배당이 결합된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공간 설계를 위해 2014년 국제현상설계 공모가 열렸고 당시 296팀이 응모해 최종으로 인터커드ㆍ보이드아키텍트ㆍ레스건축 세 건축소의 컨소시엄 ‘인시티 인그레이빙 더 파크(EN-CITY_ENGRAVING the PARK)’ 디자인이 당선됐다. ‘인그레이빙(engraving)’이란 판화에서 단단하고 평평한 표면에 모양을 새기는 기법으로 “공원으로 조성된 부지 위에 판화처럼 주요 공간을 조각도로 판 듯이 땅속에 새겨(en-) 넣겠다”는 의미다. 방문객이 마치 순례길을 걷듯 박물관을 관람할 수 있도록 동선을 짰다.

 

위로의 공간, 콘솔레이션홀

이미지 출처 -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인스타그램

7,400여 평의 박물관 전체 중 지하 3층 자리한 콘솔레이션홀은 정사각형 형태의 커다란 큐브로 둘러싸인 공간이다. 서소문 성지역사박물관의 심장과도 같다. 사방에는 천주교 박해의 역사와 자연 현상이 담긴 거대한 화면이 허공에 떠 있다. 은은한 조명 아래 홀에는 모차르트 '레퀴엠'이 흘러나온다. 신비로우면서도 성스러운 분위기의 이곳은 실제 천주교 순교 성자들의 유해가 담겨 있는 무덤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콘솔레이션 홀은 종교 박해로 인해 “처형당하고 죽음을 맞이한 이들을 위무하고 이 땅에 더이상 죽임의 문화가 아닌 생명의 문화가 정착되길 기원하는 공간”으로 기획되었다.

 

판화로 새긴 듯한 하늘광장

콘솔레이션홀 맞은편에 위치한 '하늘광장'에는 '서 있는 사람들' 작품이 자리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철도 침목을 중요한 재료로 삼아 인간의 기본 형상을 표현한 정현 작가의 작품으로 총 44점의 형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이곳에서 참수당한 44명의 순교자에 대한 헌사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미지 출처 - 서소문 성지역사박물관 인스타그램

'하늘'광장이라는 이름처럼 광장에 서서 고개를 들면 도심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탁 트인 하늘을 조우할 수 있다. 하늘을 바라보며 사상과 종교의 자유를 외치며 희생당한 사람들을 기리고 추념할 수 있도록 기획한 곳이다. 또한 하늘광장을 포함한 서소문 성지역사박물관 전체는 직선과 곡선, 사각형과 원형의 조화가 돋보이는데 특히 따뜻한 붉은 벽돌과 모던한 콘크리트 소재로 뼈대를 구성했다. 따라서 박물관이 담고 있는 조선 후기 박해의 역사를 이성과 동시에 감성으로 느낄 수 있다.

 

숨은 예수 찾기, 서소문역사공원

과거 일제강점기에는 과일 시장이었으며 1973년부터 지역주민을 위한 공원으로 사용된 서소문 공원이 역사공원으로 재탄생했다. 실제 공원이 있던 장소는 조선시대 유명한 사형지였다고 한다. 2011년에 시작된 서울중구청과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합작으로 서소문 역사공원이 조성됐다. 이곳에서 45종의 나무와 33종의 풀꽃뿐만 아니라 곳곳에 세워진 동상을 감상할 수 있다.

© Timothy P. Schmalz

1984년 세워진 순교자 현양탑이 눈길을 사로잡지만,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공원 구석에서 만날 수 있는 티모시 쉬말츠 조각가의 '노숙자 예수상'이다. 티모시 쉬말츠는 캐나다 출신으로 2011년 마태오복음 25장에서 영감을 받아 낡은 담요 한 장으로 온몸을 감싼 노숙자의 모습을 조각했다. 해당 작품은 지난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청동 조각상을 축복하고 몇 분 동안 기도를 바치면서 유명해졌다. 이러한 사연을 가진 ‘노숙자 예수상’을 서소문 역사공원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

티모시는 이 작품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사람들이 거리를 지나가다가 이 조각을 보고 그저 또 한 사람의 노숙자가 웅크리고 있구나 하겠지요. 하지만 다음 순간 그들은 그가 바로 예수님이신 것을 알게 될 겁니다. 그때 사람들은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될 것입니다.”

 

Writer

망원동에서 사온 김치만두, 아래서 올려다본 나무, 깔깔대는 웃음, 속으로 삼키는 울음, 야한 농담, 신기방기 일화, 사람 냄새 나는 영화, 땀내 나는 연극, 종이 아깝지 않은 책,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를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