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열하는 여름의 온도가 두려우면서도 반가운 이유는 계절과 동반해 연상되는 키워드 때문일 것이다. 젊음, 청량감, 녹음 등 꿉꿉함과 더위 같은 현실적인 요소와는 사뭇 대비되는 잔상이다(여름을 배경으로 한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여름이 하나의 클리셰로 자리 잡은 것처럼). 태양이 우리의 정수리를 데우기 전에, 하루빨리 물속으로 몸을 던지고 싶다면 주목. 여름의 설렘을 가중하는 사진가 3인을 소개한다. 

 

Maria Svarbova

디뮤지엄에서 진행한 전시회 <Weather: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떠한가요?>를 통해 한국에서 명성을 얻은 슬로바키아 출신 사진작가 마리아 스바르보바(Maria Svarbova). 고고학을 전공했으며 사진에 별다른 꿈이 없던 그는 동생이 선물한 카메라로 인해 남다른 작품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렌즈에 담으면서 빠르게 기술을 습득한 마리아. 독창적인 색감을 작품에 녹여냄으로써 천천히 팬층을 넓혀 나갔다. 2014년부터 스위밍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이후 마리아의 아트웍 중 가장 유명한 <In the Swimming Pool>을 선보인다. 빛바랜 파스텔 수영장, 마네킹처럼 표정이 없는 피사체, 물의 온도가 느껴지는 듯한 색채. 시종일관 묘한 서늘함을 간직한 그의 사진은 차갑다기보다 시원하게 느껴진다.

마리아는 1930년대 지어진 슬로바키아의 수영장을 배경으로 촬영을 진행했다. 사진을 감싸는 따뜻한 채도에도 불구하고 마냥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마리아가 작품에 심어 놓은 다소 딱딱한 오브제 때문이다. 군더더기 없는 균형감, 결벽에 가까운 화이트 타일 위로 경직된 모델과 원색의 복고풍 수영복 등. 이러한 연출은 그가 유년 시절을 보낸 체코 슬로바키아의 공산주의 환경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수영이 스포츠이기 이전에 사회적 의무였던 시절, 운동을 위해 설계됐지만 행동을 재단하는 경고문과 같은 모순적 경계를 담고 싶었다고 한다. 생경함과 익숙함 그 어느 지점을 건드는 그의 사진 속 차분한 물과 수영장 타일에 얼룩진 빛은 여름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국내에서는 처음 열리는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개인전이 5월 31일부터 6월 30일까지 롯데갤러리 잠실점에서 진행된다.

마리아 스바르보바 홈페이지
마리아 스바르보바 인스타그램

 

Gray Malin

미국 출신 아티스트 그레이 말린(Gray Malin)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다를 포착하는 사진작가다. 2017년 발매한 사진집 <BEACHES>로 국내에서도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며, 전 세계를 여행하며 바다를 촬영해 ‘바다 사진가’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BEACHES>에 담긴 작품이자 그레이 말린의 대표적인 시리즈 <À la Plage>에 주목해보자. 프로젝트를 진행할 당시 그는 케이프타운에서 시드니까지 20개 이상의 해변의 상공에서 카메라를 들었으며, 촬영 시 헬기의 도어를 열어둔 채로 시간당 100마일 속도를 견뎌야 했다고 한다. 백사장 위 빼곡히 즐비한 형형색색의 파라솔, 수채화 같은 바다의 모습을 보고 있다 보면 모래를 스치는 파도 소리와 왁자지껄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겹쳐 들리는 듯하다. 새의 눈으로 해변을 바라볼 수 있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그가 하늘에서 사진을 찍게 된 계기는 아주 단순하고, 즉흥적이다. 2011년 라스베가스 여행 중 고층 호텔에서 내려다본 해변이 매우 아름다웠고, 그 광경을 카메라에 담아 자신의 데스크톱 슬립 화면으로 설정해뒀다고 한다. 이후 하늘에서 해변의 모습을 담아야겠다는 플랜을 세워 본격적인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사진 속 풍경은 마냥 평화로워 보이지만 말린의 촬영은 순탄치 않았다. 헬기의 문을 열고 몸을 기울이는 동작만으로 위험천만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고, 준비한 헬기가 뜨지 못해 다른 대안을 찾기도 해야 했다. 하늘에서 전혀 다른 세상을 발견한 말린은 촬영 당시를 회상하며 “당신이 어디에서 왔던지, 어떤 언어로 말을 하던지, 해변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목적을 제공한다“, “그곳은 저마다의 작은 행복과 자유를 찾기 위해 가는 곳이다”라고 정의했다.

그레이 말린 홈페이지
그레이 말린 인스타그램

 

Yoshigo

스페인 출신 사진작가이자 그래픽 디자이너 ‘Yosigo’는 지금 당장 뜨겁게 떠오르고 있는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그의 작품 중 <Kresala>, <Animal Turista> 시리즈는 바다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사진들로 구성되어 있다. 파라솔, 블랭킷, 부표, 튜브, 수영, 모래사장, 붐비는 해변 등 요시고의 사진 속 부드러운 파스텔 톤 피사체는 마치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을 이어붙인 것만 같다. 해당 시리즈의 사진에서는 관찰자의 애정을 느낄 수 있는데, 특히 바다는 요시고에게 큰 의미를 갖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요시고는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에서 바다와 함께 자랐으며, 자연스레 바다가 삶의 중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지평선을 보면 집이 아니더라도 집에 있는 것만 같다”며 바다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과시하기도 했다.

요시고는 작품에 그래픽 디자인 요소를 접목시켜 독특한 방식으로 색조를 구현했으며 색다른 시각에서 이야기를 전달한다. 단정히 정돈된 프레임 속 피사체들은 하나같이 한가롭고 차분하다. 디지털로 이뤄낼 수 없는 아날로그 카메라 특유의 색감이 무게를 더하기까지. 요시고의 작품 중 유독 평범한 일상을 소재로 한 사진이 많은 이유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 미국 스냅 사진 거장 스테판 쇼어(Stephen shore)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지극히 일상적인 순간 속 낭만을 포착하는 그의 사진은 여름에 대한 로망을 불러일으키기 더할 나위 없다.

요시고 홈페이지
요시고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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