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드리운 도시에 반야심경 독경이 울려퍼지고, 불이 하나둘 꺼지며 정체불명의 검은 비행 구름이 지상에 내려앉는다. 긴장을 더하는 일본 전통 타악에 맞춰 가부좌를 튼 채 요상한 손짓으로 경을 읊던 승려는 재가 되어 사라진다. 그리고 이내 DJ의 스크래치와 현란한 관현악 반주와 함께 불교 속 번뇌의 상징들이 하나둘 등장한다.

일본을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 시이나 링고(椎名林檎)는 자타가 공인하는 파격과 카리스마의 아이콘이다. 오랜 활동 경력에도 불구하고, 매번 새로운 음악에 도전하고 그 속에 심오한 주제들과 변화무쌍한 비주얼 콘셉트를 담아내는 등 넘치는 창의성과 정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런 그가 2019년, 만 40세 불혹과 함께 데뷔 20주년을 맞이해 5년 만의 신작을 예고했다. 시이나 링고의 여섯 번째 정규앨범이 될 이번 앨범의 제목은 <삼독사(三毒史)>. 선공개곡인 '닭과 뱀과 돼지'에는 음악과 비주얼 모두 언제나 신선한 파격을 선사하는 그만의 감각이 잘 녹아 있다.

'닭과 뱀과 돼지(鶏と蛇と豚)' MV

'삼독사'는 불교에서 인간이 극복해야 마땅한 것으로 여기는 세 가지 대표적인 번뇌, 곧 '탐욕', '근심', '푸념'을 일컫는다. 이에 따르면 탐욕은 '식욕', 근심은 '노여움', 푸념은 '어리석음'이기도 하며, 각각을 상징하는 동물로 닭, 뱀, 돼지가 있다. '닭과 뱀과 돼지' 뮤직비디오 영상에는 세 가지 동물을 대표하는 캐릭터들이 하나둘 도시에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은 먼 발치서 자신들을 바라보던 시이나 링고 앞에 모여 무릎을 꿇는다.

영상 속 어반판타지풍 비주얼 콘셉트는 물론 이와 함께 적절하게 어우러진 음악도 인상적이지만, 이를 바탕으로 앨범에 담아낼 시이나 링고의 사회 비판적 메시지에도 귀가 기울여진다.

<무죄 모라토리엄(無罪モラトリアム)>(1999), <승소 스트립(勝訴ストリップ)>(2000), <시멘트, 정액, 밤꽃(加爾基 精液 栗ノ花)>(2003)이 팬들에 의해 초기 삼부작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시이나 링고는 10주년 이후 발표한 <싸구려 가십(三文ゴシップ)>(2009), <일출처(日出処)>(2014) 그리고 이번 앨범을 새로운 삼부작으로 구상했다고 한다. 그의 정규앨범 6장은 각각 2위, 3위에 올랐던 데뷔앨범, 최근 앨범을 제외하고 모두 오리콘 차트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삼독사>는 오는 27일 시이나 링고의 데뷔 기념일에 발매한다.

 

참고 시이나 링고 <삼독사> 라이너노트, 출처 - 유니버설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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