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Billboard 

일렉트로니카를 필두로 한 음악을 듣다 보면, 음가 없이 단어를 나열하는 기계적인 보컬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거칠고 성긴 멜로디에 자연스레 녹여낸 가창은 마치 ‘사람이 아닌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와는 정반대로 사람의 목소리를 데이터 처리한 프로그램을 통해 누구나 멜로디부터 보컬까지 만들 수 있는 ‘보컬로이드(VOCALOID)’는 오히려 가상의 캐릭터를 필두로 대중음악의 새로운 길을 열기까지 했다. 한동안 일본 서브컬처를 대표했던 인터넷 커뮤니티 니코니코 동화에서는 작곡 경험이 없는 누구나 보컬로이드 프로그램으로 곡을 만들어 영상을 공유했고, 유명 가상 캐릭터인 하츠네 미쿠를 필두로 한 음악은 비주류 문화의 한계를 뚫고 오리콘 차트의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굳이 노래를 부르지 않고 프로그램으로 멜로디를 입력해 보컬을 덧입히는, 아무런 제약 없는 환경은 많은 아마추어들의 창의성을 키웠다. 현재 일본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뮤지션 요네즈 켄시(米津玄師)도 10대 시절 당시 ‘하치(ハチ)’라는 예명의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다. 구미가 당기는 건 무조건 시도해보던 어린 시절의 그는 어느 제약도 없는 보컬로이드의 세계에서 직접 곡을 만들고, 일러스트를 그려 영상에 담아내며 크리에이터로서 기반을 다진 것이다. 어떤 연유로 자기 목소리가 들어간 음악을 하지 않던 그가 지금과 같이 정규 앨범 4장을 발매해 라이브 투어를 하는 밀리언셀러 뮤지션이 되었을까. 이번 글에서 그의 대표곡이 내포한, 리스너와의 공감대를 따라가본다.

출처 - Billboard 

 

대중음악을 향하여

발표하는 곡마다 감각은 뛰어났고, 그 재능은 무서웠다. 혼자 하는 것이 순수하게 재밌어서,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시작한 보컬로이드 활동은 그에게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이었지만 오히려 그는 이것이 자신의 창작 능력을 옥죄는 감옥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특히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자유로웠던 홈메이드의 쾌락을 잠식해버렸다. 결국 요네즈 켄시는 유년 시절부터 동경했던 영국 록 음악과 BUMP OF CHICKEN과 같은 밴드 사운드의 매력, 막연하게 꿈꿨던 정규 앨범 한 장의 달콤한 유혹에 이끌려 당당히 보컬로이드 세계를 박차고 나와 본명을 내걸고 제2의 음악 인생을 시작한다. 그렇게 발매한 1집 <diorama>(2012)는 하치 시절의 활동을 총결산하는 한편 록 넘버에 자신의 목소리를 덧입혀낸 앨범이다.

米津玄師 ‘アイネクライネ’

남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매사에 의심부터 하던 그가 이렇게 대중음악 세계에 발을 들인 이유는 단 하나, 창작 활동은 그에게 있어 생활이자 전부였기 때문이다. 작업물의 작사, 작곡, 편곡부터 일러스트, 영상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과 자신의 작품을 공유하고 새로이 완성하는 시스템을 받아들이기엔 큰 용기도 필요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이를 계기로 자신의 미흡한 점을 보완하고, 곡 스케치에서도 확실히 더 면밀하게 내러티브를 펼치는 능력을 갖추게 된 것으로 보인다.

뒤이어 발매한 트랙 ‘サンタマリア(산타마리아)’에서는 밴드 사운드에 좀 더 무게감을 싣고 더 나은 음악 활동을 향한 의지를 표명했으며, 표제곡을 두 개로 내걸었던 싱글 중 하나 ‘MAD HEAD LOVE’에서는 앞서 말한 인간관계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농익은 록 넘버로 완성해냈다. 수려한 일러스트로 구성한 뮤직비디오와 몽글몽글한 멜로디로 큰 사랑을 받아, 지금의 요네즈 켄시를 대표하는 곡 ‘アイネクライネ(아이네 클라이네, 상단 영상 참고)’에서는 충분히 왕도(王道)라고 부를 만한, 팝의 작법을 그대로 따라갔다. 더불어 무의식의 기저에서 꺼낸 스토리텔링은 많은 이의 공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 모든 곡을 담아낸 2집 <YANKEE>(2014) 이후로 그는 첫 라이브 스테이지 무대를 통해 본격적으로 대중과의 호흡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의 음악은 본격적으로 ‘보편성’을 추구하게 된다.

출처 - Spice 

 

자기 부정과 세상을 향한 도약

염세주의자. 요네즈 켄시 스스로 내면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고독하게 지낸 그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따가운 시선에 지쳐 그만 세상에 대한 불신도 커져버렸다. 하지만 여러 라이브 무대에서 관객과 호흡하고, 작품에 대한 리액션에 용기를 얻은 그는 이제는 대중과 ‘마주하는 음악’의 힘을 깨닫는다. 자신과 비슷한 경험으로 어려움을 겪는 리스너가 분명히 있음을 알고, 그들의 이야기를 대변하고 이를 넘어서 자신의 과거를 치유하기까지 한다.

米津玄師 ‘Flowerwall’

곡 ‘リビングデッド・ユース(리빙 데스 유스)’에서는 과거의 어린 자신이 충분히 듣고 즐기기 좋을 만한 언어, 사운드를 사용해 고독을 경쾌한 사운드로 담아냈다. 그는 당시의 자신이 듣고 이해할 수 있는 감정선을 그대로 끌고 가는 것만이 해답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뒤이어 항상 작업에서 이미지와 세계관을 먼저 설정한다는 그의 작품 중 단연 빛나는 싱글 ‘Flowerwall’(상단 영상 참고)를 발표했고, 이 곡에서는, 긍정(꽃)의 매개체와 부정(벽)이 공존하는 ‘꽃의 벽’을 형상화해 자신의 결점과 이를 무기로 펼쳐낼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표현했다. 누구나 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보편적인 메시지를 표방한다.

또 다른 싱글 ‘アンビリーバーズ(언빌리버즈, 하단 영상 참고)’에서는 자신처럼 고독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노래를 듣고 공감하며 때로는 의지할 수 있길 바란다는, 이전보다 더 인류애적인 스탠스를 갖추기까지 한다. 이전까지 어두운 내면을 이야기한 것만으로는 리스너에게 도움이 되지 않겠다고 느껴 자신이라도 능동적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욕심이 생긴 것이 아닐까. 특히 이 곡에서는 기타 사운드를 배제하는 등 자신에게 제약을 걸어 일렉트로니카로 완성해 ‘변화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어필했다. 현재의 요네즈 켄시는 타인을 신용하지 않고 누구의 편의 서지도 않는 자신의 자세를 삶의 원동력 중 하나라고 이야기한다.

米津玄師 ‘アンビリーバーズ’

 

타자와 내가 연결되다

어느덧 ‘내 이야기를 하는 것’에 한계를 느낀 그는 타 예술계와의 협업, 뮤지션과의 컬래버레이션 그리고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맡으며 또 다른 세계관을 펼쳐낸다. 오히려 일종의 매개체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니 일종의 기분 전환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일러스트와 밀접한, 루브르 미술관의 방드 데시네(만화) 전시회를 그려낸 곡 ‘ナンバーナイン(넘버 나인)’에서는 경쾌하고 시원시원한 팝 멜로디에 황폐한 도시의 이면을 담아냈다.

米津玄師 ‘ピースサイン’

유년 시절의 자신과 대화하고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에 몰입한 곡들은 그의 대표작이 되기도 했다. <3월의 라이온> 엔딩 테마로 삽입된 싱글 ‘orion’에서 주인공이 고군분투하는 모습과 음악을 만드는 자신을 연결해, 삶 그 자체를 긍정하며 시리도록 은은하고 진취적인 멜로디로 표현했다. 소년의 성장 스토리를 다룬 애니메이션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의 오프닝 테마 싱글 ‘ピースサイン’(피스 사인, 상단 영상 참고)은 적절한 완급조절과 가슴을 울리는 사운드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정석을 따르면서도 이 곡을 들은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자신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의 잠재력을 갖길 바라며 작업했다고 한다.

米津玄師 ‘Lemon’

반대로, 죽음의 이면과 삶의 접점을 다룬 드라마 <언내추럴> 삽입곡으로 대히트한 싱글 ‘Lemon’(상단 영상 참고)은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한 것이 오히려 드라마의 테마를 관통하고 넘어서 듣는 이의 마음을 울렸다. 곡 작업이 곧 “내면의 깊은 곳에 뛰어들어 가장 밑바닥에 있는 것을 가지고 돌아오는 것”이라 밝힌 그는, 드라마 곡 작업 제의를 받고 바로 조부상을 당해 죽음에 대해 좀 더 본질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으며 그 힘을 할아버지가 준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분위기 또한 작위적으로 어둡지 않고, 유려하게 흐르는 리듬감에 자연스레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드라마에 자신의 경험을 연결하여 결과적으로 보편적인,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곡이 나온 것이다.

출처 - iRock Magazine 

 

중2병이 뭐가 어때

한편 가장 최근(2018.10)에 발표한 싱글 ‘Flamingo’(하단 영상 참고)에서는 실험성이 극에 달했다. 부쩍 외부와 소통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기 시작한 요네즈 켄시는, 이제 보편성을 넘어 새로운 것을 추구하게 된다. 4집 <BOOTLEG>(2017)에서 해외 팝 사운드와 일본 가요의 접점을 찾았다면, 이 곡에서는 ‘일본인으로서 자국민의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음악을 좇고 결국 남미 남부의 토속 음악 폴클로레와 시마우타(오키나와 풍 민요), 도도이츠(민간 속요)를 시도한다. 실험은 이에 그치지 않고 의도적으로 악기 사운드를 줄여내 그전부터 수집해왔던 보이스 샘플(헛기침, 입술 떨기 등)을 사용하거나, ‘내 안에 꿈틀대는 꼴사나움’을 이야기한다며 젠체하는 의성어를 삽입했다.

米津玄師 ‘Flamingo’

진취적인 록 넘버 ‘TEENAGE RIOT’에서는 이전 발매곡 ‘LOSER’에서 보였던 강렬함이 엿보인다. 애초에 ‘Lemon’ 작업 당시 내보였던 발라드 감성을 상쇄하고자 만든 트랙이라 그런지 메시지도 거침없다. 그는 흔히 중2병이라고 부르는 것이 사실은 누군가의 절실한 외침이고 진실함이라며, 이를 가벼움으로 치부해 왜곡하는 것을 거부하는 태도를 보인다. 아니, 오히려 이런 부분을 당당히 드러낸다. 곡은 역시 우울했던 사춘기의 충동적인 감정을 다룬다. 힙합 베이스를 사용한 ‘LOSER’에서는 직접 뮤직비디오에서 춤을 추는 새로운 시도도 선보였다.

출처 - rockin’on 

누구나 사랑할 수 있는 사운드에 자신의 이야기를 녹여내던 요네즈 켄시는 점차 뮤지션으로 성장하면서 같은 처지인 사람들을 대변하고, 힘들어도 그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려는 당당함까지 갖추게 된다. 단 것만 삼키고 움츠러들었던 활동 초기의 모습과는 전혀 상반되는 것이 아닌가. 그는 이제 평범함, 보편적인 것에 대한 집착도 버렸고 더 다른 시도를 하면서 아무도 하지 않은 음악을 하고 싶다고 한다.

米津玄師 ‘灰色と青(잿빛과 푸름)’ with菅田将暉(스다 마사키)

내면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감정에 더욱 진솔한 이야기를 캐치한 팝 멜로디에 녹여 자부심을 갖고 노래하는 뮤지션 요네즈 켄시. 외부와 관계를 맺고 그들과 연결되는 것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 그는 오늘도 같은 자리에서 시대가 원하는, 모든 이의 마음을 울릴 예측 불가능한 음악을 준비하고 있다.

 

메인 이미지 출처 – Spice, 촬영 - 小浪次郎

 

 

Writer

실용적인 덕질을 지향하는, 날개도 그림자도 없는 꿈을 꾸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