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색깔의 올드카, 흥겨운 음악과 춤, 쿠바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특유의 매력 덕분인지 지금의 쿠바는 여행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곳 중 하나가 되었다. 해가 지는 말레콘 앞에서 모히토를 마시며 시가를 피우는 모습, 상상만 해도 평화롭고 낭만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쿠바를 다녀온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말한다. 매력적인 여행지로서의 쿠바와, 삶의 터전으로서의 쿠바는 무척 다르다는 걸.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쿠바와 카메라맨>은 무려 40년의 세월에 걸쳐 쿠바를 담은 작품이다. 에미상을 12번이나 받은 비디오 저널리스트인 ‘존 알퍼트’가 감독을 맡았다. 아쉽게도 이 영화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쿠바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낭만 가득한 쿠바가 아닌, 사회주의 혁명과 그 이후 쿠바가 겪은 변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격동의 시기를 오롯이 담은 <쿠바와 카메라맨>, 그 매력 포인트를 몇 가지 짚어봤다.

 

피델 카스트로의 새로운 얼굴

영화는 피델 카스트로를 추모하는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시작하고, 이와 비슷한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그만큼 피델은 이 영화에서, 그리고 쿠바에서 무척이나 중요한 인물이다. 피델은 1950년대에 체 게바라와 함께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축출하고 쿠바의 민주주의 혁명을 이뤄냈다. 그 이후로 그는 공산주의 체제를 수립했고, 여러 가지 변화를 모색해가며 지금의 쿠바를 만들어 냈다. 49년간이나 쿠바를 홀로 통치했다는 점에서 피델 카스트로에 대한 대외/대내적인 평가는 엇갈리지만, 많은 쿠바 사람들은 그를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칭하고 있다.

<쿠바와 카메라맨>의 감독 존 알퍼트는 피델이 UN 연설 후 인터뷰에 응한 유일한 외국 기자로 잘 알려져 있다. 영화에는 그 역사적인 순간뿐만 아니라, 40년의 세월 동안 그가 피델을 대상으로 진행한 밀착 인터뷰들이 담겨있다. 실제로 존과 피델은 여러 번의 만남을 통해 꽤 두터운 신뢰 관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존의 인터뷰 속에서 피델의 모습은 무척이나 편해 보인다. 그는 존에게 시시껄렁한 농담을 던지기도 하고, 수업을 빠지고 자신을 보러온 존의 딸에게 사유서를 써주기도 한다. 위대한 혁명가, 공산주의 지도자로서의 딱딱한 모습이 아닌, 피델의 솔직한 신념과 그의 개인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영화는 흥미롭다.

 

가장 밑에서부터 들여다본 쿠바

피델 카스트로의 사회주의 혁명 이후 쿠바는 천국과도 같은 곳이었다. 모든 사람이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으며, 국가는 기본 식료품과 생필품을 부족함 없이 제공해주었다. 이처럼 60년대 쿠바는 그저 살기 좋은 국가였다. 하지만 영화가 출발하는 시점인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쿠바는 미국과의 관계 악화로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1991년, 소련의 붕괴로 인해 쿠바 경제는 무너진다. 정부는 경제 회생을 위해 관광산업을 증진시키고, 지금의 쿠바와 비슷한 모습을 갖춰나간다.

<쿠바와 카메라맨>의 핵심은 국제 정세의 변화가 미친 영향을 가장 밑에서부터 들여다보았다는 점이다. 실제로 피델 카스트로를 제외하고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평범한 쿠바 주민들이며, 이들은 정부의 정책에 목숨을 맡겨야 하는 사회 최하층이었다. 그중에서도 존 알퍼트는 농장에서 일하는 보레고 형제, 간호사의 꿈을 꾸던 소녀, 주유소에서 마주친 청년을 반복적으로 찾아간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그들의 삶은 쿠바 사회가 거쳐온 길을 묵묵히 증명한다. 자칫 정치용어로만 기록될 수 있는 쿠바 현대사가 영화를 통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40년의 세월과 존 알퍼트

존 알퍼트는 70년대 초 중반부터 피델이 사망하는 2016년까지, 40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쿠바를 담았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취재를 시작한 그는, 5~6년에 한 번씩 쿠바를 방문하며 쿠바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존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밝은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고, 사람들은 그의 질문에 항상 웃으며 답했다.

하지만 격동의 시기를 겪는 쿠바에서 존은 마냥 행복할 수 없었다. 열정이 가득했던 쿠바 사람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하나둘 희망을 잃어갔고, 그 모습을 보며 존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40년간 카메라를 들고 그들을 찍었다. 영화의 마지막에 존 알버트는 “친구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찍는 건 괴로운 일이에요”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꺼낸다. 영화 곳곳에 드러나는 그의 사려 깊은 시선과 태도는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쿠바와 카메라맨> 트레일러

 

 

Writer

빛나는 이야기의 힘을 믿는 사람. 가끔 글을 쓰고, 아주 가끔 영상을 만든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책을 읽고 영화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