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미 웅거러 © Diogenes Verlag AG, Zurich

세계적인 동화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토미 웅거러(Tomi Ungerer). 지난 2월 8일(현지 시각), 그가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그림책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가였다. 그의 작품은 1957년부터 세계 여러 나라에서 출판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30개국에서 149종이 번역돼 소개됐다. 1998년에는 아동문학 분야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받기도 했다. 그의 작품을 접했거나 소장하고 있는 이라면 그의 이름에서 자연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을 것. 토미 웅거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담아낸 작가였다. 인종차별과 베트남 전쟁, 트럼프가 당선됐던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 반대했고 그런 자신의 의견을 스스럼없이 표현했다.

인종차별에 반대해 제작한 포스터, <Black Power White Power>(1967) © Musées de la Ville de Strasbourg / Diogenes Verlag AG Zürich, Photo: Musées de la Ville de Strasbourg / Martin Bernhart

프랑스 알자스의 스트라스부르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토미 웅거러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었고 가난과 전쟁을 겪었다. 8살 나이에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자신이 살던 알자스 지방이 독일군에게 점령당했다. 폭격을 피해 숨어 지냈던 경험과 나치의 지배 아래 보낸 4년의 시간이 이후 작가 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대 중반에 뉴욕으로 간 그는 동화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했다. 첫 동화책은 1957년 출간한 <멜롭스 하늘을 날다(The Mellops Go Flying)>. 이후 수십 권의 동화책을 발표하고 다른 작가들의 책에 삽화를 그려주기도 하며, 뉴욕 타임즈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도 삽화를 그렸다. 그런데 강한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과 파격적인 그림으로 논란이 되자 1970년대 중반부터 동화를 그리지 않았으며, 그는 이 시기에 캐나다를 거쳐 1975년 아일랜드로 이주했다. 아일랜드에서 양을 기르며 살던 그는 1997년 약 20여 년 만에 <플릭스(Flix)>를 발표하며 다시 아동문학으로 돌아왔다.

그의 그림에서 드러나는 주제는 인간 내면의 선악, 두려움, 반전(反戰) 등 동화에서 다루기엔 다소 무거운 것들. 토미 웅거러는 여기에 그만의 풍자와 유머를 더했다. 편견을 깨는 작업을 선보인 그의 작품 세계를 우리는 영화, 동화책, 그리고 전시를 통해 만날 수 있다.

 

<토미 웅거러 스토리>와 <달 사람>

일러스트를 그리는 토미 웅거러, <토미 웅거러 스토리> 스틸 이미지

브래드 번스타인(Brad Bernstein) 감독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토미 웅거러 스토리(Far Out Isn’t Far Enough: The Tomi Ungerer Story)>는 그의 일생과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작품. 한때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그의 책을 금서로 지정되게 했던 파격적인 오리지널 삽화가 등장하고, 토미 웅거러와 주변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작품과 삶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작가로서 토미 웅거러가 걸어온 인생 여정을 느낄 수 있을 것. 이 다큐멘터리는 2014년 한국 개봉했다.

애니메이션 <달 사람> 스틸 이미지

<달 사람(Moon Man)>은 토미 웅거러의 원작 동화를 모티브로 스테판 셰쉬(Stephan Schesch) 감독이 제작한 애니메이션. 달에 사는 달 사람이 지구로 내려오면서 겪는 이야기를 다루며 전쟁에 대한 두려움과 인간의 광기, 우정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다. 마치 동화책을 그대로 스크린으로 옮긴 것 같은 그림체가 따스하고, 재즈풍의 음악이 잘 어우러진다. 토미 웅거러는 내레이터를 맡아 목소리로 참여했다. 이 작품 역시 2014년 한국에 개봉했으며 현재 넷플릭스를 통해서도 감상할 수 있다.

 

편견을 뛰어넘는 독창적인 그림책들

<세 강도>와 <곰인형 오토> 표지

토미 웅거러는 전쟁의 기억과 상처, 어린 시절에 겪은 두려움을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풀어냈고 인간의 욕심과 허영을 풍자하기도 했다. 그것은 곧 동화책에 대한 고정관념을 넘어서는 작업이었다. 사람을 잡아먹는 거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제랄다와 거인(Zeralda’s Ogre)>이나 무시무시한 강도들이 등장하는 <세 강도(The Three Robbers)>, 괴물에 대한 이미지를 전환시키는 <라신 아저씨와 괴물(The Beast of Monsieur Racine)> 등의 작품은 동화에 잘 등장하지 않는 캐릭터를 주인공 삼아 남다른 이야기를 끌어낸다. 또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며 프랑스와 독일에서 초등학교 교과서로 사용되는 <곰인형 오토(Otto)>는 2차 세계 대전과 유태인 학살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곰 인형을 통해 잔잔하게 전해주는 작품. 그밖에도 <크릭터(Crictor)>, <엄마 뽀뽀는 딱 한 번만!(No Kiss for Mother)>, <못 말리는 음악가 트레몰로(Tremolo)> 등 그의 주요 작품들이 대부분 한국에도 출간됐다.

 

토미 웅거러 박물관

토미 웅거러 박물관 전시 전경, 사진 출처 - 박물관 홈페이지 

토미 웅거러의 고향인 스트라스부르에는 그가 평생 제작한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박물관이 있다. 그의 이름을 딴 토미 웅거러 박물관(Tomi Ungerer Museum)은 그가 1975년부터 스트라스부르에 기증해온 작품을 기반으로 2007년 개관했다. 총 3개 층에 토미 웅거러의 원본 삽화들과 조각품, 광고, 포스터, 그가 수집한 장난감 등 총 1만 점이 넘는 소장품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이 박물관은 세계 각국의 삽화 작품들을 주제로 특별 기획전을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국제 일러스트레이션 센터(International Centre for Illustration)’이기도 하다. 유럽의회로부터 유럽 최고의 박물관 10곳 중 하나로 선정된 곳이다.

 

메인 이미지 출처 - <달 사람> 삽화(좌), 토미 웅거러 홈페이지(우) 

 

 

Writer

잡지사 <노블레스>에서 피처 에디터로 일했다. 사람과 문화예술, 그리고 여행지에 대한 글을 쓴다. 지은 책으로는 에세이 <마음이 어렵습니다>, <회사 그만두고 어떻게 보내셨어요?>, 여행서 <Tripful 런던>, <셀렉트 in 런던>이 있다.
안미영 네이버포스트 
안미영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