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개의 푸른 점으로 고향의 하늘을 표현한 추상화가 김환기, 꼭 끌어안은 아이들의 형상으로 가족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그린 이중섭, 예술이란 꿈에 닿기 위해 평생을 치열하게 분투한 빈센트 반 고흐. 예술작품이 곧 예술가 자신이라 하지만, 그들이 한 글자씩 써 내려 간 손편지에는 그림으로는 미처 알 수 없던 내밀한 고뇌, 예술가로서의 숙명적 고통,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애달픈 마음이 한껏 서려 있다. 아래, 사랑하는 이를 향해 자신의 내밀한 속마음을 고백한 세 예술가의 편지를 만나자.

 

김환기(1913~1974)

고국의 드넓은 하늘을 캔버스에 담은 화가 김환기. 오늘날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높이 평가받는 김환기의 곁에는 평생을 사랑한 아내 김향안이 있었다. 시인 이상의 부인이었던 김향안은 사별 후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김환기와 결혼한다. 그녀의 본명은 변동림인데, 현재 알려진 김향안이란 이름은 김환기의 아호를 따 그녀 자신이 직접 지은 것이다.

김환기와 김향안 ⓒ 환기미술관

결혼 전, 가난한 무명 화가에 불과했던 김환기는 김향안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편지로나마 마음을 전한다. 무심한 듯 흘려 쓴 필체는 때론 수줍은 고백을, 그림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건네기도 했다. 김향안은 마음을 표현하는 것엔 한없이 조심스럽지만 예술 앞에서는 그 누구보다 진지했던 이 젊은 예술가와 금세 사랑에 빠진다.


김환기는 편지를 참 잘 쓴다.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다감한 글이다. 때로는 지나치게 정이 넘쳐흐르는. 
그러나 나는 곧 답장을 쓰지 않았다. 그러면 일방적으로 또 편지가 왔다. 
그러는 동안 한 번밖에 만나지 않았던 우리는 편지로써 가까워졌다. - 김향안-
 

김환기가 김향안에게 쓴 편지 ⓒ 환기미술관


1955년 멀리 파리에서 처음 성탄절을 맞이하고 있을 나의 향안에게.
행복과 기쁨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진눈깨비 날리는 성북동 산 아래에서
으스러지도록 안아준다 너를.
나의 사랑 ‘동림이' –수화 김환기-

프랑스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김향안에게 김환기가 부친 편지다. 담담하게 읊조리는 김환기의 문장에는 먼 곳에 있는 아내를 향한 깊은 마음이 절절히 묻어난다. 그리움을 이기지 못한 김환기는 교수직 제안을 거절하고 김향안이 있는 파리에서 작품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극심한 경제적 궁핍과 고국에 대한 사무치는 향수 속에서도 김향안은 김환기가 타계할 때까지 그의 작품활동을 전력으로 돕는다.

 

이중섭(1916~1956)

화가 이중섭. 사진 출처- economyj

벌거벗은 채로 뛰노는 아이들, 소, 물고기와 같은 한국적인 정서와 자연적인 소재를 그린 화가 이중섭 또한 살아생전 수많은 편지를 남기고 간 예술가 중 한 명이다. 일본 유학 시절 만난 야마모토 마사코와 결혼한 이중섭은 두 아들과 함께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행복한 나날도 잠시, 갑작스럽게 발발한 전쟁으로 인해 아내와 아들을 일본에 떠나보내고 이중섭은 한국에 홀로 남아 작품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일본과 한국으로 왕래한 편지에는 둘만의 애칭과 애정 표현으로 가득하다. 턱이 긴 이중섭은 ‘아고리’로, 발가락이 긴 아내는 ‘아스파라거스 군’이란 애칭으로 서로를 불렀다.

이중섭이 쓴 편지. 사진 출처- hankookilbo


“건강하게 대향을 기다리며 계속 아이들의 일, 아스파라거스 군이며, 포동포동한 손가락, 깜빡깜빡하는 당신의 다정한 애정을 말하는 눈, 보들보들한 입술, 얼만큼 살이 쪘는가, 하루에 몇 번이나 발가락을 씻고 있는지, 꼭 답장을 주기 바라오. 매번 아스파라거스 군의 소식 써 보내 주시오. 그럼 나의 가장 멋지고 귀여운 사람이여, 당신의 모든 것을 오래오래 힘껏 껴안고 있을 테니 가만히 있어 주오. 길고 긴 입맞춤을 보냅니다.” –이중섭-

이중섭이 쓴 편지에는 아이들을 꼭 끌어안은 그림이 자주 등장한다. 표정엔 해맑은 웃음기가 가득하다. 이중섭은 어린 나이에 헤어진 아들을 그리워하며 하루빨리 그림을 팔아 두 아들 태현, 태성에게 선물을 사주겠다 약속했다. 오직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날을 상상하며 가난한 화가의 삶을 버티던 이중섭의 소망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중섭은 정신이상과 영양실조로 인해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의 나이 만 40세였다.


매시, 매분 귀여운 그대로부터
소식을 기다리고 있어요.
나의 가장 사랑하는 아내 남덕 천사 만세, 만세 –이중섭-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빈센트 반 고흐, <론 강의 별밤 >, 1888 사진 출처- vincentvangogh

밤하늘의 반짝이는 수천 개의 별빛을 캔버스에 붙잡아 두려 했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평생을 예술이란 별에 닿고자 분투했던 그의 처절한 생애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런 고흐를 물질적, 정신적으로 도왔던 동생 테오는 고흐의 삶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명이다. 그림에 대한 순수한 기쁨, 창작의 고통을 적은 고흐의 편지는 마치 한 편의 일기장을 몰래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나는 늘 두 가지 생각 중 하나에 사로잡혀 있다. 하나는 물질적인 어려움에 대한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색에 대한 탐구다. 색채를 통해서 무언가 보여줄 수 있길 바라는 것이다. 서로 보완해 주는 두 가지 색을 결합하여 연인의 사랑을 보여주는 일, 그 색을 혼합하거나 대조를 이루어서 마음의 신비로운 떨림을 표현하는 일, 별을 그려서 희망을 표현하는 일, 석양을 통해 어떤 사람의 열정을 표현하는 일, 이런 건 결코 눈속임이라 할 수 없다. 실제로 존재하는 걸 표현하는 것이니까. 그렇지 않니. –빈센트 반 고흐, 테오에게 보낸 편지- (반 고흐, 영혼의 편지 中)

1882년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 사진 출처- artnews


나를 꿈꾸게 만든 것은 저 별빛이었을까. 별이 빛나는 밤에 캔버스는 초라한 돛단배처럼 어딘가로 나를 태워 갈 것 같기도 하네. 테오, 내가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빈센트 반 고흐, 테오에게 보낸 편지- (반 고흐, 영혼의 편지 中)

위대한 예술에 한발 다가서겠다는 들뜬 기대는 점차 사그라지고, 평생 자신을 괴롭힌 가난과 테오에 대한 죄책감, 거듭되는 사랑의 실패는 고흐에게 치유할 수 없는 정신병을 안겨주었다. 결국 그는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어쩌면 고흐가 진정 원했던 건 예술이란 먼 하늘의 별보다 자신을 깊이 이해해줄 단 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그가 남긴 수많은 편지 속 문장들은 마치 어두운 밤 별빛처럼 고요히 그의 그림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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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우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