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보컬리스트 출신 어머니와 기타리스트였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부모의 영향으로 음악에 금방 눈을 뜬 그는 섬세한 성격으로 자란다. 초등학생 시절, 체육 시간에 친구들 앞에서 바지에 실례를 한 사건으로 놀림을 당했던 일은 중학생이 된 후 공황장애로 이어진다. 그는 점점 더 고독하고 어두운 성격으로 스스로 고립하게 되고, 방임 교육을 지키던 부모는 그를 대안학교로 보내게 된다.

출처 - Billboard 

어떤 출석도 규율도 없던 그곳은 학생들이 내면에 억눌려있던 수많은 감정을 표출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자율을 보장한 곳이었다. 그는 애써 덤덤하게 지내기만 했던 시절에는 본인의 기분조차 솔직히 몰랐지만, 연기를 하고 밴드 활동을 하면서 점차 마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금은 환한 미소와 재치 있는 입담, 심장을 파고드는 필력에 섬세한 연기력으로 큰 사랑을 받는 문필가이자 연기자 그리고 싱어송라이터로 성장했지만, 아직까지도 이전처럼 억지로 웃던 모습이 익숙하고 좋다고 말하는 그는 바로 일본의 뮤지션 호시노 겐(星野源)이다.

출처 - Musicman-net 

 

지금 좋아하는 것을 시도한다

호시노 겐은 솔로 활동 이전에, 음악 서클 활동을 함께한 고등학교 친구들과 사케록(SAKEROCK)이라는 인디밴드를 결성하여 그룹의 프론트맨으로 활동했다. 밴드는 경음악을 위주로 다양한 인스트루멘탈 앨범을 발매하였으며 오랜 라이브 공연으로 팬층을 탄탄히 다진 뒤에 15년을 끝으로 해체하였다. 당시 보여준 작법은 현재 호시노 겐이 보여주는 팝 음악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날 것 그대로의 순수한 가사와 포근한 멜로디는 그의 솔로 활동에서 적잖이 볼 수 있는 스타일이다. 게다가 지금 그가 멀티플레이어(여러 악기를 구사하는 뮤지션)로서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고 마림바를 구사하게 된 밑바탕이기도 하다.

SAKEROCK ‘SAYONARA’

어린 나이에 독립하고 생계를 꾸리던 그에게 힘이 되었던 것은 역시 음악이었다. 궁핍하던 시절에도 앨범을 구매해 들었던 70년대 일렉트로니카 밴드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Yellow Magic Orchestra, YMO)의 사운드를 시작으로, YMO의 멤버이자 히피 감성과 엑조티카(이국적인 느낌의 라운지 뮤직)의 대가였던 호소노 하루미의 오르가닉 스타일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열심히 돈을 모아 마림바를 구매하여 자신의 작은방 안에 넣어둔 것도 이 덕분이다. 현재의 호시노 겐을 대표하는 트랙 ‘恋’와 ‘時よ’, ‘Continues’ 모두 엑조티카를 대중 친화적으로 녹여낸 곡들이다.(참고로 사케록의 밴드명은 엑조티카의 아버지인, 마틴 데니의 발매곡 ‘Sake Rock’의 타이틀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星野源 ‘時よ’

우주의 순리에 따라, 흐르는 시간을 타고 지금을 살아간다는 노래 ‘時よ(시간이여)’의 목소리는 곧 호시노 겐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내가 현재 가장 하고 싶고, 하면서 가장 즐거운 것’을 시도하는 그의 접근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에게 있어서 세상에 정해진 정답은 없을뿐더러 누군가 정한 틀에 맞춰서 지내야 했던 시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자세가 막연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여도, ‘반복되는 일상에서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하자’는 고무적인 메시지로 듣는 이를 격려하니 마냥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그는 이러한 ‘노동과 일상을 삶 그 자체로 여기는’ 트랙을 꽤나 많이 발표해왔다.

출처 – 호시노 겐 공식 홈페이지 

 

지구는 하나, 세계는 여럿

호시노 겐의 가사는 있어 보이려 하지 않고 스트레이트로 꾸밈없이 이야기하는 것이 또 다른 감상 포인트다. 그중에서도 은근한 긴장감으로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작업 거는 망상을 하는 ‘Down Town’, 말보다는 서로의 접촉으로 알아가고 싶다는 곡 ‘肌(피부)’, 연인과 서로의 냄새와 같은 소소한 일상에서 사랑을 깨닫는 트랙 ‘くだらないの中に(시시함 속에)’에서는 일말의 발칙한 기질이 보이기도 한다. 범상치 않은 가사와 평범한 대상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아내는 시각 하나는 타고났다.

星野源 ‘くだらないの中に’

드라마 <과보호의 카호코>의 주제가로 삽입되었던 트랙, ‘Family Song’은 그 의미를 확장해 조금 더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가족’의 정의를 ‘곁에 있는 모든 사랑하는 대상’으로 넓혔다. 뮤직비디오에서는 여장을 하고 엄마 캐릭터 오겐 상이 되었으며, 이는 곧 성 역할에 지나치게 기댄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 것으로 보인다. 호시노 겐의 대 히트곡 ‘恋(사랑, 코이)’ 역시 사랑을 단순히 이성 간의 전유물로 여기지 않고 ‘두 사람이 하나 되는 과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星野源 ‘Family Song’

보편적이라 여겨지는 감정도 그는 다르게 바라본다. 매번 느끼는 기분도 넓게 본다면 희로애락과 같은 여러 감정 중 하나가 부각된 것일 뿐이기에, 단수의 감정만을 다루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의 음악에서 패러렐 월드에 대한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것과 유사하다. 또한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에서조차 본인의 기호를 쉽사리 이야기하지 않는데, 타인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동시에 자신이 현재 가진 영향력을 인지하고 그 발언에 상처받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모습으로 비친다. ‘인생은 자신이 기획하는 영화이니 포기하지 말고 나만의 작품을 완성하자’는 곡 ‘エピソード’와 ‘フィルム’에서는, 빛과 그림자 혹은 진실과 거짓과 같은 삶의 양분화를 경계한다.

출처 - 호시노 겐 공식 홈페이지 

 

내 이야기는 부끄러워요

보통의 싱어송라이터라면 사적인 경험을 가감 없이 드러내어 말할 것만 같다. 하지만 호시노 겐은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자기 또래의 시점에서 말하는 것이 부끄럽다고 한다. 이런 조심스러운 접근은 특히 ‘사랑’에 관한 주제에서 쉽게 보인다. 그의 솔로 활동 초기 작품들 중에서 노인에 대한 4부작(‘喧嘩’, ‘老夫婦’, ‘茶碗’, ‘グー’)은 노부부의 사랑을 다룬다. 지독한 부부 관계더라도 한날한시에 함께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이야기는, 젊은 세대가 쉽게 ‘공감한다’고 말할 수 있는 따위가 아니다.

星野源 ‘知らない’

그렇게 그는 자신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그대로 공감하기보다는, 경험하지 않은 것에 감정이입하고 색다른 인상을 받기를 원한다. 도호쿠 대지진의 비극에 영향을 받은 2집에는 특히 죽음에 대한 접근이 많은데, 일상의 하나로 받아들이려는 시각(‘ステップ’, ‘ストーブ’, 3집의 ‘知らない’)이 더 지배적이다. 세상을 떠난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본 트랙 ‘予想’는 도리어 세상에 남은 사람에게 힘이 되기까지 한다. 스스로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고 밝힌, 급성 지주막하출혈에 따른 오랜 공백기와 투병 생활 뒤의 패기를 담은 트랙 ‘化物’ 또한 사실은 선배 배우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출처 - 호시노 겐 공식 홈페이지 

 

미래로 나아가는 아이디어

호시노 겐은 4집 <YELLOW DANCER>에서 시도한 자신의 음악을 옐로 뮤직이라고 칭한다. 일본 고유의 기악과 멜로디에 영미권의 창법과 팝 스타일을 접목한, 한마디로 ‘자신의 이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영향을 받은 ‘SUN’, ‘ドラえもん’과 같은 트랙은 스스로 신나면서도 마이클 잭슨과 같은 뮤지션을 동경하고 있다.

星野源 ‘アイデア’

그는 18년 8월에 발표한, 첫 디지털 싱글 <アイデア(아이디어)>에서 자신의 음악을 집대성한 동시에 새로운 음악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곡의 1절에서는 자주 사용하던 단어, 문체 그리고 악기 구성을 보여주었다면, 톤 다운된 2절에서는 일렉트로니카 비트로 미니멀함을 이어갔다. 잘 알려진 호시노 겐과 새로운 호시노 겐의 대비다. 전반적으로는 최근에 발표한 싱글에서 계속 등장하던 칼 안무와 밴드 사운드가 여전하지만, 무엇보다도 핵심은 마림바 사운드가 메인이라는 것이다.

출처 - ROCKIN’ON JAPAN 

이전까지의 음악을 함축하고 이를 초월하여 앞으로도 자신이 좋아하는 새로운 사운드, 일상의 이면을 바라보는 해석의 여지를 남기겠다는 그의 자세는 꽤 영리하다. 히트곡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뿌리를 지키면서 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호시노 겐. 노래하는 것이 곧 살아가는 것이라는, 그의 음악이 듣는 이로 하여금 ‘모든 것을 뛰어넘는’ 영감이 되길 바란다.

星野源 ‘恋’

 

호시노 겐 공식 홈페이지 

 

Writer

실용적인 덕질을 지향하는, 날개도 그림자도 없는 꿈을 꾸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