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의 노장 감독이 30대의 사진작가에게 함께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한 뒤 즉흥적인 여행을 시작한다. 포토 트럭 한 대를 구입한 두 사람은 프랑스 시골을 누비며 작업을 이어간다. 이들이 들른 곳은 퇴거를 거부하고 수십 년간 살아온 집, 농장의 헛간, 부둣가의 컨테이너, 염산 공장 등 지극히 일상적인 삶의 터전들이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을 사진으로 찍고 크게 프린트해 벽면에 전시한다. 동시에 본인의 커다란 이미지를 눈앞에서 마주한 이들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벅찬 감정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되고, 지금 극장에서 한창 상영 중인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의 대략적인 줄거리다. 프랑스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한 명인 아녜스 바르다가 젊은 사진작가 JR과 함께 작업한 이 로드 트립 다큐멘터리는 우리 주변 어디에나 편재한 삶과 인간에 대한 호기심과 경외로 가득하다. 만들어낸 캐릭터가 아닌 실제 삶 속에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진한 인생들, 그들에 바치는 바르다의 존중과 경외, 평범하기 이를 데 없었던 제 인생을 예술 작품으로 마주한 사람의 북받친 표정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에는 그런 특별한 감정과 경험들이 도드라진다.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얼굴들’을 일일이 섭외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촬영한 대형 사진을 출력해 벽면에 붙이기까지 일련의 작업과정은 순탄치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하나의 예술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과감히 생략하거나 ‘빨리 감기’함으로써 완성된 결과물만을 정직하게 드러낸다. 심지어 노르망디 해변에 떨어진 벙커에 힘겹게 붙인 사진이 다음날 파도에 휩쓸려 흔적 없이 사라졌을 때도, 바르다는 이런 결과를 이미 예상한 듯 담담하고 평온한 태도를 취한다.

벙커에 붙인 바르다의 옛 사진
장 뤽 고다르를 만나러 가는 JR과 바르다

뚜렷한 행동 목표나 메시지가 배제된 이 영화는 그저 잔잔하고 흥미롭고 뭉클한 감정의 결을 유지해 나간다. ‘얼굴들, 건물들(Faces, Places)’이라는 원제에서도 짐작해볼 수 있듯, 이 영화가 관심 있는 건 오로지 각자의 생활 터전을 꿋꿋이 지켜가는 ‘얼굴들’이다. 곧 철거될 광산촌을 지키는 마지막 주민, 외진 마을의 연결고리로 살아온 늙은 집배원, 최소 생계 보장금으로 살지만 삶의 아름다운 이면을 볼 줄 아는 노인, 항만 노동자인 남편 곁을 토템처럼 지키는 세 아내가 그 주인공이다. 영화는 내내 이런 식으로 각각의 등장인물들과 우정을 맺고 깊은 공감을 쌓으며, 나아가 사회의 변두리에 놓인 인물들 모두에게 포용과 연대의 손길을 내민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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