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공드리의 팬이라면 구미가 확 당길 만한 광고가 지난해 11월 영국에서 온에어됐다. 영국인이라면 아마 그 광고가 ‘존 루이스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광고’라는 것에 더 구미가 당겼을 것이다.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자란 한국인들에게는 낯선 이야기지만, 영국인들에게 존 루이스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광고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크리스마스 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일종의 신호탄 같은 역할을 한달까. 매해 연말이 다가오면 영국의 각종 언론에선 올해 광고는 어떤 내용일지, 어떤 음악을 썼을지, 언제 발표될지 떠들썩하게 다루기 시작한다. 그러다 광고가 전파를 타면 순식간에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SNS를 휩쓴다. 영국의 모든 사람들이 이 광고 이야기로 연말 내내 법석을 떤다. 어떻게 광고 한 편이 그럴 수 있냐고 묻는다면, 그간 존 루이스의 크리스마스 광고가 해외 광고제에서 받았던 굵직한 상들로 대답을 대신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다 분명한 건, 크리스마스 감성을 한껏 자극하는 존 루이스 광고만의 특유의 따뜻하고 동화적인 스토리텔링을 빼놓고는 이 현상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미셸 공드리라니!

남아있는 크리스마스의 여운이라고는 먼지 쌓여가는 방 안 구석의 크리스마스 소품이 전부인 지금, 새로운 해의 시작을 믿기 힘든 영혼들을 위해 때늦은 크리스마스 광고 이야기를 늘어놓고자 한다. 그간 존 루이스 백화점이 만들어 온 사랑스러운 크리스마스 광고들을 보는 그 순간만이라도 크리스마스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며.

 

<Moz the Monster>(2017)

일곱 살 꼬마와 털복숭이 괴물이라니. 이보다 사랑스러운 조합이 또 있을까. 아니, 이보다 미셸 공드리에게 잘 어울리는 조합이 또 있을까. 공드리라는 이름을 떠올렸을 때 우리가 기대했던 그만큼, 미셸 공드리는 침대 밑에 사는 2m 크기의 괴물 모즈(Moz)를 구현하는데 상당한 공을 들인다. CG 없이 두 명의 배우가 실제 사이즈의 인형 탈을 쓰고 일일이 모즈의 모든 동작을 연기하게 한 것이다. 그 결과 2분 남짓한 영상을 만들기 위해 무려 11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지만, 그 덕분에 아날로그 감성의 모즈가 완성된 것은 물론, 연기 경험이 거의 없는 조(Joe) 역할의 꼬마 배우의 연기는 훨씬 자연스러울 수 있었다. 미셸 공드리는 한 인터뷰에서 “내가 전 여자친구에게 존 루이스의 크리스마스 광고를 작업하고 있다고 했더니 ‘책임이 막중하겠네. 존 루이스 광고는 사람들이 보고 눈물을 흘리게 해야 돼.’라고 말하더라. 그래서 지난주에 그녀에게 광고를 보여줬는데 눈물을 흘렸다.”라며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는데 아마 이 모든 노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미셸 공드리의 전 여자친구만큼 감성이 풍부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이 영상을 보고 나면 가슴 속 가득 퍼지는 온기를 느끼는 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Moz the Monster> 메이킹 영상

조(Joe)와 모즈(Moz)의 우정에 감동받아 흘린 눈물이 아직 채 마르지 않았겠지만 이제 그 눈물을 닦고 환상에서 깨어날 시간이다. 우정은 우정이고 광고는 광고니까. 존 루이스는 광고로 감동을 주는 것에만 만족하지 않는다. 그랬다면 광고비로 700만 파운드나 썼을 리도 없다. 광고가 온에어됨과 동시에 루이스 백화점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모즈 인형은 물론이고 모즈 캐릭터가 그려진 머그컵, 일곱 살 조(Joe)가 덮고 있던 침구세트까지 판매한다. 실물 사이즈 모즈를 만나볼 수 있는 전시공간도 마련해놓았다. (그 전시공간은 당연히 백화점 안에 있다) 모즈와 조의 우정을 소재로 삼은 그림책은 또 어떤가. 영상에서 받은 그 끝없는 감동이 끝없는 소비로 이어질 수 있도록 이렇듯 존 루이스 백화점은 영악함을 한껏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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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속에 등장했던 침구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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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장면을 재현해놓은 전시공간

 

<Buster the Boxer>(2016)

트램펄린에서 뛰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중력을 거스를 때의 그 짜릿한 기분을. 트램펄린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야생동물들과 다섯 살 강아지 버스터의 모습은 보는 사람마저도 그 기분이 들뜨게 만든다. 이처럼 2016년 존 루이스의 크리스마스 광고는 그 이전이나 이후의 광고들과 톤을 살짝 달리한다. 눈물을 자아내기보다는 웃음을 자아낸다. 이에 대해 존 루이스의 관계자는 2016년 브렉시트로 인해 힘든 한 해를 보냈던 영국인들을 응원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브렉시트를 겪지 않은 머나먼 이국땅의 우리들까지 이렇게 유쾌하게 만든 걸 보면 존 루이스는 이루고자 한 목표에 충분히 도달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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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연계 상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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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 체험공간

하지만 존 루이스의 야심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트램펄린에서 뛰어노는 야생동물을 VR로 체험할 수 있도록 오프라인 매장에 오큘러스까지 설치하는 건 물론, 영국의 야생동물 보호단체인 The Wildlife Trusts와 손잡고 광고 캐릭터로 만든 인형을 판 수익금 중 일부를 야생동물 서식지를 복구하는데 기부하기까지 한다. 영국사람들을 넘어 영국 야생동물들까지도 응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Buster the Boxer> 패러디 영상

2016년이 힘든 한 해였던 건 영국인들만이 아니었으니까. 2016년 미국 대선 결과를 본 영국인들은 존 루이스 광고를 이렇게도 패러디한다. 브렉시트로 이미 한번 충격을 경험했던 선배로서 충격받은 미국인들을 응원하고 싶었던 것일까. 패러디물까지 보고 나면 강아지 버스터의 얼굴과 트럼프의 얼굴이 겹쳐지며 한동안 존 루이스 광고가 뇌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Man on the Moon>(2015)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날이면 코앞까지 다가온 듯한 달의 표면을 바라보며 저마다 상상해본다. 저기 저 달 위에 토끼가 살고 있을까. 외계인은 없을까. 2015년의 존 루이스는 달에서 외로이 살고 있는 한 노인의 존재를 떠올렸다. 어린왕자에겐 장미라도 있었지만 그 커다란 달에 집 하나, 벤치 하나 덜렁 놓고 사는 노인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우연히 망원경으로 노인을 보게 된 6살 소녀 릴리(Lily)가 노인에게 무엇이라도 선물하고 싶어 했던 그 마음에 공감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마음까지 노린 걸까. 존 루이스 백화점은 이 캠페인을 통해 영국의 자선단체 Age UK와 손을 잡고 독거노인을 위한 기부 캠페인도 함께 병행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앞선 다른 캠페인처럼 오프라인 매장에 망원경과 달 세트장을 재현해놓는 건 물론, 달에 사는 노인의 이야기로 게임도 런칭한다. 이쯤 되면 한 편의 이야기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궁금해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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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속 이야기를 기반으로 만든 모바일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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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내 마련된 전시공간

 

<Monty the Penguin>(2014)

2014년의 펭귄 몬티와 샘의 이야기를 다룬 이 광고는 아마 존 루이스 크리스마스 광고 중에 가장 기념비적인 작품일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2015년 칸 광고제 필름 크래프트(Film Craft) 부문 그랑프리는 물론, 광고의 크리에이티브가 제품의 판매성과에 미친 영향력을 평가하는 크리에이티브 이펙트(Creative Effectiveness) 부문 그랑프리까지 2년 연속 칸 광고제의 그랑프리를 휩쓸었으니까. 그뿐만이 아니다. 그 해 존 루이스는 몬티 인형 판매만으로 250만 파운드를 벌어들였다. 샘(Sam)과 몬티(Monty)의 이야기는 책으로도, 태블릿 앱으로도, 오프라인 매장의 펭귄 정원으로도 이어져 2014년 연말은 영국 곳곳이 온통 펭귄 몬티였다.

물론, 펭귄 다큐멘터리를 모두 뒤져서 그 움직임을 분석해 몬티를 만들고, 한여름에 한겨울 옷을 입고 가짜 눈밭을 만들어 촬영했던 광고팀의 노고를 생각하면 이 모든 성과는 어쩌면 당연한 보상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펭귄이라니! 생김새만으로도 귀여운데 걸음걸이는 더 귀여운 펭귄이라니! 성공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The Bear and The Hare>(2013)

우리나라였다면 곰은 동굴에 갇혀 백일동안 마늘과 쑥을 먹기에 여념이 없었겠지만, 영국의 곰은 친구를 잘 둔 덕분에 조금은 특별한 크리스마스를 보낸다. 영상을 보며 <라이온 킹>이나 <포카혼타스> 같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감성을 떠올렸다면 스스로의 안목을 칭찬해주자. 이 광고는 <라이온 킹>과 <포카혼타스>, <뮬란> 등의 연출을 맡았던 디즈니 출신의 베테랑 아티스트 아론 블레이즈(Aaron Blaise)가 총지휘를 맡았다. 디즈니 애니메니터 출신답게 아론은 스톱모션과 핸드라이팅 방식의 2D 애니메이션과 같은 가장 전통적인 기법을 활용해서 이 광고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이내 고난의 여정을 시작한다. 수작업한 소품들을 하나하나 설치해 실제 세트를 만들고, 캐릭터의 움직임에 따라 4000개가 넘는 프레임을 직접 인쇄하고 자르고 하나하나 이어붙이며 촬영을 했다. 노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시대와 기술을 거스르는 애니메이션 팀의 노력은 영상 장면 장면에 그대로 반영되어 따뜻하고 충만한 아날로그 감성의 애니메이션으로 탄생했다. 곰과 토끼의 우정이 더 와 닿았던 건 이러한 노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The Bear and The Hare> 메이킹 영상

게다가 배경음악은 또 어떤가.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릴리 알렌이 영국의 국민 록 밴드 킨(Keane)이 2004년 발표한 ‘Somewhere Only We Know’를 불렀는데, 이 광고와 함께 음원이 나오고 나서 UK 차트 1위까지 오른다. 당시 출산과 육아로 3년간의 공백기를 가졌던 릴리 알렌으로서는 이 곡 하나로 복귀에 성공한 것이다. 거기에 칸 광고제 필름 부문 은상(Silver) 수상은 덤. 이렇듯 존 루이스의 이름을 걸고 많은 이들이 많은 것을 이루어낸다. 존 루이스가 선사하는 진정한 크리스마스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다섯 개의 광고 영상만으로 못내 아쉬운 사람이 있다면 2011년도와 2012년도 광고영상도 꼭 찾아보기를 추천한다. 적어도 음력 새해가 밝기 전까지는 크리스마스의 여운에 흠뻑 취해있을 수 있을 것이다.

 

Writer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카피 쓴다는 핑계로 각종 드라마, 영화, 책에 마음을, 시간을 더 쓰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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