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새 것으로 뒤덮이는 서울에서 을지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서울시청에서 을지로 7가에 이르는 화려한 대로변을 뒤로하고 골목길로 들어서면 1970년대 호황기를 누렸던 오래된 산업화의 도시가 얼굴을 드러낸다. 낡은 간판을 건 철공소, 자재상, 인쇄소가 아직 소리를 내고, 반세기를 훌쩍 넘긴 노포들의 여전한 모습은 오히려 새로운 인상으로 다가온다. 낡음이 특별한 을지로에 더욱 묘한 매력을 불어넣고 있는 건 바로 젊은 공간들이다. 을지로의 역사에 비하면 아주 젊은 이 공간들은 오래된 골목보다 더 후미진 곳을 자처하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의 이목을 더욱 사로잡는다. 활발했던 제조업의 땅에서 새로운 문화를 생산하고 있는 공간들을 만나보자.


커피한약방

을지로2가 사거리 빌딩 뒤 가려진 골목길에 들어갔더라도 단번에 찾기는 힘들다. 한 명씩 줄지어야 겨우 지나갈 법한 골목을 한 번 더 파고들어야 ‘커피한약방’에 갈 수 있다. 도무지 찾아오는 이 없을 것 같은 이 곳에 2014년 초 문을 열었다. 낡고 오래된 건물의 뼈대를 그대로 보존한 공간엔 바닥 타일부터 매달린 조명, 곳곳에 놓인 화려한 자개장까지 온갖 예스러운 것들이 품위 있게 모여 있다. 한약을 정성껏 달이듯, 수제 커피배전기로 직접 볶은 원두를 핸드 드립으로 진하게 내린 필터커피 또한 특별한 맛이다. 남다른 분위기 속에서 기분 좋게 마시는 커피는 그야말로 보약이 된다.

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2가 101-34
전화 070-4148-4242
영업시간 평일 08:00~22:00, 토 11:00~21:00, 일 12:00~20:00



호텔수선화


인쇄소만 간간히 눈에 띄는 한적한 을지로3가역 뒤편, 작년 말 조용하지만 화려하게 문을 연 ‘호텔수선화’가 있다. 가방, 의상, 보석을 디자인하는 세 명이 모여 작업실 겸 카페와 바로 만든 공간이다. 눈에 띄지 않는 낡은 건물 외관에 가려진 내부는 디자이너들의 독창적인 감성으로 가득 채워져 하나의 전시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다양한 아티스트와의 교류를 위한 전시나 공연을 종종 마련하기도 하니, 전시장이 아닌 것도 아니다. 그러나 호텔수선화의 우선적인 정체는 카페 겸 술집. 특별한 맛을 보장하는 훈고링고브레드의 파운드 케이크와 주인장이 엄선한 병맥주 몇 가지는 마니아를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3가 302-18
전화 070-8950-2649
영업시간 월~토 12:00~24:00, 일 휴무
페이스북 www.facebook.com/hotelsoosunhwa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hotel_soosunhwa



신도시


‘구도시’ 을지로3가에 '신도시'가 숨어 있다. 역시 을지로의 여느 가게들처럼 알고 찾아가지 않으면 방문할 리 없는 위치에 자리했지만, 금새 '힙스터'들의 성지가 됐다. 미술작가 이병재와 사진작가 이윤호가 차린 공간은 우연과 시간으로 차 있다. 길에서 주운 오래된 가구와 간판, 예술가의 독창으로 만들어낸 물건이 즐비하게 놓인 공간의 담음새는 구도시 속 신도시라는 ‘신도시’의 위치적 특성과 묘한 대칭을 이룬다. 이 공간의 목적은 단순히 말해, '재미있는 일을 벌여보자'는 것이다. 낮에는 카페, 밤에는 주점, 주말에는 다양한 직업군의 아티스트를 위한 공연장이라 정의할 수 있지만, 사실 신도시가 벌이는 꿍꿍이들을 찬찬히 살펴볼 때 형용할 수 없는 공간이라 말하는 것이 더 명확할지도 모른다.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점은 맥주, 와인, 보드카 같은 술과 함께 피자, 감자튀김 그리고 동남아라면 같은 안주거리를 다채롭게 맛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신도시는 출판사와 레이블까지 영역을 넓혀 김인엽 같은 전도유망한 아티스트의 작업물을 제작한다. 참고로, 신도시 인근에는 주인장 중 한 명인 이윤호가 친구들과 함께 운영하는 중고물품숍 '우주만물'이 있다. 쉽게 구하기 힘든 잡지와 서적, 바이닐, 패션 브랜드 ‘할로미늄(HALOMINIUM)’의 제품들, 인테리어 소품, 쓰임을 잠시 고민하게 하는 아이디어 도구를 포함한 온갖 잡동사니가 빼곡한 이곳 또한 신도시와 다를 바 없다.

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수표동 11-2 5층
전화 070-8631-4557
영업시간 평일 18:00~02:00, 금 18:00~03:00, 토 15:00~03:00, 일 휴무
홈페이지 seendosi.com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seendosi



슬로우 슬로우 퀵 퀵(SlowSlowQuickQuick)

지난해 7월, 서울시 중구청이 젊은 예술가들에게 창작 공간을 제공하고 이를 지역사회에 새로운 변화를 불어 넣는 기회로 만들자는 취지로 추진한 '을지로 디자인 예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슬로우 슬로우 퀵퀵'이 탄생했다. 을지로4가 미싱 부품 거리의 골목 한 켠에 비어 있던 재봉틀 공장이 복합문화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4층짜리 건물에는 6명의 작가들이 다양한 양상의 전시를 층층이 채워 넣고 있다. 2층 안쪽에 마련한 공간에서는 종종 뮤지션들의 공연과 디제잉 파티도 열린다. 또한 공간의 일부는 화원이고, 또 다른 일부는 작가들의 작품을 판매하는 매장이다. 때에 따라 갖가지 음식을 내놓는 식당은 하나의 설치미술 같기도 하다. 멀티플렉스라는 말은 어딘가 정겹지 않지만, 낡고 좁은 을지로 골목길에서 만나는 이 멀티플렉스는 단연 반가울 수밖에 없다.

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산림동 1
전화 010-5553-2835
홈페이지 slowslowquickquick.modoo.at

(메인이미지 출처-'신도시'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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