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무언가를 하려 하지 말아요
그냥 가만히 있는 것도 좋을 텐데
눈물이 고여 있는 정도도 좋아요
물 한잔 건네 주는 맘으로 이 밤을 지낼 수 있으니
- 2집 수록곡 ‘물’ 가운데


경남 김해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권나무는 2014년 1집 앨범 <그림>으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같은 해 'EBS 스페이스 공감'이 선정한 5월의 헬로루키가 되었고, 2015, 2016년에는 한국대중음악상에서 2년 연속 ‘최우수 포크 노래상’을 받으며 음악성을 인정받았다. 그는 지금 충남 서천의 한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주중에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주말이면 공연을 하기 위해 서울 등지로 나선다. 2016년 3월엔 2집 앨범 <사랑은 높은 곳에서 흐르지>를 발표하며 올 한해 누구보다 성실히 공연을 이어갔던 그다. 10월이 끝나가는 주말, 모처럼 공연이 없다며 마음 편하게 웃는 권나무와 이야기를 나눴다.



1집 수록곡 ‘노래가 필요할 때’ 라이브 영상을 통해 권나무 씨를 처음 알았어요. 권나무 씨가 음악을 하는 이유와 닿아 있는 곡 같아요.
어릴 때 만든 곡입니다. 제가 말하는 ‘어릴 때’는 음악을 하게 될지 전혀 몰랐을 때를 말하는 거에요. 이 곡이 저를 대변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른 곡이랑 좀 달랐어요. 20대 초반에 괜히 우울하고 그런 시기 있잖아요. 저는 대학 시절 대부분 그랬던 것 같아요. 에너지는 많은데 스스로 너무 위축되어 있거나 답답하고 화가 많고. 그런 상태로 계속 있다가 몸이 편한 시기가 있었어요. 일 년 정도 아무것도 안 하던 때였는데, 한창 노래를 만들고 일찍 일어나서 책 보고 여행 갔다 오고 친구 만나서 맥주도 마시고 그랬죠. 그렇게 지내다가 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길을 내려오는데 갑자기 기분이 좋은 거에요. 순간 이렇게 깨끗한 기분이 몇 년 만인가? 생각했어요. 그날 이 곡을 만들었습니다. 그때가 지난 시간에서 넘어가는 분기점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곡과 다르게 선언 같은 느낌이 있죠.
▶ 권나무 ‘노래가 필요할 때’ 라이브 영상 [바로가기]

1집 앨범 전체를 돌아보면 어떤 마음이 드나요?
놀랍고, 저 스스로는 되게 자랑스럽다 생각해요.

후회 같은 건 없고요?
이 부분은 좀 더 잘할 걸, 이렇게 해볼 걸 하는 아쉬움은 누구나 있을 거예요. 하지만 1집 앨범은 이미 가지고 있던 노래를 두고 ‘지금 해야겠다’는 순간의 선택으로 붙잡은 것이기 때문에 후회는 없습니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이 있나요? 노래에도 변화가 있을 거고요.
1집 때는 피곤한 것도, 너무 어두운 것도 싫었어요. 제 정서는 그랬지만 노래를 부를 때는 그냥 깔끔하게 하고 싶었죠. 근데 2집을 만들면서 바뀌었어요. 감정을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하고 싶어졌죠. 1집이 약간 관조하는 자세라면, 2집은 저와 제 음악의 거리가 가깝죠. 성격도 변한 것 같아요. 화가 좀 덜 나고요.(웃음) 그때보다는 자아실현을 좀 했을 테니까요. 예전에는 화를 밖으로 투사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지금은 많이 유연해졌어요. 사람을 대할 때도 그렇고요.

세월호 추모 컴필레이션 앨범 <다시, 봄>에 참여했어요. ‘이천십사년사월’은 권나무 씨 특유의 담담함이 깊이 서려 있는 곡인데, 가사가 유독 와 닿아요. ‘모두 잊겠지만 몸이 기억하여 / 이맘때면 잠깐의 감기라도 나눠 앓아서 / 사랑했고 잊혀졌던 / 정말 사랑했고 이내 잊혀졌던 것에 노래를’ 이 대목은 모든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예요. 어떤 마음으로 쓰셨는지 궁금합니다.
그 마음입니다. 가사에 있는 그 마음밖에는 안 들었어요. 딴말은 할 수가 없었어요. 예를 들어 세월호 사건도 누군가가 너무나 빨리 그 사건을 단순화하고 싶어 하고, 아직도 어려움이 해결 안 된 사람들을 쉽게 말하고, 우리가 어떻게 그 사람들을 대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만들었잖아요. 하지만 잊힌다는 거죠. 저도 사건을 잊진 않겠지만, 그때만큼 슬퍼하진 않을 건 부인할 수 없단 말이죠. 그렇게 봤을 때 제가 할 수 있는 건 제가 느끼는 걸 말하는 것밖엔 없었어요.
▶ <다시,봄 프로젝트> 권나무 ‘이천십사년사월’ [바로가기]

자신한테 다짐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네요.
몸은 기억하고 있다는 이야기죠.

2집 앨범 타이틀 ‘사랑은 높은 곳에서 흐르지’는 어떤 의미일까요?
다른 곡들이 제 얘기라면 이 곡은 희망 사항이었어요. 우리가 어떤 상황이나 사람을 외면할 때 이렇게 말하죠. “야, 그거 자연스러운 거야.” 근데 그 말이 되게 재밌어요. 제가 봤을 때 자연은 굉장히 엄정하거든요. 고도차가 나야 물이 흐르는 거고, 바람도 갇혀 있어야 열린 곳으로 나가죠. 자연은 법칙이 있고 위계질서가 확실한데 사람들은 감정에 대해서 너무 자연스럽다는 말을 자주 해요. 헤어질 때도 “사랑이 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거야”라고 말하는데, 그냥 사랑이 식은 거지. 비단 사랑뿐만 아니라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걸 꾸준히 이어가는 것은 틀림없이 선택에 따른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내가 사랑을 채워서 고도를 높여야 흘려줄 수 있다, 그런 노력을 해야만 사랑이 순환하는 거다.
▶ 권나무 ‘사랑은 높은 곳에서 흐르지’ 라이브 영상 [바로가기]

‘높은 곳’을 아량이 넓은 사람,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이해해도 될까요?
그런 걸 수도 있죠. ‘화분’이라는 곡과 맥을 같이한다고 보면 돼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곡이죠.
▶ 권나무 ‘화분’ [바로가기]

3집 앨범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요?
예전과 똑같이 하고 있어요. 떠오르는 대로 녹음하고, 데모를 만들어 놓기도 하고. 근데 예전처럼 또렷하게 잡히진 않네요. 1집 때는 이전에 곡을 다 만들어 놓고 녹음만 해서 바로 앨범이 나왔어요. 1집을 녹음하고 있을 때도 2집 앨범에 이걸 말해야겠다는 구상이 다 되어 있었고요. 근데 지금은 이것저것 흩어져 있어서 모으지 못하고 있어요. 사회, 세상 이야기, 주변 사람들, 이것저것 막 섞여 있어요.

포크 말고 다른 장르에 도전해볼 생각도 있나요?
음악을 계속하면 경계가 옅어질 것 같아요. 감사하게도 권나무 음악을 포크라고 명명해주셨기 때문에 포크가 된 것이지 장르를 생각하면서 한 건 아니거든요. 편곡할 때도 악기는 딱 기타 두 대랑 현악기만 고집했고 타악기도 일부러 안 넣었어요. 조금씩 고민하고 있어요. 3집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는데 다른 식으로 편곡해볼까 싶기도 하고요. 3집은 이르면 내년 상반기쯤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미발표작 중 ‘튀김우동’이라는 곡이 있는데 올겨울에 작업해서 발매하고 바로 3집 준비할까 생각하고 있어요. 더 나이 먹으면 녹음을 못 할 거 같아서요.(웃음)

평소 일기를 쓰거나 메모를 자주 하는 편이에요?
규칙적으로 쓰지는 못해요. 매일매일 하는 거 싫어합니다.(웃음) 보통은 메모하고 책 읽으면서 줄 많이 그어 놓고 그러죠. 예를 들어 좋은 책을 보면 광산같이 보이는 때가 있어요. 이거 캐면 다 금이구나 싶을 때가 있는데 연결하는 건 또 다른 문제죠.

1집 수록곡 ‘여행’은 장 그르니에의 <섬>을 차용해서 쓰셨잖아요.
그것은 한 구절 자체가 아예 저한테 박혀버렸기 때문에. 애초에 곡으로 만들어야겠다가 아니었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곡은 ‘화분’이 유일하죠. 유진목 시인이랑 “같이 작업을 하자.” 정하고 만들었어요.

주로 책에서 영감을 얻나요?
영향을 안 받는다고 말하기는 힘들죠. 거기서 감명을 받았다면 어떻게든 작용할 거니까. 근데 저는 잘 안 돼요. 제 언어로 잘 안 바뀌고. 영감이라면 아무래도 일상이죠. 친구들, 만나는 사람들, 보는 거, 듣는 거, 열 받는 거.

지금까지 권나무씨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뮤지션이 있을까요?
몇 년 전까지는 확고하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음악을 시작할 때 기타 세션을 해준 조용호라는 형이 있어요. 제가 좋아하던 대학 후밴데 저보다 나이 많은 형이었어요. 형은 자기 앨범도 있고 지금은 김태춘 씨랑 허수아비 레코드에서 같이 일하고 있죠. 형 때문에 기타를 치게 됐어요. 제가 들었던 수많은 명곡은 저 너머의 이야기고, 실제로 자기 이야기는 이런 것이란 걸 처음으로 느끼게 해준 사람이 형이었어요. 모든 음악 중에 당시 형이 했던 음악이 저한테는 최고였어요. 스타일을 모방할 순 없지만, 자기 이야기를 하는 방식은 언제나 지침이 됐죠. 1집 때까지만 해도 곡을 만들 때 많은 영향을 줬던 것 같아요. 2집 들어서면서부터 제 영역을 보게 되고 요즘에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만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권나무 씨가 ‘진짜구나’ 생각했던 곡을 저도 들을 수 있는 건가요?
형 음원은 많이 있을 거예요. 앨범도 있고. 제가 진짜라고 말하고 싶었던 곡은 형이 대학 시절 방에서 같이 술 마시면서 부르던 곡이에요. 그런 곡들을 찾기는 힘드실 텐데. 사실 내가 그것보다 좋은 곡을 과연 만든 적이 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럼 권나무가 생각하는 ‘권나무 음악’은 어때요?
“권나무의 음악은 일기다.” 이렇게 말하는 건 싫어요. 예술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서사에만 머물기보다는 확장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동안 작업했던 것들은 그때 상태를 곡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일기 같은 의미가 담겨있어요. 특히 1집이 그랬죠. 권나무의 본질은 거기 있는 것도 같고,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해주나 싶기도 하고. 근데 그게 한계가 되기도 하죠. 3집도 내고 더 오래 음악을 한다면 진짜 고심하는 예술가가 되고 싶어요. 사회현상도 이야기하고 예술가로서 책임감도 느끼고. 지금은 권나무 음악에 기법이 부족하니까 재즈나 블루스를 공부해서 넣기보다는 내가 느끼는 걸 확장 가능하게 내놓는 것이 좀 더 맞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그냥 내 삶을 잘 사는 수밖에 없죠.

‘노래’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노래를 시작한 건 아니에요. 굳이 비유하자면 블로그에 글을 적었는데 출판사랑 계약을 하고 책으로 나와버린 느낌인 거죠. 저도 그때그때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어요. 아무리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해도, 곡마다 사람들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들어있죠. 나도 이렇게 지내고 사람들도 이랬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

앞으로 어떤 음악가가 되고 싶나요?
스스로한테 부끄럽지 않고 제가 저를 설득할 수 있는 음악가요. 지금 제 음악을 아끼는 분들한테 되도록 좀 더 좋은 영향을 주면 좋겠고. 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권나무를 만나고 싶다면 이 공연에 주목하라
<한결같은 마음 Vol.3> 권나무 대구 단독공연


올 9월 광주, 대전, 구미 등 전국 각지를 돌며 무대를 이어갔던 권나무. 그가 이번에는 도란도란뮤직의 세 번째 기획 공연으로 대구에서 단독공연을 펼친다. 11월의 끝자락, 권나무의 노래로 얼어 붙은 몸과 마음을 녹여보자.

일시 11월 26일 토요일 19:00
장소 대구 클럽 헤비(대구광역시 남구 대명3동 1896-5)
예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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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협찬 어쩌다가게 망원라운지
(서울 마포구 망원동 57-194,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인터뷰 이이재
사진 이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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