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에 섹스 심볼 마릴린 먼로가 있다면, 애니메이션계에는 베티 붑(Betty Boop)이 있었다. 키는 작지만, 육감적인 몸매와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1930년대 전반, 특히 남성들에게 전폭적인 인기를 끈 베티붑. 애니메이션이라는 초현실의 공간 안에서 매회 댄서, 가수, 간호사, 승무원 같은 다양한 직업군을 오간다.

1930년 단편 애니메이션 <요란한 접시(Dizzy Dishes)>에서 주인공 강아지 빔보(Binbo)의 여자친구로 나오며 뾰족한 인상을 심어준 첫 등장부터, 1932년 인기에 힘입어 <베티 붑(Betty Boop)>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으로 탈바꿈하기까지. 또 1939년 마지막 편 <Yip Yip Yippy>을 끝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는 듯했으나, 1970, 80년대 베티 붑을 그리워하는 팬들에 의해 다시 얼굴을 비치기까지. 베티 붑이 지닌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또 어딘가 뚱해 보이는 매력을 그간의 시리즈 편을 통해 들여다봤다.

<Dizzy Dishes>(1930). 2분 45초경에 베티붑이 등장한다

베티 붑의 첫 정체성이 인간이 아닌 개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1930년 애니메이션 제작사 플라이셔 스튜디오가 만든 <talkartoons> 여섯 번째 시리즈인 <요란한 접시(Dizzy Dishes)> 편에 나온 베티 붑의 모습은 지금과 비교해보면 낯설기만 하다. 축 늘어진 귀와 동그란 코, 처진 양 볼은 푸들을 의인화해 만들었다.

<Betty Boop's Bizzy Bee>(1932)

<talkartoons>의 주인공이었던 강아지 빔보는, 1932년 베티 붑의 인기 때문에 졸지에 주연에서 조연으로 밀려나는 안타까운 신세가 됐다. 축 늘어졌던 베티 붑의 귀는 귀걸이로 바뀌었고, 동그랬던 코 모양은 오똑하게 조절됐으며, 눈동자도 더욱 크고 또렷하게 변화했다.

<Boop Oop A Doop>(1932) 

<베티 붑>에는 다른 캐릭터들이 여성성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옷차림의 베티붑을 성희롱하는 듯한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특히나 1932년 공개한 <Boop-Oop-A-Doop> 편에서는 서커스 단장이 몰래 베티 붑의 방에 찾아가 성추행하고, 심지어 강간을 시도하는 장면이 그대로 노출됐다. 최근 영상이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회자되며 곳곳에서 이 에피소드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5분 40초부터 문제의 장면이 등장한다.

<Service with a Smile>(1937) 

1934년 미국영화협회에서 검열 제도 헤이스 코드(Hays Code)를 정식으로 실시하면서, 수위 조절이 애니메이션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에 따라 베티 붑도 점차 섹스 심볼이 아닌 웨이트리스 캐릭터로 방향을 바꾸어 나갔다. ‘미소로 손님을 대접하다’라는 뜻의 <Service with a Smile> 편을 보다시피, 풍성했던 머리 웨이브는 원래보다 차분해지고, 복장도 눈에 띄게 단정해졌다. 이전 시리즈에서 보여준 말괄량이 같은 발랄함도 천천히 자취를 감춘다.

영화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에 특별출연한 베티 붑

1939년, 90번째 시리즈 편 <Yip Yip Yippy>를 마지막으로 <베티 붑> 제작은 중단됐다. 베티 붑 특유의 섹시한 이미지가 심의의 제한을 받으며 캐릭터마저 차분하고 진지해진 탓에 인기가 떨어진 점을 유력한 이유로 들 수 있다. 베티 붑은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는 듯하다, 1970~80년대 거세게 일어난 페미니즘 물결로 인해 개성 넘치는 현대 여성의 아이콘으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합성한 영화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Who Framed Roger Rabbit)>(1988)에 깜짝 출연하는 등 베티 붑은 오늘날까지 영화, TV 콘텐츠 및 광고로 쭉 재생산되고 있을 뿐 아니라 캐릭터 상품으로써의 인기도 계속되고 있다. 물론 웨이트리스로 ‘변질’하기 전, 초기의 시리즈에서 보여준 섹시하고 발랄한 이미지의 베티붑으로 말이다.

 

Tip. <베티 붑>은 익히 알려진 <백설공주>, <신데렐라> 같은 원작 동화를 재구성한 시리즈 편을 내놓기도 했다.

<백설공주>를 패러디한 <Snow White>(1933)
<신데렐라>를 패러디한 <Poor Cinderella>(1934). 컬러판으로 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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