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비어랩협동조합(이하 비어랩)’의 구충섭 조합장 인터뷰에 이어 비어랩 양조 공방에서 맥주 만들기에 빠져 있는 ‘맥덕’들을 만났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나타나는 비어랩 양조 공방은 큰 주방 같기도, 진지한 연구실 같기도 했다. 그곳에 수제맥주를 만들러 온 사람들은 모두 수제맥주를 골똘히 연구하는 과학자들이라고 해도 무방해 보였다. 두 명씩 팀을 이룬 여섯 명은 화이트보드에 오늘 만들 수제맥주 레시피를 적으며 양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중 독일에서 맥주 공부를 하고 이틀 전에 한국으로 왔다는 수제맥주 양조 3년 차 브루어에게 물었다.

다들 비어랩 방문이 처음이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오셨나요?
저희는 커뮤니티 사이트 ‘밋업(Meet up)’에 있는 ‘Indulge in CRAFT BEERS’ 동호회입니다. 모두 수제맥주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인데, 그중 몇몇이 모여 한 달에 두 번 정도 이곳으로 맥주를 만들러 오고 있어요. 요새는 한 달에 세 번 이상도 와요.

오늘 온 동호회 사람들은 모두 맥주 관련 분야에 있나요?
다 그렇진 않고 그냥 만들어보고 싶어서 오신 분들도 있어요. 완전 처음 양조하는 분들이 오면 저희가 알려주면서 같이 만들죠. 이게 혼자 다 하는 게 아니라 여럿이 같이 하는 거라서요. 알려주는 사람들은 저를 포함해 모두 동호회 조직자들이에요. 저는 한국 수수보리아카데미에서 공부한 후 독일로 건너가 'Certified brewmaster'를 취득하고 왔어요. 비어랩 공방은 갓 생겼을 때부터 만들러 왔고요.

몇 안 되는 수제맥주 공방 중 비어랩을 찾는 이유가 있나요?
일단 시설이 깨끗하고, 여기 보틀샵에 여러 가지 맥주가 많아서 테스팅도 같이 할 수 있어요. 맥주 만들 때 기다리는 시간이 많거든요. 또 수제맥주에 대해 잘 아는 조합장이 계시니까 물어보기도 좋고요.

오늘 공방에서는 ‘스타우트’와 ‘에일’ 두 가지 맥주를 만들기로 했다. ‘스타우트’는 쓴 맛을 주로 내는 몰트가 많이 들어가고, ‘에일’은 향을 내는 홉이 더 많이 들어가는 맥주다. 인디포스트는 ‘에일’ 만드는 과정을 따라가보았다. 팀별로 한 번에 20리터의 맥주를 만드는데, 가장 첫 단계는 물을 끓이는 것. 그리고 주재료인 ‘몰트’를 분쇄한 후 뜨거운 물에 넣고 1시간 정도 더 끓여야 한다. 몰트에서 당을 뽑아내는 단계다. 끓일 땐 물에 넣은 몰트의 온도를 수시로 체크하면서 들러붙지 않게 젓는 게 중요하다.


수시로 온도를 재는데, 이유가 있나요?
맥주 만드는 건 완전 과학이에요. 물을 끓일 때 도달해야 하는 특정 온도가 있기 때문에 온도와 시간을 정확히 재는 것이 필수죠. 이 과정에선 팔 아파도 계속 저어야 해요. 다들 대단하죠. 술 한 잔 먹겠다고. (웃음)

다 끓여냈다면 이젠 몰트와 물을 분리할 차례. 물을 빼내고 남은 몰트는 마치 커피를 내리고 난 뒤의 찌꺼기랑 비슷하다. 실제 사용한 몰트로 천연비누나 쿠키도 만들 수 있다. 걸러낸 물은 다시 온도와 시간을 재며 끓인다. ‘에일’은 35분 동안 끓인 후 ‘홉’을 넣어야 한다. 맥주 종류마다 홉을 넣는 시간이 다른데, 그 시점이 향을 좌우한다. 기다리는 동안, 역시 맥주가 빠질 수 없다. 전에 만들어 놓은 수제맥주를 나눠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것은 공방만의 또 다른 묘미다.

수제맥주 만드는 사람들은 왠지 슈퍼에서 파는 맥주는 안 드실 것 같아요. 혹시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는 상업맥주가 있나요?
상업맥주 중에는 ‘클라우드’요. 근데 맥주는 맛에 정답이 없어요. 누구는 이게 맛있고, 누구는 저게 맛있으니까요. 특히 수제맥주가 그렇죠. 맛없는 맥주가 딱 하나 있다면, 상한 맥주겠죠.

수제맥주 양조의 좋은 점은 뭘까요?
매일 새로운 술을 만들고, 내가 직접 만든 술을 마시고 하는 자체가 좋죠. 그리고 내가 만든 술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도 좋고, 그걸 맛있다고 해줄 때도 좋죠.

공방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언젠가 맥주를 전혀 못 드시는 분이 양조에 참가한 적이 있어요. 술을 아예 못 하는 건 아니고, 맥주만 못 드시는 분이었어요. 그래서 궁금했대요. 사람들이 왜 맥주를 마시는지. 직접 만들어서 먹어보면 괜찮을까 싶어 오셨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35분이 지났다. 레시피대로 용량을 맞춘 여러 종류의 홉을 끓인 물에 넣었다. 홉을 넣자마자 공방 안에 상큼한 향이 퍼졌다. 브루어 중 한 명이 말했다. “전 특히 홉향으로 수제맥주를 마셔요. 그래서 오늘 조금 더 넣어 보려고요.” 자기 취향에 따라 재료를 다양하게 넣어서 만들 수 있는 것, 수제 맥주의 가장 큰 매력이다.

홉을 다 넣고 끓여낸 것은 30도 정도로 다시 식히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깨끗하게 소독한 통에 호스를 이용해 담은 후 이스트를 넣는다. 이때 중요한 건 ‘침이 튀지 않아야’ 한다는 것. 조금이라도 세균이 들어가면 맥주가 제대로 발효되지 않아 다 망쳐버린다고 한다. 다들 입을 굳게 다물고 마지막 작업을 마쳤다. 이제 통에 담은 것을 공방 창고에서 일주일 정도 발효하고 나면, 각자 맥주병에 나눠 담아가는 것으로 맥주 만들기가 끝난다.

드디어 수제맥주 한 통이 완성됐네요. 꽤 많은 수고가 따르는 것 같아요.
힘드셨죠? (웃음) 처음엔 이렇게 고생해서 맥주를 만드는 게 너무 유별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곳에 오니까 모두 저랑 같은 생각을 가진 ‘유별난 사람들’이 있어서 좋더라고요. 맥주를 좋아하고, 또 저와 같이 유별난 사람이라면 누구든 오시라고 말하고 싶어요!

 

비어랩 공방에서 만난 브루어들이 추천하는 맥주 가게

 

척스 탭하우스

20여 개 탭들이 수제맥주 마니아들의 발길을 붙드는 ‘크래프트 맥주 전문 탭 하우스’다. 특히 '유자 페일 에일'은 유자 본연의 향긋함과 맥주 홉 향의 조화가 훌륭한 맥주로, 수제맥주만의 특별함을 맛볼 수 있다. 다소 한적한 옥수동의 아파트 단지 안에 위치했지만, 진짜 맥주 맛을 찾아 유람하는 마니아들에게 위치 따위는 일도 아니다.

영업시간 매일 18:00~02:00
주소 서울시 성동구 독서당로40길 33 [지도보기]
가격대 수제맥주 6,000~12,000원

(이미지='척스 탭하우스' 페이스북 출처)

 

베베양조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베베양조'는 곧 직접 생산한 수제맥주를 판매할 예정이라 더욱 기대를 모으는 곳. 아담한 공간 한 켠에 놓여있는 거대한 양조 기계들이 수제맥주를 기다리는 이들의 시선을 더욱 사로잡는다. '골든 에일'과 주인장의 솜씨가 느껴지는 안주 메뉴들을 먼저 맛볼 수 있다.

영업시간 평일 11:30~24:00, 토 18:00~24:00
주소 서울시 강남구 봉은사로68길 23 [지도보기]
가격대 골든에일 6,500원, 감자튀김, 함박스테이크 등 판매

(이미지='베베양조' 인스타그램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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