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는 장인정신, 시간, 노력이 담긴, 공(功)이 들어가야 얻어지는 단어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제화, 수제정장, 수제공예품의 가치를 기성의 그것들보다 높이 산다. 맥주도 마찬가지. 대기업이 주도해 온 국내 맥주 시장에 최근 몇 년 사이 소규모 양조장의 수제 맥주 유통이 늘어난 것은 맥주에 ‘수제’가 붙었을 때 더해지는 프리미엄 즉, 깊고 다채로운 맛을 몸소 체험한 ‘맥덕(맥주 덕후)’들의 애정 덕택일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수제맥주를 맛본 ‘맥덕’들은 나아가 자신이 원하는 맛의 맥주를 직접 만들기에 이르렀다.

이제 ‘맥덕’들은 수제맥주 공방을 찾아다닌다. 그중 양재동에 있는 ‘비어랩 협동조합(이하 비어랩)’은 맥주를 좋아하는 여러 명이 뜻을 같이하여 출자한 단체로, 맥주만을 위한 공간인 수제맥주공방과 보틀샵을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인디포스트는 2회에 걸쳐 비어랩 수제맥주공방 기사를 게시한다. 먼저, 비어랩 구충섭 대표에게 수제맥주에 관해 이것저것 물었다.

비어랩협동조합장 구충섭

공방엔 주로 어떤 사람들이 오나요?
자기가 원하는 맥주를 직접 만들기 위해 오는 사람들, 주로 자가양조하는 분들이 이용합니다. 오늘은 맥주 동호회에서 양조하러 오셨어요. 맥주 사업을 꿈꾸는 분들이 오기도 하고요. 연령대는 20대 초반부터 50대까지, 직업도 다양한 편이에요.

자가양조자 외에 맥주를 처음 만들어보려는 사람을 위한 수제맥주 수업이 있나요?
별도로 ‘가이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보통 자율양조하는 분들과 같은 방법으로 공방 대여 예약을 하신 후 가이드를 따로 신청하면 됩니다. 더 전문적으로 맥주를 만들어보고자 하는 분들은 아카데미에서 많이 배우시더라고요. 저희는 아카데미처럼 몇 달 과정으로 교육하진 않지만, 가이드를 두 번 정도 받으면 공방에서 혼자서도 브루잉할 수 있습니다. 어렵지 않아요. 여러 번 직접 하다 보면 과정이 손에 익어서 눈 감고도 만들 수 있습니다. 발로도 만드는 분 있어요. (웃음) 그만큼 쉽다는 얘기예요.

비어랩 공방 내부

왠지 ‘양조’라고 하면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들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이드 하나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같이 맥주를 만드는 거예요. 가이드가 없으면 자가 양조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일단 수제맥주 양조 과정은 크게 ‘반곡물 작업’과 ‘완전곡물 작업’ 두 가지가 있는데, 반곡물은 두 시간 반, 완전곡물은 다섯 시간 정도 걸려요. 아무래도 처음엔 더 간단한 반곡물 작업으로 진행하고요. 한 번 만드는 양 즉, ‘한 배치’가 20리터입니다. 알코올 도수가 올라가면 재료비가 더 올라가죠. 보통 5.5도에서 6도짜리 맥주 한 배치를 만들 때 최종 단계인 병에 담는 과정까지 포함한 총 양조비용이 12만 원 정도 들어요. 만약 4명이 모여서 만들면 한 사람당 3만 원에 5리터를 만들 수 있는 거예요. 재료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생각만큼 부담스럽지 않죠. 가이드 비용은 추가되는 것인데, 5인 이하 3만 원 정도예요.

가이드는 비어랩협동조합원이 하나요?
현재 17명의 협동조합원 중 3분의 1 정도가 브루잉 가이드를 하고 있어요. 모든 조합원이 가이드 하실 수 있는 분은 아니고, 그냥 맥주를 즐기고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죠. 가이드 프로그램은 사전에 별도로 예약하면 그때 스케줄에 맞는 조합원이 나와서 진행하는 식이에요.

비어랩의 조합원은 어떤 분들인지 궁금해요.
한마디로 맥주 때문에 모이게 된 사람들입니다. 맥주 마시는 걸 좋아하는 사람, 맥주를 만드는 사람. 전통주를 제조하다가 맥주에 관심이 생겨 오신 분도 있고요. ‘소주파’도 있긴 합니다만 결국은 수제 맥주를 좋아하는 분들이죠.

‘협동조합’을 만들게 된 이유는 공동의 목표가 있어서겠죠. 조합원들의 궁극적 목표는 뭔가요?
원래 최종 목적은 수제 맥주를 만들어 파는 ‘브루어리’를 갖는 것이었어요. 맥주를 집에서 만들기는 힘들어요. 20리터 맥주를 만들 때 보통 5리터의 물이 증발하는데, 집에서 만든다고 하면 벽지들이 다 붕 떠버릴 거예요. 습기가 많이 생기거든요. 만드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여러 가지로 여건이 쉽지 않죠. 그래서 맥주를 편하게 만들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을 느껴 공방을 만들게 되었죠. 공방을 운영하다 보니 사업화된 것인데, 아직까지 수익은 없어요. 공방이 돈을 벌고 있는 수준은 아니거든요. 수제맥주를 만드는 모든 사람을 위해 열려 있는 공방이에요.

수제맥주에 도전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알려줄 팁이 있을까요?
맥주는 많이 마셔봐야 해요. 맥주를 만들기 위해선 스타일의 이해가 필요한데, 한 종류만 드시면 이해하기 어려워요. 스타우트, 페일 에일, IPA, 바이젠 같은 맥주 종류를 다 섭렵해봐야 맥주를 만들 때 접근이 쉬워져요. 마셔보아야 어떤 맛을 만들지 알게 되기 때문이죠.

수제맥주를 즐기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늘고 있는데 좋은 현상입니다. 소비자에겐 다양한 수제맥주가 제공될 것이고, 비어랩처럼 개성 있는 공간들의 성장으로 이어진다면 궁극적으로 다채로운 문화가 형성되는 것이니까요.
맞습니다. 비어랩도 최종목표인 브루어리를 갖게 된다면 자체적으로 다양한 맥주를 선보일 수 있겠죠. 그러면 마진 구조를 개선해 더 합리적으로 제공할 수도 있고요. 최근 대기업의 맥주 포지션에 수제맥주, 소규모 브루어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느는 추세예요. 요즘 저성장시대라고 하는데 비율이 늘었다는 것을 보면 앞으로 수제맥주 시장의 성장은 희망적일 것 같아요.

공방 운영 외 다른 일을 모색하고 있나요?
공간과 시설 대여 이외에도 몰트, 홉 같은 맥주 재료도 판매하고 있어요. 맥주를 수입하는 일도 하고요. 2차 사업으로 경복궁 옆에 조합원들이 운영하는 펍을 준비하고 있어요. 9월 오픈 예정입니다. 그리고 대전에도 비어랩 공방을 운영하고 있어요.

‘수제맥주’가 왜 좋은 걸까요? 그리고 비어랩 공방의 특별함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와인은 포도로 만들잖아요. 만약에 포도 농사가 잘되면 그만큼 와인이 맛있어져서 가격도 오르거든요. 그런데 맥주는 다 ‘사람 손’이 맛을 좌우해요. 만드는 사람마다 맛이 다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수제맥주의 특징이죠. 흔히 와인은 신이 만든다고 하고 맥주는 사람이 만든다고도 해요. 그래서 공방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맥주는 모두 특별하죠. 직접 만들면 재미도 재미고 더욱 다양한 맛의 맥주를 만들 수 있어요.

 

+ 비어랩협동조합 속 가게
세계맥주 보틀샵

양조 공간 옆에 보틀샵이 있던데, 라인업이 화려하더라고요. 비어랩에 맥주만 사러 오시는 분도 있을 것 같아요.
네, 많이 있는 편이에요. 공방이 유지될 수 있는 것도 보틀샵의 판매수익 때문이고요. 제가 알기로 서울에 열 군데 정도 보틀샵이 있는데, 비어랩 보틀샵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세계맥주뿐 아니라 제가 직접 수입해서 판매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맥주들이 엄청 다양합니다. 구성 기준이 있나요?
설명하기 쉽도록 나라별, 종류별로 모아 놓았어요. 이쪽은 미국 맥주예요. 미국 맥주의 특징은 ‘호피’한 맥주, 홉이 강조된 맥주고요. 벨기에에서는 맥주의 네 가지 순수 재료인 몰트, 홉, 물, 이스트만 쓰지 않고, 설탕, 허브, 과일 따위를 넣어 굉장히 다채로운 맥주가 나오죠. 독일 맥주도 있고요. 덴마크, 영국 것도 여기 있네요.

▼가장 좋아한다는 맥주, 벨기에의 ‘스트루이스 패넷포트 리저브’

가장 좋아하는 맥주는요?
잠시만요, 제가 가지고 올게요. (잠시 후) 이게 가장 좋아하는 맥주입니다. 지금은 안 파는 거라 다른 곳에 뒀어요. 제가 수입했던 것들인데 다 팔려서요. 벨기에 맥주인 ‘스트루이스 패넷포트 리저브’에요. 이 맥주는 브루어리가 특이해요. 3년 숙성해 출고한 걸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겨서 숙성한 거예요. ‘리저브’가 숙성했다는 걸 의미해요. 맥주가 색다르죠. 얘들은 맥주가 아니라 거의 와인이에요. 전부 매년 ‘마셔야 할 세계 100대 맥주’에 속하고, 벨기에 맥주 라인업 베스트 30위 안에 속해 있어요. 어떻게 보면 벨기에 트라피스트 맥주가 제일 유명하지만, 이건 현지에서 거의 예술맥주로 유명한 것들이라 더 특별해요. 다시 수입해서 판매할 예정이에요.


▶ 비어랩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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