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멸망 이후의 세계를 배경으로 만든 SF 영화를 ‘포스트 아포칼립스(Post Apocalypse)’라는 서브 장르로 분류하기도 한다. 단편 애니메이션 <ROSA>는 이 장르의 전형적인 스토리를 따르고 있다. 어둡고 우울한 배경화면, 이유를 알 수 없는 사이보그들의 전투, 생물 멸종 후에도 꽃과 나비라는 생명체로 표현되는 막연한 희망 따위는 다른 포스트 아포칼립스 물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디테일은 대단해서, 대재앙 이후의 세계관, 캐릭터의 선명성, 미래 테크놀로지와 사이보그 액션의 현란함에 찬사가 이어졌다. 놀라운 것은, 이 영화를 만든 스페인의 헤수스 오렐라나(Jesus Orellana) 감독이 만화가 출신이며, 예산 한 푼 없이 혼자서 1년 동안 자신의 노트북으로 만들어 냈다는 사실이다.

2011년 시애틀 국제 영화제에서 시연된 이 단편은, 평론가들의 호평이 이어지면서 그해 유수의 영화제에 잇따라 공식 초청되었다. 영화에 대사를 전혀 넣지 않은 오렐라나 감독의 의도대로, 온라인에 무료 배포한 영화는 그 접근이 쉬운 무국적성과 높은 작품성으로 인해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스페인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고야상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에서 수상했다. <블레이드 러너>(1982), <매트릭스>(1999~), 일본 만화, 중국 쿵후영화에 열광했던 감독은, 혼자만의 상상력과 구식의 애니메이션 툴(Blender, Daz Studio), 맥프로(Mac Pro) 노트북 1대로 이 모든 성과를 만들어냈다. 덕분에 오렐라나 감독은 할리우드의 러브콜을 받았고, 일러스트레이터에서 3D 애니메이션 디렉터로 변신하여 새로운 프로젝트에 나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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