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 웨스트(Ti West) 감독은 누구에게도 간섭을 받지 않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창작 활동을 원한다. 호러 장르에서 다양한 배우와 감독 경력을 쌓으며 좋은 평가를 받았던 그는 영화 <Cabin Fever 2>(2009)의 감독을 맡았다가 제작자와 영화사 간부들의 간섭이 너무 심했다며 영화에서 자신의 이름을 제외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그가 제작자 길드의 회원이 아니어서 그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듬해에는 <The Haunting in Connecticut>(2009)의 후편 <The Haunting in Georgia>의 감독을 맡았으나, 같은 문제가 반복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중에 감독을 그만 두었다. 간섭을 싫어하는 성격의 그는 A24영화사를 만나면서 돌파구를 찾았다. 100만 달러(약 12억 원)의 저예산 영화 <X>(2022)로 평단의 호평과 상업적인 성공을 모두 거머쥐었고, 코로나 봉쇄기간 중에 급하게 시나리오를 써서 연속 촬영에 나선 프리퀄 <Pearl>(2022)마저 성공을 거두었다. 이제 그는 올해 7월에 개봉하는 시퀄 <MaXXXine>(2024)로 3부작 ‘X-Trilogy’를 완성하려고 한다.
3부작의 시작 <X>(2022)
티 웨스트가 각본, 감독, 제작을 모두 맡은 <X>는 1979년 텍사스 농촌의 한적한 농가 주택을 배경으로 하는 슬래셔 호러다. 연쇄 살인자는 그곳에 사는 노부부 ‘펄’과 ‘하워드’이며 방문객 중 유일한 생존자인 소녀 ‘맥신’으로, 정상이 아닌 노파가 주요 가해자로 등장하는 서브장르 ‘사이코-비디’(Psycho-Biddy) 장르다. 영화의 주연 미아 고스(Mia Goth)는 노파 ‘펄’과 소녀 ‘맥신’의 1인 2역 연기를 했는데, 노파 역으로 분장하는데 무려 10여 시간이 걸리는 고생을 견뎌야 했다. 그는 영화 <서스페리아>(2018)에서 주인공의 룸메이트 ‘사라’를 연기한 바 있으며, 시리즈 영화 <트랜스포머>의 주연을 맡았던 샤이아 러버프(Shia LeBeauf)와는 부부 관계다. 2022년 SXSW 행사에서 처음 공개된 영화 <X>는 로튼토마토 93%의 평점과 함께 다수 평론가들의 칭찬을 이끌어 냈고, 100만 달러의 적은 제작비로 벌어들인 박스오피스 수입은 15배에 이른 흥행작이 되었다.
프리퀄 <Pearl>(2022)
영화의 배경은 그로부터 61년 전인 1918년, 영화 <X>에 나왔던 텍사스의 농장으로, 어린 시절 댄서를 꿈꾸던 소녀 ‘펄’이 어떻게 불안정한 심리의 살인마가 되는지 보여준다. 티 웨스트 감독은 영화 <X>의 촬영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잠시 중단된 사이에, 미아 고스와 줄거리를 함께 상의하면서 영화의 프리퀄을 써내려 갔으며, A24와의 협의를 마치고 연이어 두 영화의 제작에 들어간 것이다. 2022년 3월 <X>의 개봉 후 6개월 만인 9월에 프리퀄 <Pearl>을 연이어 극장에 올렸으며, 전편과 동일한 로튼토마토 평점 93%에 1천만 달러가 넘는 박스오피스 수익을 올렸다. 영화의 주역인 미아 고스는 두 번째 영화의 프로듀서까지 맡았고 연기에 대해서는 변함없는 찬사를 받았는데, ‘정신 이상의 디즈니 영화’라 색다르게 묘사한 평론가도 있었다. 감독은 호러 클래식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2003)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3부작의 마지막 <MaXXXine>(2024)
화려한 영화배우를 꿈꾸는 ‘맥신’을 주인공으로, 이번에는 1980년대의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로 배경을 옮겼다. 영화 <Pearl>의 마지막 장면에서 살아남은 ‘맥신’은 그 사건으로부터 수년이 지난 1985년,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의 배우가 되면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사건을 다룰 것으로 보인다. 앞서 ‘펄’이 댄서가 될 수 없었던 분노가 폭발했던 것처럼, ‘맥신’은 영화 <X>에 나왔던 대사처럼 영화배우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스트레스가 쌓여 분노로 표출될 것이다. 티 웨스트 감독은 2022년 토론토 영화제에서 <Pearl> 후속작의 티저 영상을 발표하였는데, 할리우드의 광고판을 패러디한 공중 영상을 보여주었다. 연기파 배우와 공동 프로듀서의 입지를 굳힌 미아 고스는 차기작 <Infinity Pool>(2023)에 이어 <Frankenstein>(2024)에서도 주연급으로 출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