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 간 명확하던 젠더 역할이 세월이 흘러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유해한 남성성’(Toxic Masculinity)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생겼다. 사회나 문화적인 환경 아래 남자에게 끊임없이 공격적이고, 적극적이며, 지배적인, 그리고 거칠고 대담한 행동을 요구하는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최근에는 이를 제대로 저격한 영화까지 등장했다. 지난해 초 선댄스 영화제에 첫 선을 보인 <Fair Play>(2023)인데, 상영 후 다수의 회사들간 경쟁이 붙은 끝에 넷플릭스가 2,000만 달러라는 거금을 들여 권리를 확보한 화제작이다. 해외에서는 극장에서 짧게 개봉한 후 2023년 10월에 넷플릭스에 바로 공개되었다. 로튼토마토에서 86%의 높은 평점을 받았고, ‘현대판 <월스트리트>’ 또는 ‘젠더 정치학’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냈다.

영화 <페어 플레이>(2023) 예고편

 

약한 남자 vs 강한 여자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증권회사 애널리스트 동료 ‘에밀리’와 ‘루크’는 결혼을 약속한 커플이지만, 사내 연애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회사 방침에 따라 관계를 비밀로 하고 있다. 공석이 된 임원 자리에 루크가 오를 것이란 소문을 듣고 두 사람은 자축했으나, 결국 그 자리는 에밀리가 맡게 된다. 이제 에밀리가 루크의 상관이 되었지만, 에밀리가 더 유능하다는 사실을 루크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양가 양친은 두 사람의 결합을 재촉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갈수록 편하지 않고 꼬여만 간다. 남자가 여자의 상사가 되면 괜찮고, 여자가 상사가 되면 문제가 되는 것일까? 영화는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포커스를 맞춘다.

영화 <페이 플레이>에서 갈수록 관계가 악화하는 두 사람

 

작가 클로에 도몬트의 감독 데뷔작

뉴욕대 아트스쿨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인기 드라마 <Ballers>, <Suits>, <Billions> 등에서 10여 년 이상 집필과 제작 현장에서 일한 클로에 도몬트(Chloe Domont)의 감독 데뷔작이다. 그는 작가실에서 동료 작가들과 함께 일하면서 데뷔작에 관한 영감을 얻었다. 사회에서 제대로 대접받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남자들처럼 공격적이며 적극적인 태도를 취해야 하며, 그와 교제하던 남성들보다 먼저 승진할 경우 커플은 하나같이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는 ‘취약한 남성 자아’를 소재로 놓고 자신의 영화 데뷔작 시나리오를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영화 <헤일, 시저!>(2016)의 올든 에런라이크(Alden Ehrenreich)와 넷플릭스 드라마 <브리저튼>(2022)의 영국 배우 피비 디네버(Phoebe Dynevor)가 주연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영화 <페어 플레이>의 주요 장면에 관해 설명하는 도몬트 감독

 

인상적인 엔딩 신

* 결말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느 정도 영화가 진행되면 많은 사람들이 영화의 결말을 지레짐작할 것이다. 대부분의 젠더 대결 영화처럼 한쪽이 능력을 발휘하여 통쾌하게 승리하거나, 결국 오해가 눈 녹듯이 풀려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할 것이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에로틱한 장면으로 시작한 영화는, 에밀리가 자신의 승진 소식에 불안한 표정을 짓는 순간 ‘젠더 다이내믹스’의 본색을 드러낸다. 이 영화가 통상적인 젠더 대결 영화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마지막 엔딩 신에 드러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까지, 혹은 평생동안, 한 번도 자신의 잘못이나 나약함을 인정하지 않고 떳떳한 자세를 취하던 ‘취약한 남성성’을 인정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도몬트 감독이 젠더 대결에서 ‘유해한 남성성’(Toxic Masculinity)에 방점을 찍는 마지막 일격일지도 모른다.

도몬트 감독이 설명하는 영화 <페어 플레이>의 엔딩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