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어드 러스틴(Bayard Rustin)은 미국의 인권 운동가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역사적인 ‘I Have a Dream’ 연설로 유명한 1963년 워싱턴 행진(March on Washington)을 기획하고 현장에서 진두지휘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에 관한 최초의 전기 영화 <러스틴>(Rustin)이 올해 11월 넷플릭스에 공개되었을 때만 해도, 대다수 미국인들이 그가 누구인지 잘 알지 못할 정도로 인지도가 미미했다. 그가 일반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고, 그의 공헌도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배경에는, 당시 사회적으로 금지되고 배척되었던 러스틴의 성지향성 때문이었다. 영화 <러스틴>의 조지 C. 울프(George C. Wolfe) 감독이나 주연 배우 콜맨 도밍고(Coleman Domingo) 역시 대외 공개된 동성애자이며, 영화에는 당시 사회와의 갈등과 개인적 고뇌가 곳곳에 묘사되어 있다. 올해 고담 인디펜던트 필름 어워즈 수상에 이어 골든글러브 남우주연상과 오리지널 송 수상 후보에 올랐으며,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부문 후보에도 오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영화 <러스틴>(2023) 예고편

 

성소수자였던 인권운동가

그는 1940년대부터 미국의 주요 인권운동 현장에서 활동했으며, 마틴 루터 킹 목사에게 비폭력주의를 설파한 인물 중 하나였다. 영화의 주요 배경이 된 1963년 워싱턴 행진에서 기록적인 25만여 명을 모은 핵심 인물이었지만, 자신의 성적 정체성 문제로 전면에 나서지 않았으며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성지향성을 굳이 숨기려 들지 않았으며, 1953년 파사데나 공원의 차 안에서 젊은 남성들과 벌인 행위가 발각되어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되면서 처음으로 대중에게 그 사실이 알려졌다. 그 후로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막후에서 인권 운동을 지휘하였으며, 노동운동과 뉴라이트 운동에 힘을 쏟기도 했다. 그가 1987년 75세를 일기로 사망하자, 레이건 대통령이 그의 치적을 새롭게 평가하였고, 뒤이어 그의 이름을 딴 건물, 도로, 행사 등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오바마 대통령 시절에는 그에게 자유의 메달(Medal of Freedom)이 수여되기도 하였으며, 마지막 10여 년 동안 그의 곁을 지킨 파트너 월터 네이글(Walter Naegle)을 중심으로 LGBTQ 커뮤니티의 추모 열기가 고조되었다.

PBS <The Story of Bayard Rustin: Openly Gay Leader in the Civil Rights Movement>

 

오바마 부부가 제작 지원한 영화

일반인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았고 역사적으로 저평가된 그의 전기 영화가 제작된 데는 오바마 부부의 막후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 그에게 대통령 메달을 수여하고 퇴임한 부부는 최근 설립한 제작사 하이어 그라운드 프로덕션(Higher Ground Production)의 세 번째 영화로 <러스틴>을 택했다. 부부는 프로젝트 출범 후 넷플릭스 등 투자자를 찾아다니며 설득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제작이 종료된 후에는 영화제나 시사회에 참석하여 영화를 홍보하였고, 영화의 크레딧에 총괄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시사회에서 참석하여 관객 앞에서 “그는 미국 역사의 흐름을 바꾼 중요한 인물 중 한명으로, 그가 없었다면 내가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며 역사적 관점에서 그의 역할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HBCU 영화제에 참석하여 <러스틴>을 소개하는 오바마 전 대통령

 

아카데미 영화제의 기대작

영화는 11월에 넷플릭스에 올라왔지만, 그의 인지도가 낮아서 그런지 크게 주목을 받거나 차트 상위에 오르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러스틴을 연기한 콜맨 도밍고의 연기는 평단의 찬사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생전에 촬영된 러스틴의 영상을 보면서 그의 말투와 동작, 그리고 태도나 버릇을 최대한 비슷하게 재현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 덕택에 현재 골든글러브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내년 초에 결정되는 아카데미상 후보군에도 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 외에도 브랜포드 마살리스(Branford Marsalis)의 영화음악과 레니 크라비츠(Lenny Kravitz)의 주제곡 ‘Road to Freedom’도 수상이 기대되는 부문 중 하나다. 전작 <Ma Rainey’s Black Bottom>(2020)에서 깊은 영감을 받은 울프 감독은 레니 크라비츠에게 트롬본 쇼티(Trombone Shorty)의 연주로 마지막을 장식하기를 간곡히 주문했다는 후문이다.

레니 크라비츠 <The Making of ‘Road to Freed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