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끝없이 달리며 처음과 끝을 함께하고 싶은 곡들이 있다. 여정의 시작과 마지막, 조금의 빈틈도 없이 귓가를 희구하며 거침이 없는 자유로움. 낯선 곳이든 익숙한 곳이든 상관없이 분위기를 환기하며 에너지를 발산시키는 음악에 자극받아 끝없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순간.

다양한 음식을 골라 먹는 뷔페처럼 세상 모든 장르를 흡수하고 펼쳐 놓는 밴드 ‘오프 더 메뉴’(off the menu, 이하 오프더메뉴)와의 대화 속에서 오랜만에 꾸밈없는 투명한 즐거움을 느꼈다. 소년만화 주인공들처럼 꿈과 목적이 확고한 그들이 3년이 넘는 시간동안 차곡차곡 준비한 정규앨범 <Every Point of View>. 이에 관한 이야기는 마치 대서사시처럼 문장을 끝없이 이어 붙여도 모자람이 없어, 마치 어디론가 여행을 떠났다 돌아온 기분이었다. 이 놀랍고도 패기 넘치는 이야기들은 자유로움 그 자체로, 앞으로도 영원히 새로움을 아로새겨 낭만과 열정이 넘치는 곡을 만들 것이란 기대를 하게했다.

단순한 유행이 아닌, 항상 새로움을 선사할 밴드. 이들의 앨범 커버에 담긴 뷰마스터처럼 어디서든 놀라운 장면을 목격할 수 있길 고대하게 되는 앨범을 가지고 온 오프더메뉴의 안정준, 이형섭과 정규앨범 <Every Point of View>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Q 오프더메뉴 소개와 각자 소개 간단하게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정준 저희는 이형섭과 안정준이 하고 있는 2인조 밴드고요. 저희 이름처럼 오프더메뉴는 메뉴에 없는 것이라는 뜻이에요. 레스토랑에 가서 “오늘은 메뉴에 없는 쉐프님이 추천해주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요?”라고 물으면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음식을 추천해주는 곳이 있거든요. 그런 것처럼 저희는 한가지 음식이 있는 게 아니라, 그날 그날 다양한 음식을 노래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앨범에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넣는 걸 좋아해서 그때그때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있는 밴드입니다.

 

Q 처음부터 음악을 시작하면서부터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이름인가요? 아니면 밴드 멤버를 모으고 나서 만들게 된 이름인가요?

안정준 제가 옛날에 아트 크루 같은 걸 했어요. 그래픽 디자이너, 서양화가, 일러스트레이터 등등 다양한 작업을 하는 분들이 많았거든요. 음악하시는 분들도 있었고, 그때 크루 이름이 오프더메뉴였어요. 삼청동에 위치한 작업실이 있었는데 어느덧 모든 멤버들이 각자 할 일을 하면서 뿔뿔이 흩어지게 됐고, 그때 제가 그 크루들을 모았던 형한테 “나 밴드를 하고 싶은데 오프더메뉴란 이름을 쓰고 싶어”라고 말했고 그 이름을 계승해서 쓰고 있습니다.

 

Q 그간 멤버들 변화가 있었어요. 멤버 변화와 지금의 대형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나요?

안정준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는 안 했지만, 드럼 멤버인 승민이는 드럼 보다는 프로듀서를 하고 싶어 하는 친구인데 지금 군대에 있어요. 그 친구가 군대 다녀와봐야 확실하게 저희의 체제가 결정이 될 것 같아요. 그 전까지는 2인조로 다같이 얘기한 상태입니다.

이형섭 이 전에 있던 기타리스트 멤버는 더 공부에 집중하고 음향 제작 쪽을 공부하고 싶다고 학교로 돌아갔죠. 밴드 활동을 하면서 공부를 병행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저희한테 늘 미안해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저희에게 음향적인 도움도 많이 주고 있답니다.

Q 두사람이 밴드를 지탱하게 하는 힘이나 비결이 있을까요?

안정준 일단 둘이 제일 친하고요. 말이 제일 잘 통해요. 제가 어떻게 보면 이 친구한테 의지를 많이 하는 편이기도 하고요. 정규 만들면서 예민해지기도 하고 다툴뻔 한적도 있었는데, 사실 오래전부터 알던 친구 사이다 보니 예전에 다 싸워나서 이젠 서로 잘 참고 잘 끝내는 것 같아요.

이형섭 이제 서로의 표정이 보여요. 기분 나쁘면 표가 나고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금방 조심하고 사과하고 하면서 밴드를 지탱하는 것 같아요.

 

Q 그렇다면 이게 두 사람 사이에 신념이 매우 두텁다는 이야기인데, 형섭 씨는 정준 씨를 어떤 계기로 신뢰하게 됐나요? 서로를 무한 신뢰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이형섭 일단 정준이가 음악을, 일을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제가 항상 옆에서 보고 있잖아요? 고생하는 걸 보기도 했고요. 항상 팀을 위해서 자기가 좀 더 희생하는 걸 봤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정말 고맙고 의지가 되는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하니 괜히 멜랑꼴리해지네요.

안정준 형섭이는 힘들어도 나간다라고 얘기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앞으로도 나가지 않을거라고 믿고요. 그리고 지금 나가기엔 아깝지 않나요? (웃음)

이형섭 맞아. 시간도 그렇고 아까워서라도 계속 열심히 해야죠.

 

Q 두 사람이 처음 알게 된 게 학교죠? 그때와 지금 서로의 인상이 많이 달라졌나요?

이형섭 저는 당시에 대학교에 막 들어갈 때였어요. 그냥 별 생각을 안 하고 싶고 너무 다 귀찮은 거예요. 그래서 머리를 비우고자 입학하기 한 3일 전에 머리를 밀고 들어갔어요. 너무 귀찮아서. (웃음) 제가 시력이 안 좋은 걸 22살 때 알았어요. 그래서 늘 찌푸리고 다녔는데 그래서 그런지 제 첫인상은 좀 쌔지 않았을까요? 정준이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아요. 그땐 좀 더 어려 보였던 것 같기도 하고.

안정준 음악을 하면서 점점 안색이 어두워졌죠? (웃음)

 

Q 그 당시 서로 어떤 음악적 교류가 있었나요?

안정준 형섭이는 프랭크 오션(Frank Ocean)을 좋아해요. 저희가 처음 만났을 땐 제가 R&B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거든요. 물론 지금은 너무 좋아하지만, 서로 엄청 달랐어요.

이형섭 그렇지만 정준이가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어요. 실제로 발매된 곡 중에 보면 같이 곡 작업한 것도 많고요.

‘Lie wit me’

Q 그럼 형섭 씨가 그 당시에 하고 싶었던 음악은 어떤 스타일이었나요?

이형섭 최근에 발매한 ‘Lie wit me’라는 곡 스타일을 원래 하고 싶었기 했고, 정준이랑도 잘 어울려서 이거 하자 이렇게 하게 됐어요.

 

Q 정준 씨는 형섭 씨가 음악을 만들어 왔을 때 어떤 반응이었나요?

안정준 저는 애초에 다양한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음악 저 음악 가리는 게 딱히 없어요. 뭔가 일단 만들어 놓으면 그걸 오히려 좋아하죠. 왜냐하면 제가 못 만드는 멜로디와 감성이 있을 건데 형섭이랑 비교해보면 확연하게 보이거든요. 거기에 제가 후추 뿌리듯이 의견을 더하면 노래가 금방금방 나와요. 그래서 오히려 써오면 편하긴 하죠. 아, 하나 마음에 안 드는 게 있긴 했는데 여름에 써온 노래 같은 거. (웃음)

이형섭 그땐 막 썼죠. (웃음)

 

Q 데뷔 때부터 주목받았고, 최근 <그레이트 서울 인베이전>을 통해 인상깊은 모습도 보여주고 인지도도 올랐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데뷔 4년만에 첫 정규앨범이 나왔어요. 요즘 트렌드 자체가 정규를 빨리 내지 않는 것이긴 한데 오프더메뉴의 첫 정규가 조금 늦게 나온 이유가 있을까요?

이형섭 원래 <Contact> EP를 정규로 내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정규부터 내기엔 저희가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우선은 EP를 발매하고 그 다음에 정규 작업을 진행해보자고 하다 보니 이제 조금 시간이 많이 길어져서 지금까지 온 거 같아요.

안정준 완전한 밴드의 대형이 완성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바로 정규를 내버리는 것에 제 스스로 자신이 없었어요. 정규앨범이란 아티스트의 명함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리고 이 전 까진 이게 내가 계속해서 하고 싶은 음악일까에 관해 확신이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Contact>는 곡 수가 8곡으로 많았지만 정규라고 칭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EP <Contact> 앨범 커버

Q 이렇게 오래 활동을 하다가 정규를 내는 밴드들은 보통 정규 전에 냈던 싱글들과 정규, 이렇게 Era가 나눠지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가 초창기 Era였다면 이번 정규부터는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는 거잖아요. 아예 정규 전 곡들연 공연하지 않는 밴드들도 있고요. 이번에 정규를 낸 게 나름 오프더메뉴에게는 터닝포인트가 될까요?

안정준 저희는 이걸 오프더메뉴 2.0이라고 말해요. 옛날에 썼던 곡을 합주하고 하면 솔직히 지루할때도 있어요. 하지만, 공연할 때에는 사람들이 더 듣고 싶어 하시는 걸 들려주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 정규 곡 전의 곡들은 셋리스트에서 많이 빠지게 될거같아요.

 

Q <그레이트 서울 인베이전> 이후에 뭔가 달라진 게 있을까요?

안정준 많아요. 그때 만났던 팀 중 제일 친한 사람이 팔칠댄스에서 베이스 연주하는 최준영이라는 친구인데요. 제가 키스누를 되게 좋아했었고 팬이었어서 그분을 이전부터 잘 알고 있었어요. 저희가 곡을 만들 때 베이스라인은 최준영님이 도와주면 좋겠다, 참고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실제로 친하게 지내게 돼서 많은 조언을 얻고 있어요.

이형섭 전 그때랑 지금을 비교해보자면 20Kg을 뺐어요. 주변 형들이 맨날 놀렸죠. (웃음) 그 프로그램 출연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 좀 더 날 것으로 평가받았죠. 너네 공연 너무 재미없어. 너네 멘트도 너무 재미없어. 팬분들이나 저희를 보러 와 주신 분들은 항상 “너무 좋았어요.”라고 말씀해주는데, 저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같은 동종 업계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더 만나고 저희에게 많은 피드백을 줘서 좋았어요. 그렇게 해서 좀 많이 고친 것도 많고요. 그래서 지금은 연주할 때 모션을 더 크게 하기도 하고 이것저것 참고 중입니다.

안정준 교류할 수 있는 게 많아서 좋긴 해요. 이번에 ‘Cherokee’라는 노래 있는데 제가 믹스를 PAIIEK형한테 맡겼거든요. 그 형이 옛날부터 프렌치팝을 되게 좋아하고 실제로 스위스에서 살다 온 분이기도 해서 좀 다양한 장르로 곡을 변형시킬 수 있었어요. 그 형이 나상현씨밴드에서도 믹스를 다 하는데, 나상현씨밴드와 저희의 믹스랑 결이 다르니까 어떤 결과물이 나올까 궁금했어요. 결과물을 들어보니 너무 잘 맞는 거예요. 말도 너무 잘 통했고요. 뭔가 그런 쪽에서 교류를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레이트 서울 인베이전> 라이브 영상

Q 정준 씨는 데뷔 전에 작곡가가 되고 싶었고, 형섭 씨는 마냥 베이스가 멋져서 연주를 시작하게 됐어요. 오프더메뉴가 되기 전 본인이 꿈꾸던 아티스트의 삶이 지금과 같은가요?

안정준 저는 엄밀히 따지면 되고 싶었던 건 피아니스트였어요. 혹은 영화 음악 작곡가. 원래 작곡과를 가고 싶었어요. 솔직히 노래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요. 노래하는 걸 원체 싫어하고 사람들 앞에 서는 것도 못하고. 그런데 어쩌다 제가 노래를 썼는데 들려줄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러다가 제가 너무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에게 곡을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죠. 하지만 당장 곡을 줄 수 있는 사람도 없고, 그랬더니 주변에서 그냥 너가 직접 불러보라고 하더라고요.

사실 전 가족들 앞에서도, 노래방 가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 그래서 그런지 이번 단독공연 때 오신 부모님이 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부모님에게 이젠 내가 아빠보다 잘하지? 하고 이야기도 하고. (웃음)

이형섭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베이스를 치게 됐어요. 원래는 드럼을 치고 싶었는데 학교에서 좀 힘센 친구가 와서 “야, 너 베이스 쳐.” 이러는 거예요. “베이스가 뭔데?” “밴드에서 가장 멋있는 게 베이스야.”라고 그 친구가 말해서 연주를 배우기 시작했죠. 중학교땐 취미로 밴드를 했고 고등학교에 올라가서야 음악을 전문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Q 둘 다 목표를 이뤘네요. 지금은 그때와 다른 꿈을 꾸고 있을 것 같아요.

안정준 저는 하고 싶은 게 좀 자주 바뀌는 것 같아요. 하지만 변함이 없는 건 여전히 얌전히 있는 걸 더 선호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밴드를 하다 보면 얌전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젠 얌전하기 보단 즐기고 더 뛰겠다고 생각을 해요.

저는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는 항상 약을 먹었어요. 너무 떨려서 부정맥이 올까봐. (웃음) 예전에 한번 약을 안 먹고 무대에 올라갔더니 맥박수가 190이 넘는거에요. 그래서 이길 은 내 길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죠. 그러다가 저에게 터닝포인트가 온 게, ‘김두루미’라는 공연 시리즈예요. 저희 팬분들은 저희가 소극적으로 공연을 많이 해서 자연스럽게 조용하신 분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김두루미’는 기획 공연이다 보니 다양한 팀들이 모여서 에너지 넘치게 할 수밖에 없었죠. 그때 만감이 교차하면서, 처음으로 무대 위에서 떨리기보다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고, 공연하는 게 괜찮아진 것 같아요. 아이러니하게도, 이젠 환호가 적으면 제가 더 자신이 없어지더라고요. 그래서 더 재미있는 공연을 만들려고 합니다. 환호해주세요. 더.

이형섭 옛날에는 베이스로 업을 삼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 목적이 별로 없었어요. 오로지 목적은 한 가지. ‘베이스 열심히 하자!’ 이정도? 그런데 밴드를 활동을 하면서 음악도 만들어보고 공연도 실제로 해보고 하다 보니 이제 좀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베이스 연주만이 아니라 음악도 만들고 싶고 활동도 많이 하고 싶고, 세션도 많이 하고 싶고 그래요. 원래는 전문 세션맨만 하고 싶었던 적도 있어요. 저도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싫어했거든요. 멘트하는 것도 어렵고? 하지만 이런 이런 부분이 좀 적극적인 모습으로 많이 바뀐 것 같아요.

 

Q 결과적으로 둘 다 무대 위 경험이 늘어나면서 무대를 좀 즐기게 된 거긴 하네요. 영원히 고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잖아요. 그런데도 음악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오프더메뉴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한 것 같아요.

안정준 일단 저희 부모님은 제가 무대 공포증을 고친 걸 굉장히 좋아하세요. 그래서 밴드하기를 잘했다고 말해주세요. 제가 대학 면접 볼 때도 눈이 시뻘게지면서 바들바들 떨고 그랬거든요. 그 모습을 보시던 어머니가 그냥 (음악을) 그만하라고 말씀하셨던 적도 있고요. 하지만 지금은 정말 많이 바뀌었죠.

‘사랑에 대하여’(2020)

Q 전 오프더메뉴를 ‘사랑에 대하여’라는 노래로 처음 알았어요. 팀 이름의 첫 인상은 세련된 신스팝을 하는 팀 이미지였는데 막상 노래를 찾아 들어보니 발라드 스타일도 많았어요. 특히 ‘사랑에 대하여’ 같은 곡은 노래가 정말 순박하잖아요. 20대 초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어찌 보면 조금은 클래식한 멜로디와 가사를 썼다는 게 너무 재밌어요. 이미 모든 사랑에 통달한 건가요?

안정준 사실 ‘사랑에 대하여’는 사랑을 너무 몰라서 쓴 거예요. 이건 결혼해도 모를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노래가 스트리밍이 많더라고요. 왜 많은 지 신기해요.

이 곡은 진짜 빨리 쓴 노래예요. 그냥 제가 집 갈 때, 술도 한잔 먹고 택시에서 막 쓴 거예요. 그래서 다음날 집에 있는 업라이트 피아노로 몇 번 연주해보다가 20분 만에 전반적인 곡 멜로디와 가사를 짜고 바로 작업실 가서 만든 거예요.

 

Q 이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갑자기 1990년대에서 미래로 순식간에 순간이동해 모든 사랑을 통달하고 세상을 내려보는, 성장이 아니라 그냥 사람이 확 바뀐 느낌이었어요. 이번 앨범 들어보면 갑자기 90년대 살던 사람들이 2000년대도 아니고, 22세기로 넘어간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요? 이 변화는 어디서 어떻게 온 거죠?

이형섭 이번에 스타일을 바꾼 건 정규앨범이잖아요. 어쨌든 저희가 4년 동안 정규를 안 냈던 것도 있고 정말 저희의 명함으로 내야 될 앨범인데 여태까지 해왔던 거 다 빼고 안 해본 거, 그리고 많은 시도를 해보자. 그리고 진짜 이거 이렇게 얘기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이거 안 되면 그만해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진짜 최선을 다해 만들었어요.

안정준 2022년에 엄청 큰 슬럼프를 겪었어요. 그래서 앨범을 아예 못 냈거든요. 그때 저는 이걸 이겨내려고 주변에서 하라는 건 다 해봤어요. 여행도 가고,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그런데 슬럼프에서 못 빠져나오겠는 거예요. 그때 당시에 전 제가 전에 냈던 노래보다도 더 좋은 노래를 못 만들 것 같다는 생각에 갇혀 있었어요. 그게 계속 쌓이다 보니 1년정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죠. 이 시기가 저에게 중요한 변화의 시기라고 할까요?

‘No way home’(2022)

Q 그 전에 나온 곡은 어떤 곡이고 그 상황을 겪고 나온 곡이 어떤거에요?

안정준 ‘No way home’ 이라는 노래를 내고 한참 슬럼프를 겪었어요.

이형섭 원래 저희들이 양재에서 같이 작업실을 쓰다 뿔뿔이 흩어졌거든요. 그러면서 다들 각자 생업이 바빠졌죠. 그래서 정준이를 신경쓰지도 못하고. 그 시기 정준이는 혼자서 계속 이것저것 해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 시기에 멤버 승민이는 군대가고. 한영이도 학교로 돌아가고. 그렇게 모두가 각자의 일이 생기고 정준이만 홀로 남은거죠.

<Every Point of View> 앨범 재킷

Q 이번 정규앨범의 발매 소감을 알려 줄래요?

안정준 끝났다? 저는 여태까지 노래를 만들고나면 아, 이거 수정할걸, 저거 다시 녹음할 걸 하고 후회를 많이 하는 편이었어요. 하지만 이번 정규는 물론 아쉬운 것도 있긴 하지만 저는 진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미련이 없어요. 그냥 다 좋아요.

이형섭 올해 5월부터 계속 정규 작업을 했던 것 같은데 너무 힘들었어서 이제 끝났다?!

 

Q 4년동안 정규앨범을 준비하면서 정규 구성 계획이나 콘셉트가 있었나요?

안정준 정규앨범에 대한 콘셉트는 한 3년 전 부터 구상했어요. 내가 정규를 내면 꼭 ‘Every Point of View’라고 타이틀을 달아야지 했었는데 진짜 그렇게 냈어요. 오프더메뉴에게 가장 잘 맞는 콘셉트이자 타이틀이라고 생각했죠, 저희는 다양한 시선으로 생각을 해서 다양한 곡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듣는 분의 취향에 어긋나는 노래들도 있겠지만 그냥 각각 다른 시선으로 느껴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Q 이번 앨범에서 좀 더 심층적으로 풀어냈다고 할 만한 포인트가 있을까요?

안정준 조금 더 일렉트로닉한 것들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옛날보다 그 장르에 대한 이해도가 더 높아진 것 같아요. 전자음악에 대한 관심이 최근에 많이 커졌고요.

이형섭 음악에 대한 피드백도 주변에 많이 구했어요. 연주를 도와주신 분들도 많이 계시고요. 그러다 보니 좋은 앨범이 나오게 된 것 같습니다.

안정준 저희가 2명뿐이잖아요. 하지만 이번 앨범은 정말 많은 분들이 도와주고 참여해주신 앨범이에요. 예를 들어 ‘거울’ 이란 곡에서 코러스가 4명에 살짝 떼창 같은 분위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주변 보컬분들을 다 불러 부탁을 했고요.

기타의 경우 크리스피의 허민석, 로우행잉프루츠 박한범, 그리고 기타리스트 강건후.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기타를 연주하는 친구들이 앨범에 참여해줬어요. 빈티지한 느낌을 잘 살리는 친구도 있고, 음을 칠 때 싱글 노트를 짧게 깔끔하게 잘 치고 톤을 잘 잡는 사람들도 있고. 그리고 파츠 박재희 님. 기타를 진짜 깔끔하게 잘 쳐주셨어요. 그리고 저희가 부탁했던 부분들을 잘 해석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죠.

 

Q 정규와 기존 곡들의 차이가 있을까요?

안정준 새로 쓴 노래들이 조금 더 빈티지 해요. 쓰다 보니까 1번부터 6번, 그리고 8번 트랙이 옛날에 썼던 것들인데, 이걸 제외한 최신의 곡들은 다 좀 더 빈티지해요.

이형섭 옛날에는 저희가 좀 지식이 많이 없어서 사운드를 좀 더 올리지도 못하고 좀 더 겹겹이… 뭐랄까요. 좀 지저분하게 사운드만 올리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더 심플하게 트랙들을 간소화해서 조금 더 깔끔하게 곡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Driven Anxiety’

Q 다양한 장르가 어우러진 앨범이에요. 신스팝, R&B, 얼터너티브 록, 인디 록, 로파이 등 이렇게 많은 장르의 곡을 어떤 의도로 앨범에 배치했나요?

안정준 수백 번 다시 들어봤어요. 그리고 1번 트랙 ‘Driven Anxiety’가 타이틀곡인데 신스팝 장르로 엄청 길단 말이에요. (5분 20초) 그런데도 첫 곡으로 배치한 게 이 앨범의 시작, 인트로를 합쳐서 하나의 곡이 나왔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이제 대서사시의 시작이란 느낌이라고 할까요?

 

Q 그게 되게 좋았어요. 진짜 뭔가 운전을 하고 있는데 이제 출발한다! 이런 기분으로 여행하는 마음을 가지고 5분의 곡을 듣게 되더라고요.

안정준 첫 번째 곡을 그렇게 배치하다 보니 다음 곡들을 배치하는 건 쉬웠어요. 하지만 마지막 곡을 선택하는 것이 또 어려웠는데요. ‘거울’로 끝내야 할지 ‘Lie wit me’로 끝내야 할지 정말 고민을 많이 하다가 ‘lie with me’를 겨우 선택했어요.

 

Q 저도 그 순서가 좀 더 맞는 것 같아요. 거울로 끝났다면 그 뒤에 CD2 같이 다른 파트가 나와야 할 것 같다고 할까요? (웃음) ‘Driven Anxiety’를 포함해 이번 앨범에 타이틀곡이 세 곡인데, 나머지 두 곡에 관해 설명해주세요.

안정준 ‘Driven Anxiety’와 ‘Aussie Blues’는 두 곡 다 2021년에 만들었던 곡인데 디스코 사운드가 들어있어요. 이 곡들은 아무리 들어도 타이틀감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타이틀곡으로 지정하게 됐습니다.

‘Canyon’은 올해 만든 노래인데 피아노로 곡 쓸 때와 다른 느낌을 주고 싶어서 기타를 잡고 곡을 썼어요. 저는 이번에 제대로 어렸을 때부터 록을 많이 들었던 ‘록 키드’로서 열심히 썼어요.

그 외 ‘Cherokee’는 제가 가장 많이 듣는 장르인 하우스 음악이고, 밴드로서 꼭 구현해 보고싶은 사운드였어요. 만든 지 4년이나 된 오래된 곡이라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저는 그때 작업당시도 생각나고 만족해요.

‘Echoes’나 ‘shell’은 피쳐링이 있는 노래예요. 제가 할 수 없는 부분이나 노래를 더 생동감 있고, 색다른 느낌을 주고 싶을 때 피처링을 부탁하는 편인데, 이번에도 jhnovr, oceanfromtheblue이 두분이 현재 R&B 신에서 영향력도 있고 자신만의 색이 있는 아티스트라고 생각해서 부탁했습니다. 흔쾌히 두 분 다 응해 주셔서 영광이었죠.

‘Cherokee’

Q 오프더메뉴는 영어가사가 많아요. 정준 씨는 외국에서 살기도 했고요. 영어 가사로 쓴 곡과 한국어 가사로 쓴 곡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안정준 처음에 멜로디를 쓸 때 영어로 허밍 하면 영어 가사 되고, 한국어로 허밍 하면 한국어 가사가 돼요. 일단 저는 어릴 때부터 꿈이 코첼라, 롤라팔루자, 섬머소닉, SXSW 같은 페스티벌에 서는 게 꿈이었어요. 글래스톤베리도 그렇고요. 그리고 제가 영어로 흥얼거리던 곡을 한글로 바꾸면 좀 많이 이상하더라고요.

 

Q 오프더메뉴는 가사들이 전반적으로 심플하고 직설적이다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가사를 쓸 때 어떤 부분을 염두에 두고 쓰나요?

안정준 사실 정규앨범 전에 쓴 곡들은 빙빙 돌려 말하는 은유적인 가사도 많이 썼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그렇게 안 쓰게 돼요. 표현의 한계는 아닌데 스스로 좀 더 단순해진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주변 상황에 좀 더 몰입하게 됐어요. 음악이든, 영화든, 주변 사람의 상황이든. 그 감정을 심플하고 사실적으로 담고 싶었어요.

이형섭 단어를 표현의 최대한 곡과 입에 더 잘 붙게, 멜로디 라인을 좀 더 잘 붙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Q 이번 앨범에 참여한 사람이 32명이나 돼요.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게 됐을까요?

안정준 저희는 둘만 안에서 갇혀서 곡을 만드는 게 싫어요. 외국 밴드도 보면 다들 스태프처럼 그때그때 다른 멤버들과 곡을 만들고 연주하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참여를 권하고 부탁하고 하면서 적재적소에 어울리는 사람들을 배치했어요. 그러다 보니 앨범에 모든 부분에서 32명이 참여를 하게 됐죠. (웃음)

‘Echoes’

Q 두 사람이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라는 게 느껴져요. 두 사람이 진정 추구하는 목표는 무엇일까요?

이형섭 저는 사실 작년까진 음악이 재미없었어요. 그런데 이제 정규가 딱 발매되고 나서 3일 전쯤 밤에 걸으면서 저희 노래를 딱 듣고 가는데 음악을 만들던 순간과 만들고 나서 듣는 게 너무 재밌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연주했던 것도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한번 음악을 더 많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밖에는 제가 요리를 하는 걸 좋아해서 나중에는 요식업도 한번 해보고 싶어요.

안정준 그리고 언젠가 저는 사실 일렉트로닉만 하는 팀을 만들어서 해보고 싶어요. 그런데 그걸 공연하진 않고 음원만 뿌리는 거죠. (웃음) 혹은 정말 어쩌다 한 번씩 공연을 한다든가. 이모셔널 오렌지 같이 여자 보컬과 함께 넣어 그룹을 만든다던가,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어요.

이형섭 정말 잘 되면, 더 정말 생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음악을 할 수 있다면 모르지만 아직은 밴드의 수명이 조금 짧은 것 같아요. 이후 나이가 들어서 억지로 트렌드를 따라가는건 좀 멋지지 않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정준이랑도 했어요. 그래서 언제까지 음악을 할 수 있을까 항상 생각해요.

 

Q 인터뷰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이 있나요?

안정준 저희가 앨범에서 다루는 장르가 많잖아요. 그래서 다음 EP는 J-pop같은 느낌의 곡도 해보고 싶어요. 시규어로스 같은 앰비언트 음악도 진짜 하고 싶고요. 그래서 나중에 좀 더 여건이 된다면 진짜 북유럽에 가서 소리도 따보고 그러고 싶어요.

이형섭 정규앨범으로 오랜만에 찾아온 오프더메뉴인데요. 저희 팀 많이 잘 들어주시고 노래를 들을 때 저희가 이야기했던 장면들을 조금 더 생각하시면 들어주시면 더욱 이입이 잘 될 것 같습니다. 저희가 하나하나 신경 써서 만든 거다 보니까 조금 더 깊이 음미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안정준 노래를 많이 들어줄수록 저희의 수명이 늘어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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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조혜림

 

Writer

음악 콘텐츠 기획자, 하루키스트, Psychedelic rock. <중경삼림>의 영원한 팬. 읽고 듣고 보고 쓰는 것들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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