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와 카렐 차페크는 19세기 말, 동시대에 태어난 작가다. 지금의 ‘체코’로 불리기까지 그들이 태어난 땅의 이름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낡지 않는 세련됨과 기발한 상상력이 가득한 작품들은 오늘날 체코 문학의 자부심이 된다. 낭만의 도시에서 격변의 시대를 살아낸 두 작가가 창조한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독일어로 저서를 완성한 프라하 토박이 프란츠 카프카와 ‘로봇’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만든 국민 작가 카렐 차페크를 통해 체코 문학에 입문해본다.

프란츠 카프카와 카렐 차페크의 초상 사진

 

프란츠 카프카, 그 불안한 무의식에 대하여

주변 지인에게 ‘만약 내가 바퀴벌레로 변한다면’하고 묻는 챌린지가 올해 유행을 끌었다. 하루아침에 인간이 흉측한 해충으로 변한다는 충격적인 가정은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에서 가져왔음이 분명해 보인다. ‘소중한 자식이니 그래도 데리고 산다.’라는 부모님부터 ‘살충제로 응수하겠다.’라는 친구까지 극과 극의 반응이 즐거운 농담이 된다. <변신>의 등장인물 ‘그레고르 잠자’에겐 이런 일이 극 중 현실에서 일어난다. 평범한 직장인이 어느 날 벌레로 변신하며 불안과 혼돈에 내던져지는 것이다. 가장의 신분을 잃자마자 가족으로부터 고립되고 배척되는 상황은 다름을 ‘~충’이라는 혐오를 담은 멸칭으로 부르는 한국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아르헨티나 작가 루이스 스카파티의 일러스트가 더해진 <변신>

카프카의 작품은 치밀한 설정과 잘 짜인 인과관계보다, 주어진 상황에서 다양한 인물이 취하는 행동에 집중하고 그를 통해 사회적 관계와 인간의 내면을 그려낸다. 미완의 이야기로 남겨진 <성>은 토지 측량사 ‘K’가 고용된 도시에 이주하면서 막이 오른다. 철저하게 정보가 제한된 상황에 처한 K에게 성은 방문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여관 주인, 면장, 학교 교사 등 마을 사람들을 찾아가 대화를 나누며 성을 둘러싼 인물들에 대한 퍼즐을 맞춰가지만, 당장 내일 지낼 곳이 녹록지 않은 외지인 취급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먼 길을 떠나 도달한 새로운 일터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불안한 상황과 권력을 대변하는 관료들로 인해 이리저리 휩쓸리는 인물을 따라가다 보면,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안개에 맞닥뜨린 기분이 든다.

체코 프라하에 위치한 프란츠 카프카 박물관

흥미로운 점은 평생을 프라하에서 보낸 카프카가 독일어로 모든 저서를 써 내려갔다는 것이다. 부유한 아버지 덕에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작가는 현지 상류층 자제가 다닌 학교에서 체코어 대신 독어로 수업을 들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아버지로부터 감당할 수 없는 폭언을 자주 들었던 경험은 섬세하고 병약한 작가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이는 이야기 속 불안정한 주인공들에 투영되었다. 평생 카프카는 꿈에 시달리기도 했는데, 그에 반영된 무의식은 관련 일기, 편지 등을 모은 <꿈>에서 엿볼 수 있다.

 

카렐 차페크, 그 애정 어린 관찰력에 대하여

‘로봇’이라는 단어는 카렐 차페크의 <R.U.R: 로숨의 만능 로봇>에서 처음 사용된 체코어 ‘로보타’에서 왔다. 영화 <아이로봇>과 닮은 차페크의 이야기는 인공지능이나 첨단 과학 기술이 낯설었던 1920년대에 완성되었다. 이와 전혀 다른 장르의 우화 같은 희곡 <곤충극장>은 다양한 인간상을 곤충에 빗대어 풍자한 내용으로 작가에게 큰 성공을 안겨주었다. 쇠똥구리, 나비, 개미 등 친근한 곤충의 습성에 인간의 욕망, 사회에 만연한 전체주의를 대응하여 세계 대전으로 혼란한 시대를 재치 있게 꼬집어 낸 것이 공감을 일으킨 덕이다.

<R.U.R: 로숨의 만능 로봇> 번역본과 실제 공연 장면

형인 요세프가 그림을, 동생인 카렐은 글을 맡아 함께 작품을 완성하기도 했는데, 그중 국내에서 유독 관심을 받는 장르는 에세이로 <정원가의 열두 달>과 <개와 고양이를 키웁니다>가 대표작이다. 작가의 경험이 고스란히 담긴 두 작품에는 다양한 식생과 견종에 대한 지식과 더불어 이들을 관찰하고 돌본 인간의 애정이 묻어난다. <정원가의 열두 달>에서 온도와 습도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정원가들은 ‘프로 불편러’로 종종 오해받기도 하지만, 오직 잘 자라는 나무와 만개하는 꽃을 위해 일 년 내내 중노동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요제프의 간결하고 독특한 라인 드로잉은 정원가의 괴짜다운 면모를 극대화하며 책을 소장하고 싶게 만든다.

요세프 차페크의 일러스트로 채운 <정원가의 열두 달>과 <개와 고양이를 키웁니다> 변역본 표지

한편 <개와 고양이를 키웁니다>에서는 자식같이 반려견을 애지중지하는 모습과 중성화가 보편적이지 않던 시절 죄책감없이 강아지 생명을 빼앗는 일화가 대조되며 ‘애완동물’의 시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유행하는 품종견 선호가 이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현상임을 서술하는 대목도 눈에 띈다. 동식물 관련 상식의 변화도 흥미롭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풍성해지는 정원의 풍경에 곁들이는 인생에 대한 고찰이나 오줌 웅덩이를 만들어내는 강아지들을 향한 적나라한 애증은 진한 인간미를 풍긴다.

급변하던 시대 속에 직장인과 작가의 생활을 모두 지켜낸 이 두 작가의 작품은 체코 문학의 초현실주의, 실존주의를 대표한다. 허무맹랑한 상상과 정원의 풀 한 줌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세월이 지나도 색이 바래지 않고 여전히 사랑받는다. 이들의 작품은 이유 모를 불안감을 다독여주고 헤쳐 나가야 하는 외로운 일상을 위로하기 충분하다. 덤으로 그 시대 체코와 유럽 전반에 감돌았던 인간에 대한 불신, 공포 등을 간접적으로 느끼며 오늘날에도 반복되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Writer

넓고 깊게 이야기를 담고 싶은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