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당시 서독이었던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결성된 일렉트로닉 밴드 Kraftwerk(크라프트베르크)는 일렉트로닉 음악 팬들에게 전설로 통한다. 일렉트로닉 음악의 기본 골격을 만들며 그것이 대중적인 장르로 부상시키는 데 크게 공헌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50년 넘게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일렉트로닉 음악 장르의 대중화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2014년 56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평생공로상을 받는 등 신화적인 밴드로 추앙받고 있다.

이들의 작업물 중 3D 모델링 기술을 과감히 적용한 기념비적인 뮤직비디오가 있다. 바로 1986년에 발매한 아홉 번째 스튜디오 앨범 <Electric Café>에 수록된 ‘Musique Non Stop’의 뮤직비디오다.*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불쾌한 골짜기 현상을 선사하는 그래픽으로 구성된 ‘Musique Non Stop’ 뮤직비디오는 당시 발매된 뮤직비디오들과 비교할 때 얼마나 혁신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해당 뮤직비디오 제작 배경에는 당시 컴퓨터와 디지털 기술을 예술에 접목한, Kraftwerk의 멤버라고 불릴 수 있는 Rebecca Allen(이하 ‘Allen’)이 있다.

* 발매 당시 앨범명은 <Electric Café>였지만 2009년 10월에 원래 앨범 명칭이었던 <Techno Pop>으로 재발매됐다.

 

역사의 시작

당시의 Rebecca Allen, 이미지 출처 – 링크

1970년대 중반부터 컴퓨터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예술활동을 시도한 Allen은 인간 동작의 미학, 지각과 행동에 대한 연구, 첨단 기술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 등에서 영감을 얻어 작업하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선구적인 아티스트다. 1970년대 초반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학교(이하 ‘RISD’)에서 미술을 전공해 바우하우스, 구성주의, 미래주의 및 다다이즘과 같은 20세기 초 급진적인 예술 운동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급부상하던 컴퓨터가 사회에 불러올 변화 가능성과 더불어 컴퓨터를 접목한 새로운 형태의 예술에 관해 고민했다고 한다.

Allen은 컴퓨터가 새로운 산업 시대를 이끌 것이며 예술분야 또한 컴퓨터가 주요한 흐름을 이끌 것이라고 확신했다. 특히 컴퓨터는 평소 그가 관심있는 모션 기반의 예술과 인간의 움직임 등과 같은 유형의 작업에 적합한 ‘예술적 도구’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그는 예술에 컴퓨터를 적용하려고 시도했지만, 재학중이던 RISD는 급진적인 모더니스트들의 아이디어는 존중하면서도 컴퓨터를 활용한 예술 작업에는 부정적인 의견을 표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의 권고를 무시한 채 본인만의 작업을 진행했고, 이로부터 40~50년이 지난 오늘날 미술계가 컴퓨터를 활용한 예술적 접근 방식에 몰두하는 것을 볼 때 그의 작업 태도가 얼마나 선구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Allen은 40년 동안 작업과 연구를 병행하며 독보적인 예술분야를 개척했다. 특히 증강 현실 속 설치 예술, 실험적인 비디오 및 순수 예술, 공연 예술, 대중 문화 등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운 본인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했고, 그의 작품은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으며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Centre Georges Pompidou> 및 <NY Museum of Modern Art>에 영구적으로 컬렉션이 전시 중에 있다. 우리가 알 만한 Allen의 대표적인 협업 사례로는 고-백남준 비디오 작가의 ‘세기말 2’ 등이 있다.

‘세기말 2’(Fin de Siecle II), 이미지 출처 – 링크
* 백남준은 Allen에게 뉴욕의 새로운 Chase Manhattan Bank 본사와 대전 세계 엑스포를 위한 작업을 의뢰했다.
** 대표 협업 아티스트: Kraftwerk, 백남준 Mark Mothersbough (Devo), John Paul Jones (Led Zeppelin), Peter Gabriel, Carter Burwell, Twyla Tharp, Joffrey Ballet, La Fura dels Baus.

 

Musique Non Stop

영상의 14분 40초부터 Allen의 작품을 볼 수 있다.

Allen은 New York Institute of Technology(이하 ‘NYIT’)로 진학한 후 1984년에 Kraftwerk를 알게 되었다. 그는 당시 여러 뮤직비디오 작업에 참여했고 이 가운데 ‘Twyla Tharp’의 비디오 댄스 작품인 ‘The Catherine Wheel’ 제작에 참여했다. Kraftwerk의 멤버들은 Allen이 참여한 작품들을 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그가 소속한 NYIT의 Computer Graphics Laboratory에 관해 알게 되었다.

‘Kraftwerk Model’(1984), 이미지 출처 © Linda Law

Allen의 작업에서 가능성을 본 Kraftwerk는 ‘Musique Non Stop’ 뮤직비디오 제작을 의뢰했다. 뮤직비디오 제작 의뢰를 받은 그는 Kraftwerk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Allen은 Kraftwerk의 전설적인 작업실인 ‘Kling Klang Studio’에 초대된 유일한 사람이었다. 마이클 잭슨도 Kraftwerk를 만났지만 정작 스튜디오는 들어가지 못했을 정도. 어찌 보면 그는 Kraftwerk 멤버 중 한 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Musique Non Stop’ 뮤직비디오

Kraftwerk와 Allen은 모두 선구자였고 작업 방식도 유사했다. Allen은 컴퓨터를 활용한 디지털 형식의 예술을 창조하려 했고 Kraftwerk는 당시에 없는 혁신적인 음악을 창조하려 노력했다. 작업 방식도 유사했다. ‘Musique Non Stop’ 뮤직비디오를 보면 다소 거칠고 개략적인 이미지로 보이지만, 사실 Allen은 매끄러운 컴퓨터 그래픽을 원하지 않았고 의도적으로 거친 질감의 그래픽을 구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가 이 같은 색상과 음영, 조명을 세심하게 조절하며 완벽한 조합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었기 위해 노력했다면, Kraftwerk는 작은 음 하나하나에 대해서 매우 세심하고 까다롭게 작업하며 완벽한 사운드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 ‘Musique Non Stop’에서 들리는 여성 보컬의 소스는 Allen의 목소리다. Kraftwerk가 발매한 모든 앨범에서 유일하게 여성의 목소리가 들어간 트랙이며 반복적으로 들리는 “Musique nonstop, techno pop”이 바로 그 소리다.

지금이야 3D 개체를 쉽게 디지털화해 적용할 수 있지만 Allen이 작업하던 1980년대에는 매우 정교하고 세심한 노동이 필요했다. 그가 속한 NYIT의 Computer Graphics Laboratory 팀은 약 2년 간의 고된 작업을 거쳐 1986년, 뮤직비디오에 렌더링 한 3D 그래픽을 도입한 기념비적인 초기 사례 중 하나인 ‘Musique Non Stop’ 뮤직 비디오를 완성했다. 해당 뮤직비디오는 많은 이목을 받으며 다수의 음악 채널에서 상영되었으며, 1986년 서독 Best Music Video Award에서 수상했다. 이후 디지털 예술 분야만이 아니라 대중문화 측면에서도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Rebecca Allen의 예술적 목표는 디지털 예술이 가지고 있는 미학을 정의하는 것이었고, 연구 목표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한 얼굴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었다. 당시 인간의 움직임과 얼굴 애니메이션은 컴퓨터 그래픽과 애니메이션 분야 연구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로 여겨졌고, 그는 이와 같은 과제를 가장 선진적이고 훌륭하게 수행한 혁신가였다.

 

Rebecca Allen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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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었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수집해서 깊게 탐구합니다. 문화적인 것은 편식하지 않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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