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니 대만의 것은 항상 곁에 있었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나의 소녀시대> 그리고 드라마 <상견니>까지. 우리와 가까이 있지만 의외로 아직 가보지 못한 이들도 많은 곳. 비교정치학자들은 한국과 대만을 지구상 가장 유사한 나라로 꼽기도 한다. 외국인들은 한국의 한(限) 정서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하지만, 대만의 친구들은 우릴 이해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어딘가 닮아서 더욱 궁금한 대만. 망원동에서 대만의 인디 음악을 위한 밤이 열린다고 해 다녀왔다. 한국의 인디 음악을 사랑해 한국으로 유학 온 대만의 대학생 주디 양(Judy Yang)이 특별히 준비한 자리였다. 국내 인디 음악을 소개하는 클래스에서 호스트와 손님으로 인연을 맺은 주디가 이번엔 직접 호스트가 되어보는 시간이었다. 대만의 역사와 함께 대만 인디 음악신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요즘은 어떤 뮤지션들이 주목받고 있는지를 살펴봤다. 혼자만의 힘으론 닿을 수 없는 대만의 음악, 구석구석을 탐험하고 싶었다면 오늘 유심히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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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역사와 대만 인디 음악의 흐름

대만은 무려 38년 동안 계엄령 기간을 보내며 문화적으로도 위축된 시기를 보냈다. 대만의 음악신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건 계엄령이 해제된 1987년 이후라고 한다. 1990년대엔 우바이와 그 밴드 China Blue가 등장하며 대만 음악 신을 활발하게 만들었다. 드라마 <상견니> 속 타임슬립 음악 ‘Last Dance’가 바로 우바이의 음악이다. 우바이는 대만의 촌스러운 스타일을 일컫는 ‘타이커'를 긍정적인 대만다움으로 풀어내기도 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몸빼 바지와 꽃무늬 셔츠 같은 존재랄까?

대만의 2000년대는 록 음악의 시대였다. 오월천(Mayday)이 중화권의 비틀즈로 이름을 날린 때이기도 하다. 2014년엔 중국의 자유무역협정으로 대만의 음악이 억압될 것을 우려한 학생 권을 중심으로 음악이 만들어졌다. 당시에 밴드 Fire EX가 ‘Island’s Sunshine’을 비롯해 사회적인 메시지가 들어간 음악을 발표했다. 끝으로 대만의 인디음악 신의 대중화를 이룬 No Party For Cao Dong의 얘기를 빼먹을 수 없다. DMZ 페스티벌로 내한한 적이 있는 이들은 인디 밴드로서 대만의 대중음악 시상식인 GMA에서 최우수 밴드상을 받으며 대만의 인디 음악 신을 확장시켰다. 이렇게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이 서린 대만의 음악 이야기를 듣고 나면 음악도 달리 들릴지도 모른다. 비행기로 2시간 30분 거리의 대만 음악을 요즘은 몇 번의 클릭으로 쉽게 듣고 흘릴 수 있지만, 그들이 걸어온 역사는 깊고 길다. 이렇게 역사와 함께 대만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들은 후, 요즘 들어봐야 할 대만 음악이 소개되기 시작했다.

Wu Bai ‘Last Dance’
Wu Bai & China Blue ‘妳是我的花朵’

 

대만에서 온 친구가 소개하는 요즘의 대만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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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ÜCY

LÜCY(루시)는 옷장이나 화장실에서 음악을 만들곤 한다. 혼자만의 안전한 공간에서 쓰인 내면적인 음악을 베드룸 팝으로 불린다. 그는 아버지가 비틀즈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를 좋아해서 이름을 루시로 지었다고 한다. 특별하게 보일 수 있게 한 표기법과 함께. 루시의 음악도 여느 베드룸 팝과 비슷하게 들리다가도 몽환적인 느낌과 상쾌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지점에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루시의 음악은 침실에 누워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는 기분이다.

루시 ‘EYE(S)’

 

The Dianosaur’s Skin

한때 우리나라엔 상자를 뒤집어쓰고 나온 프라이머리가 있었다면, 대만엔 공룡의 탈을 쓴 The Dinosaur's Skin이 있다. The crispy the band의 프로젝트 밴드라고 한다. 티라노사우루스와 트리케라톱스로 이뤄진 듀오다. 트리케라톱스는 암컷이고 티라노는 수컷이다. 이들은 본인들의 음악을 쥐라기 음악이라고 설명한다. 풀어놓자면 드림팝, 인디팝, 로파이를 잘 섞은 음악이다. 비록 육식 공룡이란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음악만큼은 푸른 초원 위 한가로이 뛰노는 무해한 공룡이 연상된다.

The Dianosaur’s Skin ‘Jurassic World’

 

Layton Wu

레이톤 우는 미국에서 유학 중인 대만 출신 뮤지션이다. 미국에 사는 사촌이 강아지를 입양했는데, 출생 서류를 보니 대만 출생 강아지였다고 한다. 대만에서 미국으로 흘러들어온 강아지가 자신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강아지의 이름인 레이톤에서 활동명을 따왔다고 한다. 대만을 대표하는 밴드 중 하나인 선셋 롤러코스터와 인연이 깊어 그들이 운영하는 레이블 선셋 뮤직에서 음악을 발표하고 있다. 선셋 롤러코스터가 <Infinitity Sunset> 투어로 미국과 유럽을 돌 때 몇몇 국가에선 레이톤 우가 스페셜 게스트로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

Layton Wu ‘Summertime’

 

The Cr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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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서 R&B의 왕자로 불린다는 더 크레인이다. 지난 선셋 롤러코스터와의 인터뷰(링크)에서 보컬 궈우궈우가 추천한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현대적인 얼터너티브 알앤비 사운드가 귀를 먼저 사로잡지만 조금 더 귀를 기울인다면 얼터너티브와 잘 버무려진 1970년대의 소울 음악이 들릴 것이다. ‘LIMO’라는 곡에서는 혼네의 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밤을 위한 얼터너티브 R&B가 느껴지기도 한다. 전 세계의 알앤비 장르 팬들이 즐길 수 있을 법한 음악이다. ‘Don’t Mind’의 뮤직비디오는 성당에서 열린 사촌 결혼식에서 몰래 찍었다가 성당 측의 항의로 조각조각 편집된 버전이 오히려 독특한 그의 캐릭터를 보여준다.

더 크레인 ‘Don’t Mind’

 

Linion

리니온은 ‘기대주’라는 수식어와 함께 소개됐다. 네오 소울에 가까운 음악을 하며 본인이 작사와 작곡 모두 도맡고 있다. 데뷔 앨범은 대만의 인디 뮤직 시상식인 <골든 인디 뮤직 어워즈>의 베스트 알앤비 앨범 부문에 후보로, 2집 <Leisurely>로는 같은 부문에서 수상까지 했다고 하니 대만의 평단과 대중의 관심 모두를 받고 있는 뮤지션임에 틀림없다. 2집에선 ’Day Off’란 곡을 추천하고, 싱글로 발표한 ‘Be My Bagel’이란 곡도 확인해보길 권한다.

리니온 ‘Be My Bagle’

 

Robot Swing

로봇이 추는 스윙은 어떤 모습일까? 이성과 감성을 겸비한 로봇 스윙은 타이베이에서 결성된 4인조 밴드다. 밴드 이름에 스윙이란 단어를 넣은 만큼 재즈와 펑크, 소울 장르를 활용하여 때로는 강렬하고 춤출 수 있는 공간을 음악에 만들기도 한다. 로봇같은 너드도 춤 출 수 있는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

로보 스윙 ‘Love You Here & Now’

 

The Fur.

마지막은 현재는 활동을 쉬고 있어 안타까운 밴드 The Fur.이다. 이들의 음악은 언젠가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아시아 음악을 찾다가 발견한 적이 있었다. 몽환적인 신디사이저 소리와 찰랑거리는 베이스 사운드에 매료되었었는데 2020년 이후로는 음악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대학 친구 둘이 결성한 혼성 듀오이다. 활동기에는 SXSW 페스티벌에도 초청되는 등 해외에서도 반응이 있었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없지만, 이들의 매력적인 뮤직비디오는 여전히 남아 반짝이고 있으니 확인해봐도 좋겠다.

The Fur. ‘Oh Why’

 

대만엔 어떤 페스티벌을?

음악 소개를 마치고 대만의 공연 문화에 대해 짧게 들어볼 수 있었다. 다시 세계 여행이 자유로워진 요즘, 해외 페스티벌을 계획 중인 이들이 있을 것이다. 대만의 가오슝엔 메가포트 페스티벌(Megaport Festival)이, 타이난엔 고성의 거리를 걸어 다니며 극장이나 유적지에서 공연을 볼 수 있는 락페스트(LUCfest)가 열린다고 한다. 또한 대만의 인디 밴드라면 꼭 한번 서보고 싶어하는 무대로는 레거시 타이페이(Legacy Taipei)라는 공연장이 있다고 한다. 공관 일대의 공연장으론 더 월 라이브 하우스(The Wall Live House)가 있는데, 이곳에선 모과이와 타이티 80과 같은 밴드들도 공연을 펼친 곳이라고 하니 일정이 맞는다면 대만에서 공연을 예약해서 관람하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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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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